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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주의 숲, 후손들의 삶을 지탱해줄 미래 자산

제주한라병원 2021. 5. 25. 14:38

동·식물품고 허파역할 하던 곶자왈, 개발바람에 여지없이 무너져

 

지구 온난화, 기후변화와 생태계 교란 등으로 전세계 피해 발생

‘카본프리 아일랜드(Carbon Free Island)’ 구호로만 그쳐선 안돼

 

제주의 오월은 평화이다. 생명이고 아름다움이다. 그 빛은 찬란하여 눈뜨고 마주하기 부끄럽다. 푸르디푸른 하늘과 쪽빛 바다, 연초록에서 짙은 초록빛을 가늠할 수 없는 숲은,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향기를 품고 있다. 숲길에 고즈넉이 피어난 들꽃들도 별 무더기를 이뤘다. 발끝에서 아른아른 피어나는 흙냄새, 어린 시절 친구들과 누비던 고향의 추억을 떠 올리게 한다. 나무마다 피워내는 온갖 꽃들과 꽃향기를 좇아 잉잉거리는 꿀벌의 노랫소리도 귓가를 간지럽힌다. 숲을 휘졌고 다니며 지저귀는 새소리, 한라산 자락에서 컹컹대며 짝을 찾는 노루들의 애틋함도 자지러지게 정겹다. 올곧게 우뚝 선 편백나무사이를 비집고 쏟아지는 한줄기 빛, 하늘과 땅을 잇는 통신선처럼 신비롭게 빛난다. 그래서 오월이다.

다시 제주의 환경을 생각하면 오월이 아니어도 좋다. 새싹을 잉태한 정월이면 어떻고, 다음 삶을 준비하며 낙엽을 떨궈내는 동짓달의 풍경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계절이 보배로운 제주의 환경이다. 그러나 요즘 숲길을 걸으면서 와 닿는 나의 느낌은 예전 같지가 않다. 조바심이다. 안타까움이다. 오름에 오를 때면 더욱 맥박이 뛰고 숨이 가빠진다. 나이 탓도 있지만 숲은 점점 사라지고 길은 점점 넓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 기자시절, 제주의 30년은 개발의 시대였다. 제주사람들의 먹고 살거리는 개발이 해결해

줄 거라고 믿었고, 그 누구라도 당연하게 생각했다. 호텔을 짓고 골프장을 지었다. 먹고 살만도 해졌다. 그러나 개발에 대한 욕심은 멈추지 않았다. 개발의 광풍은 자비가 없었다. 자연은 참혹하게 파헤쳐지고 환경도 점차 파괴됐다. 환경위기를 벌써부터 예고한 사회운동가들이나 학자들이 있었지만 그 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했다. 나 역시 그 소리를 외면했거나 소홀히 들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부끄럽고 안타깝다.

프랑스 낭만주의 작가 샤토브리앙은 "문명 앞에는 숲이 있고, 문명 뒤에는 사막이 남는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숲이 문명을 낳고, 숲이 사라지면 문명은 종말을 맞이한다는 말이다.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대체로 강유역이다. 숲이 울창하고 물이 풍부한 곳이다. 지금 이 지역은 황폐화됐거나 사막으로 변했다. 숲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숲은 맑은 물과 공기를 공급하는 공장이나 다름없다. 사람들은 숲으로부터 건축재와 종이 등 삶에 필요한 경제재는 물론 산소 등을 공급받아왔다. 숲이 뿜어내는 피톤치드라는 물질이 사람들의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이미 정설이다. 휴양기능으로서 숲의 역할이 강조되는 이유이다. 숲은 또한 지하수를 함양할 뿐 아니라 공기를 정화시키고 온도를 낮춰주는 기능도 한다. 그 혜택은 돈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 엄청나다. 그러나 사람들은 혜택을 받아 온 숲을 가꾸기보다는 훼손하는데 몰두해 왔다. 세계자연보호기금은 지구의 온난화로 이미 지구 전체 산림의 3분의 1이 치명적 위기에 처해 있다고 경고한다.

제주 역시 다를 게 없다. 제주의 동, 식물과 지하수를 품고 허파역할을 하던 곶자왈은 개발에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곳에서 자생하던 나무와 풀, 삶터를 이뤘던 곤충과 새, 동물들도 종적을 감췄다. 생명이 사라진 것이다. 그 자리에는 골프장이 들어섰고 관광단지들이 화려하게 자리 잡았다. 오름을 빙빙 둘러싸듯 하루가 다르게 주택들이 지어지고 있다. 그만큼 우리의 생명 같은 숲이 사라지고 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인류의 걱정은 지구의 온난화 문제이다. 지구가 점점 더워지고 있는 현상이다. 석탄이나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의 사용량이 증가하고 산림 벌채 등으로 그 속도는 매우 빨라지고 있다.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이산화탄소 등의 온실기체가 대기 중에 배출되면서 온실효과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온난화의 문제는 해수면의 상승이라든가 홍수와 가뭄 등의 기후변화, 생태계 교란, 농업 패턴의 변화, 대형 산불 등으로 인한 피해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코로나19와 같은 바이러스 감염도 온난화로 인한 환경변화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지구 온난화 현상을 해결할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숲은 늘리는 일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지구 산림 전체의 3분의 1이 치명적 위기에 놓여 있다는 말은 더 이상 숲의 확장은 가능하지 않다는 말과도 같다. 현재의 과학으로는 이산화탄소의 발생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나온 것이 탄소중립이다. 온실가스를 흡수하기 위해서는 배출한 이산화탄소의 양을 계산하고 탄소의 양만큼 나무를 심거나 풍력ㆍ태양력 발전과 같은 청정에너지 분야에 투자해 이산화탄소의 발생량을 제로로 맞춘다는 말이다.

제주도 역시 지난 2천 15년 ‘카본프리 아일랜드(Carbon Free Island) 제주 2030’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오는 2천3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겠다고 발표했다. 선언한지 7년이 지나고 있지만 뚜렷한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 보다 체계적인 계획이나 실행보다는 신재생에너지에만 몰두하는 사이 2030년은 눈앞에 성큼 다가섰다. 말이 앞서다보면 큰일을 그르칠 수 있다.

제주의 숲을 우선 지켜야한다. 개발의 유혹에서 한걸음 물러서야 탄소중립에 조금이라도 다가설 수 있다. 숲을 확장하지는 못할망정 파괴하는 일은 제발 그만하길 바란다. 제주의 숲은 우리 후손들의 삶을 지탱해줄 미래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언론인 김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