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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암절벽 위에 세워진 아름다운 고대 도시

제주한라병원 2021. 12. 7. 13:53

깎아지른 루멜 강 협곡 바위 위에 세워진 도시, 알제리 콘스탄틴.

 

알제리 콘스탄틴

 

역사적인 제국들의 패권다툼으로 주인 수차례 바뀌어

동서양의 다양한 문화 혼합돼 독특한 전통문화 만들어

 

2005년 키아누 리브스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 ‘콘스탄틴’과 도시 이름이 같은 알제리의 콘스탄틴은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이다. 200m에 이르는 루멜 강 협곡에 의해 두 도시로 나눠진 콘스탄틴은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오래된 고대 도시 중의 하나이다.

기암절벽 위에 들어선 도시는 기원전 600년경 페니키아인들에 의해 건설됐고, 도시의 이름은 ‘로열 시티’를 뜻하는 ‘세와(Sewa)’로 불렸다. 그 후 베르베르족이 건국한 누미디아 왕국의 시팍스 왕이 이곳을 점령한 뒤 ‘시르타(Cirta)’로 개명을 했고, 기원전 46년 카이사르가 시르타에 특별 시민권을 부여하면서 로마 제국의 식민도시가 되었다.

308년 로제 제국의 아프리카 총독인 도미니티우스 알렉산더는 아프리카 패권을 두고 로마 황제 막센티우스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자, 황제는 즉각 로마군을 아프리카에 보내 한바탕 전쟁이 시작되었다. 3년 후 알렉산더 총독이 전쟁에서 사망하자, 그가 비밀 도시로 삼았던 콘스탄틴은 무참하게 파괴되었다.

그 이후 도시는 재건된 뒤 콘스탄티누스 1세의 이름으로 따 ‘콘스탄틴’으로 명명되었다. 442년에는 게르만 계통의 반달족이 이베리아반도를 거쳐 이 지역을 지배하였지만, 동로마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와 그의 부하 벨리사리우스 장군이 반달족을 다시 섬멸하였다. 1529년 동로마제국을 무너뜨리고 지중해를 장악한 오스만제국이 아름다운 콘스탄틴을 지배하였다.

이 때부터 콘스탄틴에는 이슬람풍의 건축물들이 속속히 들어섰고, 1770년~1792년 사이에 건축된 건물들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물론 이슬람풍의 건축물만 있는 것이 아니라 1837년부터 1962년까지 130여 년을 프랑스의 식민도시였기에 유럽풍의 건물도 있고, 도시의 이름도 아랍어 ‘쿠산티나’에서 프랑스어로 ‘콩스탕틴’으로도 불렸다.

찬란하고도 유구한 역사 그리고 바위 절벽 위에 자리한 콘스탄틴은 알제리의 수도 알제에서 동쪽으로 400km 정도 떨어져 있다. 인구는 약 60여만 명이 살고 있으며, 알제리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도시 입구에 들어서면 압드 카데르 모스크의 웅장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프랑스는 1830년대 알제리, 1881년 튀니지, 1912년 모로코를 차례로 식민지로 삼았다. 이 중에서 알제리의 종교 지도자이자 군대를 이끈 압드 카데르는 1830년부터 1847년까지 프랑스를 상대로 독립 투쟁을 벌였다. 그의 숭고한 정신을 기르기 위해 모스크를 1994년에 완공하였다. 현대식의 모스크는 최대 1만 5,000여 명을 수용할 만큼 큰 규모이고, 모스크 입구에 서 있는 미나렛의 높이는 무려 107m이다. 모스크는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에 있는 하산 2세의 그랜드 모스크처럼 화려하고 웅장하다.

스테인드글라스 창문과 대리석 바닥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사원들의 장점들을 부분적으로 가져와 매우 정교하고 호화로운 모스크로 건축됐다. 이슬람교도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기도가 없는 시간에 내부를 개방하고, 모스크 주변에는 대학교, 문화센터, 관공서, 세계 유명 호텔 등이 들어서 있다.

