이탈리아 폼페이
삼니트인이 건설한 기초 위에 고도로 발달한 로마문화 더해져
‘불의 신’을 기리는 축제중 화산 폭발로 도시가 통째로 사라져
기원전 6세기 베수비오 화산의 남동쪽, 사르누스강 하구에 세워진 항구 도시, 폼페이는 비옥한 캄파니아 평야를 배경으로 농업과 상업의 중심지로 번창하였다. 또한 전략적인 위치에 자리 잡아 중요한 해상무역을 통해 많은 부를 쌓았다. 처음 이 도시를 지배했던 그리스인들은 나폴리 바다와 사르노 계곡을 시원스럽게 내려다볼 수 있는 이곳에 신화의 도시를 건설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이곳에 오랫동안 머물지 못하였고, 그 뒤를 이어 에트루리아인, 삼니트인 등 여러 민족이 아름다운 폼페이를 거쳐 갔다. 이들 가운데 폼페이의 진정한 주인이었던 삼니트인은 거칠고 호전적이며 잔인하여 그리스가 가진 나폴리 일대 식민지를 완전히 장악하였다. 고대부터 이탈리아 중남부에 살았던 삼니트인은 로마의 끈질긴 공격에도 항복하지 않고, 로마인들과 맞서 싸우기 위해 3㎞에 이르는 성벽을 쌓고 투쟁의 칼날을 드높였다. 이들은 기원전 343년부터 로마와 여러 차례 전쟁을 치르면서도 자신들만의 민족성과 정체성을 잘 지켜냈다. 하지만 기원전 90년 삼니트인은 로마군에게 무릎을 꿇으면서 폼페이는 로마의 휴양 도시로 변했고, 빠른 속도로 로마화가 이루어졌다.
고대 도시로서 규모가 상당히 컸던 타원형의 폼페이는 로마인들이 처음으로 계획하여 만든 것이 아니라, 로마인이 이미 건축됐던 구역과 도로, 공공건물 등 많은 부분을 그대로 이용한 것이다. 즉 폼페이의 기초적인 틀이 삼니트인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 기초를 바탕으로 고도로 발달한 로마 문화가 보태지면서 폼페이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아름답고 화려한 도시, 폼페이는 서기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인해 단 18시간 만에 완전히 잿더미에 묻혔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베수비오 화산 폭발이 일어난 날이 불의 신 불카누스(헤파이스토스)를 기념하는 축제일이었다. 2만여 명의 폼페이 시민들은 불카누스를 기리며 즐겁게 지내고 있을 때 10km 정도 떨어져 있던 베수비오산이 폭발하면서 뜨거운 화산쇄설류 수백 톤이 도시 전체를 삼켰다. 순식간에 화산재가 폼페이를 뒤덮자 대부분 시민은 도시를 탈출했고, 약 2천여 명이 도시와 함께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그 이후에도 베수비오산은 몇 번 화산을 분출했고, 제2차 세계대전 말이던 1944년 분출이 마지막이었다.
이탈리아 역사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던 폼페이는 1594년 폼페이 유적지와 이웃한 헤르쿨라네움의 폐허가 처음 발견되면서 세상 밖으로 신비한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본격적인 발굴 작업은 1748년부터 시작되었고 오늘날까지 폼페이의 4/5 정도가 옛 모습을 회복한 상태이다. 4∼6m의 화산재로 뒤덮인 폼페이가 양파 껍질을 벗듯 깊은 속내를 하나둘씩 드러낼 때마다 이를 지켜보는 많은 사람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다고 한다.
2천 년 만에 환생한 폼페이 여행은 두 발로 시작한다. 달걀 모양으로 생긴 도시의 지도를 펼쳐 들고 빽빽하게 숫자가 매겨진 장소를 따라 발길이 이어진다. 성곽으로 둘러싸인 폼페이에는 크게 8개의 문이 있는데 기차역에서 내려 매표소가 있는 ‘마리네 문’을 통과하면 사라졌던 전설의 도시 폼페이를 마주하게 된다. 인구가 대략 6천∼2만여 명이었던 폼페이는 없는 것이 없을 만큼 문화 시설과 편의 시설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어 한 개의 독립된 국가로도 평가받고 있다.
울퉁불퉁하고 검게 그을린 큰 돌들이 길바닥에 누워 거리를 만들고, 그 신작로를 중심으로 각종 신전과 상점, 일반 주택, 공공시설물들이 들어차 있다. 공중목욕탕, 빵집, 선술집, 도자기 굽는 집, 빨래터, 검투사의 집, 창녀들의 집, 극장, 원형 경기장까지 2천 년 전 폼페이가 현재 우리가 사는 모습과 너무도 유사하게 건설되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이처럼 파괴되지 않고 원형 그대로 보존된 폼페이에 서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몹시 흥분되고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솟아오른다. 프랑스 출신의 소설가 스탕달이 “폼페이에 두 발로 서 있다는 것만으로 그 어떤 학자보다도 이곳에 대해 더 많은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폼페이의 어느 한 모퉁이에 서면 베수비오산에서 뻗어 나오는 광채와 이 도시에 스며 있는 세월의 향기, 그리고 이곳을 가득 메웠던 고대 사람들의 미소, 화려한 문양의 기둥, 당시의 삶을 전하는 벽화, 1만 5천 명의 뜨거운 함성이 울려 퍼진 원형 경기장, 죽음과 맞서 싸운 검투사 등의 모습들이 한 편의 영화처럼 머릿속을 휘젓고 지나간다.
우마차가 다니던 큰 도로를 따라 도시 안 깊숙이 들어가면 갈수록 폼페이가 뿜어내는 묘한 매력과 생경한 모습들은 눈이 부실 만큼 지독하게 아름답다. 상업과 무역으로 많은 부를 축적한 폼페이 사람들은 자신의 집을 마치 작은 왕국처럼 꾸미길 좋아했다. 집마다 월계수, 송악, 플라타너스 등의 나무로 아기자기한 정원을 만들어 실록의 상큼함을 즐기고, 기둥은 화려한 문양으로, 집 내부는 고풍스럽게 장식해 예술적 삶을 지향한 그들의 우아한 자취가 폐허 곳곳에서 느껴진다. 저녁이면 정원에 삼삼오오 모여 은은한 포도주로 밤을 달래며 사랑, 철학, 예술 등 인간이 생각하는 모든 것을 토론하며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낭만과 여유가 흐르는 폼페이는 정말 대단한 2천 년 전의 도시였다. 하지만 화산 폭발로 인해 로마가 쌓아 올린 명성과 그들의 삶은 한 줌의 재가 되었고, 오랜 시간 동안 화산재 아래에서 기나긴 인고의 세월을 보낸 후에야 비로소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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