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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가보고 싶은 곳, 세계 서퍼들의 천국

제주한라병원 2021. 12. 27. 15:23

거친 파도와 원숭이로 유명한 절벽사원 울루와뚜.

 

고귀한 절벽이라는 뜻의 울루와뚜의 저녁 풍경.

인도네시아 발리

 

‘제물’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와리(Wari)’에서 변형돼 ‘발리(Bali)’로 불려

네덜란드 식민지 시기 유럽에 널리 알려져 이국적인 ‘파라다이스’로 변화해

 

인도네시아 ‘발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은 수없이 많다. 집채만 한 파도, 3,142m의 아궁산, 커피, 힌두교, 풀빌라, 영화 ‘남태평양’, 서퍼들의 천국, 히피들의 파라다이스, 2만여 개의 힌두 사원, 소원을 바라는 제물 ‘짜낭 사리(Canang sari)’, 네덜란드의 식민지, 에메랄드빛의 바다 등등. 이 중에서도 어느 하나라도 마음에 들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곳이 남태평양에 자리한 천혜의 섬, 발리이다.

“여행의 시작은 한 장의 사진이다.”라는 말처럼, 발리와 관련된 그 어떤 사진을 본다 해도 일생에 한 번쯤 꼭 가보고 싶은 섬이 바로 발리이다. 이곳은 제주도보다 3배나 크고, 겉보기에는 아름답고 평온해 그저 살기 좋은 섬 정도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 발리는 인도네시아 1만 7,500여 개의 섬 중에서 가장 독특하고 이색적인 요소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매력적인 섬이다.

인도의 고대 언어인 산스크리트어로 ‘제물’을 의미하는 ‘와리(Wari)’라는 단어가 변형되어 지금의 ‘발리(Bali)’가 되었고, 인도네시아가 이슬람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발리 사람들은 인도의 힌두교를 믿는다. 그럼 언제부터 발리에 힌두교가 전파된 것일까? 4세기부터 자바섬에 힌두교를 믿는 자바인이 거주하였고, 15세기경 이슬람 세력이 자바의 ‘마자파힛(Majapahit)’ 왕조를 멸망시키자 왕족과 귀족, 힌두교 승려, 예술가 등 많은 사람이 발리로 피난을 오게 됐다. 이때부터 힌두교를 기반으로 하는 종교와 문화예술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 후 힌두교는 발리의 토착 신앙인 애니미즘과 중국에서 들어온 대승불교와 융합돼 ‘발리 힌두교’라는 독특한 종교를 탄생시켰다.

 

발리를 여행하다 보면 마을마다 창조의 신 브라만, 보호의 신 비슈누, 파괴의 신 시바 등을 모시는 3개의 사원이 있고, 집마다 크고 작은 신을 모시는 사당이 있을 만큼 힌두 신을 섬기는 현지인들의 모습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그래서 발리를 ‘신들의 섬’이라고 한다. 원주민들은 하루 세 번, 대나무로 만든 바구니에 과일 몇 조각, 밥 몇 숟가락, 꽃과 나뭇가지 등을 넣은 ‘짜낭 사리’를 자신이 믿는 힌두 신께 바치는데, 그 장소는 집 앞, 가게, 사원, 신상, 자동차, 해변 등 가리지 않는다.

이처럼 종교와 자연에 순응해 성품이 온화한 발리 사람들이지만, 그렇다고 무기력하거나 자존심이 약한 사람들은 아니다. 1849년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와 발리를 무력으로 점령하자, 발리의 왕족과 귀족, 그리고 원주민들은 총칼에 맞서 온몸으로 저항하였다. 이때 식민지의 노예가 되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발리의 왕족과 귀족들은 단검으로 자결을 했고, 원주민들도 죽음에 동참해 4,000여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이 전쟁 이름을 ‘푸푸탄(Puputan)’이라고 하는데, 그 뜻은 ‘명예로운 죽음의 행진’이라는 슬픈 역사를 함축하고 있다. 그 후 발리는 네덜란드의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남태평양의 타히티처럼 ‘지상의 낙원’, ‘파라다이스’로 변모했다. 유럽 사람들은 발리를 문화적, 자연적으로 풍요로운 섬으로 생각했고, 이국적인 삶과 새로운 대안을 찾던 이들에게 유토피아였다.