본격적으로 고대 페니키아, 누미디아, 로마, 반달, 이슬람, 오스만제국, 프랑스 등의 혼재된 문화를 만나기 위해서는 모스크를 등지고 구시가지인 메디나로 가야 한다. 사실 콘스탄틴은 도시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루멜 강이 깊은 협곡을 만들어 어쩔 수 없이 깎아지른 기암절벽에 집이 하나둘씩 생기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바위산에 들어선 마을은 8개의 다리로 연결되고, 연결된 다리를 통해 콘스탄틴은 세계와 또다시 연결된다. 그래서 이곳을 ‘교량의 도시’라고 부르고, 콘스탄틴을 방문한 대부분 사람은 서로 다른 다리를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촬영한다. 어떤 다리는 현수교, 어떤 다리는 석재 다리, 어떤 다리는 유럽식 스타일 등등. 저마다 생긴 모습도 다르고 건축된 연대도 다르다.


콘스탄틴은 프랑스의 식민도시였기에 이슬람 문화와 유럽의 문화가 혼재돼 있다.

그럼 콘스탄틴의 8개 다리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어느 것일까? 인터넷 검색창에 ‘콘스탄틴 브리지’를 검색하면 제일 많이 나오는 사진이 바로 시디 마시드 언덕과 구시가지 메디나를 연결한 ‘시디 마시드(Sidi M’Cid)’ 다리이다. 1912년 4월에 개통된 이 다리는 현수교이고, 길이는 164m나 된다. 1929년 11월 미국 콜로라도의 로열 협곡 다리가 개통될 때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175m에 세워진 다리였다. 프랑스 엔지니어 페르디난드 아르노딘이 설계를 했고, 자동차와 사람이 함께 건널 수 있다. 다리에서 서면 발아래로 루멜 강과 멋진 협곡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두 번째로 유명한 다리는 콘스탄틴 다리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길이 128m, 높이 125m에 건설된 ‘엘 칸트라(d'El-Kantara)’이다. 로마 시대의 다중 석조 아치에서부터 프랑스 철 아치까지 시대를 달리하며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는데, 1857년 알제리가 프랑스를 상대로 전쟁을 치를 때 프랑스군의 공격을 받아 다리는 무너졌다가 1860년~1863년 사이에 금속 아치 형태로 재건되었다. 그 이외에도 보행자 전용 다리로 만든 ‘악마의 다리’가 있는데, 이것은 17세기 오스만제국의 통치 기간에 만들어졌다. 1925년 높이 80m 위에 세워진 폴스 브리지도 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다리 이외에 가볼 만한 곳은 구시가지, 메디나 안에 있는 아흐메드 베이 궁전(Ahmed Bey Palace)은 1835년 콘스탄틴이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을 때 건축된 것이다. ‘베이(Bey)’라는 단어는 이 지역을 담당했던 ‘총독’의 뜻으로, 그 당시 오스만제국은 알제리를 3개 지역으로 나눠서 다스렸다. 오스만제국이 물러간 뒤 프랑스 식민 시절에 베이 궁전이 증축되었고, 주요 행정시설로 사용되었다. 알제리가 프랑스와 독립전쟁을 할 때 알제리 군대의 본부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독립이 끝난 후 베이 궁전은 방치되었다가 1990년대 다시 복원해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궁전 안에는 3개의 스위트 룸과 야자수와 오렌지 나무가 심어진 정원으로 구성돼 있고, 스위트 룸은 266개 대리석 기둥, 3개의 안뜰, 대리석으로 조각된 2개의 분수, 삼나무로 만든 540개의 문 등 다양한 조각과 장식으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궁전 벽에는 아흐메드 총독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와 카이로, 리비아 트리폴리, 알제리, 이스탄불 등 1818년~1819년 여행을 다녀온 장면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이처럼 콘스탄틴은 동서양의 다양한 문화를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냈다. 그 결과 2015년 ‘아랍 문화의 수도(Arab Capital of Culture)’로 선정될 만큼 문화의 우수성과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세계인들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압드 카데르 모스크는 알제리의 국민 영웅, 압드 카데르 장군의 이름에서 유래.
인구 60만 명의 콘스탄틴 시민들의 영혼의 안식처인 압드 카데르 모스크.
마치 요새처럼 기암절벽에 세워진 바위의 도시, 콘스탄틴.
콘스탄틴에 인구가 증가하자 신시가지에 빼곡하게 들어선 아파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