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장크트 길겐
1만여년 전 바다였으나 알프스산맥 생성 때 암염과 함께 융기
모차르트의 외가로 그가 방문한 적 없지만 이야기는 넘쳐나
알프스와 모차르트의 선율이 일 년 내내 흐르는 잘츠부르크에서 자동차로 20여 분만 달려가면 천혜의 아름다움을 가진 잘츠캄머굿에 이른다. 이곳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행정구역이 아니라, 맑은 호수와 울창한 숲이 많은 오스트리아 중부 지역의 자연경관 지역을 말한다. 독일어로 잘츠(Salz)는 ‘소금’을 의미하고, 캄머굿(kammergut)은 ‘황제의 소금 창고’를 의미한다. 잘츠캄머굿의 대표적인 도시로는 장크트 볼프강, 그문덴, 장크트 길겐, 할슈타트 등이 있는데, 할슈타트의 ‘할(Hal)’도 켈트어로 소금을 의미한다. 그럼 왜 알프스산맥에서 소금이 나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이 생길만한데, 그 이유는 1만여 전 잘츠캄머굿은 바다였기 때문이다. 알프스산맥이 생성될 때 크고 작은 70여 개의 호수와 육지로 뾰족하게 솟아오른 알프스가 만들어진 것이다. 세월에 의해 깊은 바다에서 염화나트륨의 결정체들이 고온고압에 의해 퇴적암이 됐고, 산이 생성될 때 암염이 같이 융기된 것이다.
중세시대 때 소금은 황금만큼 귀하고 비쌌고, 나라에서 공적 재산으로 관리했다. 캄머굿이라는 소금 창고의 의미도 오스트리아 ‘황제의 소금 창고’를 의미하는 것이다. 잘츠캄머굿 지역에서 생산된 소금은 ‘소금의 언덕’이라고 불리는 잘츠부르크에서 잘자흐강과 독일 뮌헨의 이자르강을 따라 유럽 전역으로 수출됐다. 지금은 소금을 생산하지 않고 산림업과 관광업이 잘츠캄머굿의 주요 산업이 됐고, 소금과 관련된 문화를 유네스코에서 인정해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잘츠캄머굿에 있는 도시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도시는 할슈타트이다. 과거 소금 광산으로 부를 누렸던 곳이 폐광되면서 광부들이 형형색색의 꽃을 심고, 그림 같은 집을 건축해 동화 같은 도시로 바꿨다. 그 결과 해마다 전 세계 여행자들이 이들이 사는 마을을 보기 위해 수백만 명이 찾는다. 반면, 최근에서야 잘츠캄머굿에서 주목받고 있는 마을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장크트 길겐이다. 우리에게 다소 낯선 도시이지만, 모차르트 어머니의 고향이자, 모차르트의 유일한 혈육인 누나 난네들(본명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이 결혼해 정착한 도시이다.
잘츠캄머굿 초입에 있는 장크트 길겐은 빙하가 녹아서 생긴 ‘볼프강 호수’를 중심으로 주민 4,000여 명이 그림 같은 집을 짓고 평온한 삶을 사는 곳이다. 볼프강 호수를 끼고 해발 542m에 있는 장크트 길겐이 문헌에 등장한 시기는 1376년이고, 2005년 오스트리아 관광청에서는 이 도시를 ‘모차르트 마을’로 승격하였다. 도시 이름인 ‘장크트 길겐’에서 장크트는 독일어로 ‘성인(聖人)’을 뜻하는데, 일명 ‘세인트(Saint_영어)’, ‘생트(Saintes_프랑스어)’ 등의 뜻과 같다. 마을은 명성에 비해 아주 작고 소박하다. 마을 중심에는 볼프강 호수가 있고, 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1,522m 높이의 쯔뵐페호른 산이 있다. 이곳으로 오는 방법은 자동차를 이용해도 되고, 볼프강 호수 동쪽 끝인 스트로블에서 서쪽 끝인 장크트 길겐까지 유람선을 타고 올 수도 있다.