1970년 발리에 국제공항이 들어서면서부터 해마다 전 세계에서 400만 명이 신들의 섬, 발리를 찾는다. 호주와 중국 여행객이 연간 200만여 명이 발리섬을 찾고, 우리나라도 해마다 20만여 명이 발리를 찾는다. 그런데 이곳에서 가까운 섬나라의 호주 사람들이 발리를 좋아한다는 것이 예상 밖이다. 그 이유는 1962년 발리의 높은 파도를 즐기는 서퍼들의 환상적인 모습을 담은 영화가 호주에서 개봉되면서부터 서퍼들과 삶의 해방구를 찾는 호주 젊은이들에게 파라다이스가 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60년대 히피 서퍼들은 거친 바다와 높은 파도를 찾아 호주, 뉴질랜드, 타히티, 하와이, 세네갈, 가나, 나이지리아, 남아프리카 등을 헤매다가 마침내 자바섬 한쪽에 자리한 발리를 찾아냈다. 그중에서도 미국 출신의 브루스 브라운 감독은 1962년부터 발리에 머물며 서핑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파도 속으로(The Endless Summer)’와 ‘서핑(Surfs up)’을 1966년 개봉하였다. 이 영화를 통해 발리의 큰 파도가 세계 젊은이들에게 알려지게 됐고, 국제공항과 품격 높은 리조트를 하나둘씩 생겨나면서 최고의 여행지로 자리매김하였다.

발리의 바다는 상당히 거칠고 파도가 높아 서퍼들 이외에는 바다를 즐기기에 다소 어려운 점이 많다. 또한, 바닷가의 모래도 타히티와 피지처럼 곱지 않고, 아름다운 해변도 없고, 그 흔한 스노클링 투어도 발리에서는 할 만 곳이 그리 많지 않다. 물론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촬영지로 유명한 빠당빠당 비치가 있지만, 대개 해수욕을 즐기기에는 환상적인 해변이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발리에는 호텔 안에 수영장과 풀빌라가 발달하게 된 것이다.

거친 바다와 높은 파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가 울루와뚜 절벽사원이다. 원숭이가 사는 절벽으로도 유명하고, 발리의 7대 명소 중 한 곳이다. 이곳은 발리 최남단 바툰 반도의 절벽 위 해발 75m에 있는데, ‘울루와뚜’라는 말은 ‘고귀한 절벽’이라는 뜻이다. 이 절벽 위에 서면 발아래로 쉴 새 없이 부서지는 거대한 파도와 망망대해를 바라볼 수 있다. 그 옆에는 10세기경 고승 우푸쿠투란이 세운 사원이 있고, 그 주변에는 관광객들의 음식을 노리는 수많은 원숭이가 있다. 힌두교에서는 원숭이를 ‘하누만(Hanuman)’의 현신으로 여긴다. 하누만은 인도 신화에서 라마(Rama) 신을 섬기며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신이다. 남을 돕고 배려하는 발리 사람들에 성품답게 하누만 신을 좋아한다.

마지막으로 발리 여행에서 꼭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우붓 왕조의 발자취 남아 있는 우붓 전통시장이다. 이곳은 서양인들의 영혼의 안식처와 같은 곳으로 카페, 레스토랑, 음식점, 저렴한 호텔 등 다양한 먹거리와 편의시설을 들어서 있다. 무엇보다 발리의 전통 공예를 직접 볼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전 우붓의 영주였던 초코르다 스카와티는 이곳을 찾은 독일인 화가이자, 음악가인 발터 스피스, 멕시코의 화가 미겔 코바루비어스, 캐나다의 음악 연구가 콜린 맥피, 인류학자 마가렛 미드 등을 집으로 초대해 극진하게 대접했다. 이들이 남긴 서양 예술이 발리 문화와 접목하면서 음악, 회화, 무용 다양한 분야에서 발리만의 문화예술로 발전하였고, 그 중심에 우붓이 있었다. 이처럼 발리는 역사, 예술, 종교 등 다양한 이질적인 문화를 접할 수도 있지만, 바다와 파도 그리고 따스한 현지인들의 미소가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바람도 구름도 파도도 사람도 잠시 쉬어가는 발리.
바쁜 일상을 뒤로하고 그저 망중한을 즐기고 싶은 발리.
인도네시아는 이슬람 국가이지만 발리만은 힌두교 신자들의 섬이다.
서퍼들의 지상 천국이라 불리는 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