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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모라비아 왕국의 수도

제주한라병원 2021. 9. 29. 09:38

체코의 묻혀진 보석으로 불리는 세계문화유산의 도시, 올로모우츠

 

체코 올로모우츠

 

중부 유럽에 위치한 지정학적 이유로 이민족의 침략에 시달려

중세의 우아한 기품과 모차르트의 감미로운 음악 선율이 남아

 

체코 모라비아주의 주도인 브르노에서 북동쪽으로 약 60㎞를 달려가면 중세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올로모우츠에 이른다. 우리에게는 아주 생경한 올로모우츠는 체코에서 다섯 번째로 큰 도시이자, 중세 시대 때 지어진 건축물이 프라하 다음으로 많은 곳이다. 우선 구시가지에 들어서면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등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들이 천년의 세월을 딛고 늠름하게 오늘도 어제처럼 도시를 지키고 있다.

독일어로 ‘올뮈츠’라고도 불리는 이 도시는 9세기에 70년 가까이 지속되었던 모라비아 왕국의 중심지였다. 현재 체코 공화국은 남북으로 흐르는 블타바강을 경계로 서쪽의 보헤미아 왕국과 동쪽의 모라비아 왕국이 합쳐져 이루어진 나라이다. 프라하가 보헤미아 왕국의 수도라면 올로모우츠는 모라비아 왕국의 수도였다. 그럼 중부 유럽에서 하나의 독립된 왕국으로 성장했던 모라비아는 어떤 왕국이었을까? 슬라브족이 건국한 모라비아 왕국은 북서쪽으로 보헤미아, 북동쪽으로는 폴란드의 슐레지엔, 동쪽으로 슬로바키아와 국경을 함께했다.

올로모우츠는 인구 10만 명의 작은 도시지만, 과거 모라비아 왕국의 수도였다.


좀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기원전 4세기경 켈트족이 최초로 이곳에 삶의 뿌리를 내렸고, 그 뒤로 게르만족이 들어와 살았다. 그 후 왕국의 기초가 마련된 시기는 8세기 말 슬라브족이 모라바강 유역에 정착하면서부터였다. 이들은 강의 이름을 따 자신들을 모라비아인이라 명명했고, 나중에는 보헤미아 왕국, 폴란드 남부, 헝가리 서부로까지 영토를 확장해 왕국을 건설했다. 그러나 906년 모라비아 왕국은 마자르족의 공격으로 멸망한 뒤, 보헤미아 왕국에 복속되었고, 17세기 유럽이 30년 전쟁에 휘말렸을 때 스웨덴의 침략을 받아 도시 대부분이 파괴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처럼 올로모우츠는 중부 유럽에 위치한 지정학적 이유로 이민족의 손에 불운한 역사를 자주 겪어야 했다. 하지만 시민들의 굳은 의지로 다시 아름다운 도시를 재건할 수 있었다.

중세의 고풍스러운 운치가 도시 곳곳에 스민 올로모우츠. 이곳은 12세기에 지어진 세인트 벤체스라스 대성당, 15세기에 지어진 시청사 등 200여 개의 역사기념물이 넘쳐나는 건축의 도시이기도 하다. 모라바강, 비스트리체강, 기름진 평원 등으로 둘러싸인 올로모우츠는 체코 남서부에서 생산되는 농축산물의 집산지이자 상업 도시로 성장했다. 그중에서도 치즈와 맥주는 보헤미아 지방에서도 알아주는 특산품으로 유명하다. 현재는 체코의 동서와 남북을 연결하는 철도의 중심지로 발전하고 있다.

‘L’자 모양의 구시가지 안에는 야트막한 3개의 언덕이 있고, 각기 다른 언덕의 중심에는 호르니 광장, 도르니 광장, 바츨라프 광장 등이 터줏대감처럼 자리하고 있다. 그 옆으로는 교회, 박물관, 집, 학교 등이 들어서 있는데, 그중에서도 호르니 광장은 구시가지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고딕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시청사 앞은 프라하의 구시청사처럼 매시 정각마다 천문시계를 보기 위해 사람들로 북적인다. 높이 14m의 시계는 매 시각 6분가량의 음악과 종소리, 인형의 춤 등은 프라하의 구시청사의 천문시계만큼의 화려함과 정교함은 떨어지지만, 올로모우츠의 색다른 볼거리로 인기를 끌고 있다. 또한 광장 안에는 높이 35m의 삼위일체 탑과 2개의 분수가 있는데, 시청사 서쪽에 있는 삼위일체 탑은 1716년에 착공해 1754년에 완공됐다. 중세 유럽의 바로크 양식으로 세워진 이 탑은 외부 장식이 아름답고 보존 상태가 우수해 시청사 건물과 함께 2001년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15세기에 건축된 시청사와 조각상이 인상적인 삼위일체 탑.