일단 동화 같은 장크트 길겐에 들어서면 아기자기하고 예쁜 집들이 눈에 들어오고, 모차르트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동상과 그의 얼굴 등이 마을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모차르트는 단 한 번도 외갓집이 있는 이 도시를 방문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 도시 어딜 가든 모차르트와 관련된 이야기뿐이다.
모차르트의 선율만큼이나 아름다운 이 도시에서 제일 먼저 방문하게 되는 곳은 모차르트 어머니가 태어나고 자란 생가이다. 크림색으로 칠해진 건물 창문에는 모차르트와 그의 어머니 그리고 누나의 그림이 그려져 있어, 누구나 쉽게 이 집을 찾을 수 있다. 사실 모차르트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는 별로 전해지는 것이 없다. 모차르트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스승이자, 동료이자, 아버지인 레오폴트 모차르트이다. 아버지는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제본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난 뒤 잘츠부르크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 왔다가 어려서부터 재능을 발휘한 음악으로 전공을 바꿨다. 그 후 잘츠부르크 대성당의 바이올린 연주자를 걸쳐, 1743년 잘츠부르크 대주교 궁정악단의 바이올린 연주자로 44년간 근무를 하였다. 잘츠부르크에서 자리를 잡았던 아버지는 이곳 출신의 어머니 마리아 안나를 만나 결혼을 했고, 7명의 자녀를 낳았으나 모두 죽고 모차르트와 누나 난네를 두 명만 키웠다. 아버지의 성격은 꼼꼼하고 냉정했지만, 어머니는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을 가졌다고 한다. 모차르트는 아버지에게 음악적 재능을 물려받았지만, 성격은 어머니를 닮았다고 한다.
작은 마을이지만 발길 닿는 데로 걷다 보면 ‘카페 난네를(Café Nannerl)’ 눈에 들어온다. 현재 이곳은 차도 마시고,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있는 카페이지만, 원래 난네를이 결혼 후 정착했던 곳이다. 그녀는 동생 모차르트가 ‘신의 총아’였기에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비운의 천재이다. 초기에는 난네를이 뛰어난 피아노 연주자로 이름을 날렸지만, 18세기에 여성들이 피아노를 치고 음악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해 바이올린 연주자로 돌아섰다. 모차르트가 유럽 전역에 명성이 알려질 때 누나는 연주 여행을 함께 하지 못하고, 결혼을 준비해야 했다. 여성으로서 태생적 한계를 넘지 못한 난네를은 1783년 8월, 32세 늦은 나이에 지방 판사와 결혼을 하고, 장크트 길겐에 정착하였다. 18년 동안 조용한 도시 장크트 길겐에서 살다가 남편이 죽자 그녀는 잘츠부르크로 가 음악 교사로 재직하다가 말년에 시각을 잃고 78세 나이로 사망하였다.
카페 난네를에서 따스한 차 한잔 마시는 동안 그녀와 모차르트에 대한 삶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이 도시에서 볼거리는 아주 제한적이다. 하지만 볼프강 호수에서 유람선을 타거나 케이블카를 타고 쯔뵐페호른 산에 올라 한눈에 호수와 장크트 길겐 그리고 알프스의 아름다움을 만끽해도 좋다. 그 이상 바랄 것이 무엇이 있을까!
'병원매거진 > 이태훈세계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번은 가보고 싶은 곳, 세계 서퍼들의 천국 (0) | 2021.12.27 |
---|---|
기암절벽 위에 세워진 아름다운 고대 도시 (0) | 2021.12.07 |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모라비아 왕국의 수도 (0) | 2021.09.29 |
프랑스 예술가들의 안식처였던 ‘튀니지안 블루’ (0) | 2021.06.28 |
엘 그레코의 예술적 영혼이 스민 중세 도시 (0) | 2021.05.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