탑 외부에는 수십 개 동상이 있고, 탑 꼭대기에는 십자가를 든 황금빛 조각상이 있다. 탑 주변 계단에 앉은 시민과 여행자들은 시청사와 주변 건물을 감상하거나 책을 읽으며 자유로움을 만끽한다.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며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 탑 옆의 분수대에서 물장난을 치며 천진난만한 웃음꽃을 피우는 아이들도 빠질 수 없다. 도시를 감상하기 위해 찾아온 관광객들은 광장 주변과 탑 주변에 마련된 벤치나 노천카페에 앉아 풍요로운 오후의 햇살을 즐긴다.

세월의 흔적들이 켜켜이 쌓인 구시가지를 천천히 걷다 보면 생김새와 크기가 서로 다른 바로크 양식의 화려하고 인상적인 분수대를 많이 보게 된다. 구시가지 광장을 비롯해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규모만 되면 영락없이 예쁜 분수대들이 들어서 있다. 이 중에서도 호르니 광장에는 헤라클레스 분수와 거북이와 물고기를 안고 있는 아리언 분수가 있고, 도르니 광장에는 삼지창을 휘두르는 넵튠 분수가, 공화국 광장에는 반인 반어의 바다의 신, 트리톤 분수가 있다. 그 밖에도 주피터 분수, 카이사르 분수, 머큐리 분수 등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의 모습을 본떠 제작된 분수들이 이 도시에 산재해 있다.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분수대는 올로모우츠의 문화예술에 대한 미의식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한다. 그중에서도 도르니 광장에 있는 넵튠 분수는 올로모우츠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것으로 이곳 시민들에게 가장 많이 사랑받는 분수이자 도시의 희로애락을 함께한 상징물이기도 하다. 원래 이 분수는 식수를 저장하는 물탱크용으로 만들어졌다가 17세기에 폴란드 출신의 조각가 미셸 만디크에 의해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분수가 되었다.

18세기에 건축된 높이 35m의 삼위일체 탑과 아름다운 아리언 분수.

중세풍의 건축물, 바로크 양식의 멋진 분수들, 시민들과 삶의 궤적을 함께한 골목길 등 올로모우츠는 체코가 숨겨 놓은 보석과 같은 도시이다. 우리에게는 다소 낯설고 여행하기에도 쉽지 않은 도시이지만, 중세 시대 때 유럽의 귀족들과 예술가들은 이 도시의 매력을 감상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는데, 그중에서도 모차르트가 대표적인 명사이다. 구시가지 광장을 벗어나 일명 ‘돔의 언덕’이라 불리는 곳에 세워진 성 바츨라프 성당으로 다가서면 모차르트의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바람이 되어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 1767년 열두 살의 소년 모차르트는 부모님과 함께 처음 이 도시를 방문했다. 연주 여행 중이었던 모차르트의 가족은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멋진 연주를 선보인 후 모라비아 지방을 순회공연 하던 중 올로모우츠에 반해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당시 모차르트는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피부 발진이 생기자 조용하고 차분한 올로모우츠에서 몸을 추슬렀다. 이때 모차르트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시작한 ‘교향곡 6번 F장조(Symphony No. 6 in F major, K.43)’을 완성하였다. 이처럼 올로모우츠는 중세 시대의 우아한 기품과 모차르트의 감미로운 음악 선율이 도시 곳곳에 스며 있어 여행자들의 눈과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모차르트가 잠시 머물렀던 성 바츨라프 성당.

 

시민들과 여행자들로 언제나 북적이는 구시가지 광장.

 

프라하의 천문시계보다 규모는 작지만, 올로모우츠를 대표하는 천문시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