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향기가 묻어나는 아시아의 황금 도시
중국 마카오
삭풍이 휘몰아치는 어느 겨울날, 15세의 어린 신학생, 안드레아(김대건 신부의 세례명)는 일곱 달 동안 자신의 믿음을 좇아 마카오로 향했다. 죽음을 담보로 험난한 여행 끝에 찾아온 마카오는 중국 한 귀퉁이에 있는 도시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이색적인 풍경을 밀어내고 있었다. 일찍이 포르투갈 식민지로 인해 도시는 손만 대면 금방이라도 유럽의 향기가 묻어날 만큼 아름다운 콜로니얼 양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안드레아가 걸어서 수개월이 족히 걸린 마카오를 이제는 비행기로 몇 시간 만에 도착한다고 생각하니 인간의 문명이기가 참으로 편리하다.
하지만 마카오가 찍어내는 강한 색채는 작은 두 눈으로 담아내기엔 역부족인 듯 금방 가슴이 시원해진다. 홍콩의 화려한 네온사인만큼 현란하지 않지만, 마카오의 밤 풍경은 은은하게 비치는 조명과 노란색의 건물들이 마치 유럽에 온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한낮을 달구었던 자동차와 사람들이 도시를 휩쓸고 지나가면 밤거리는 네온사인을 흠뻑 빨아들여 낮 동안 묻어 두었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아시아에서 유럽의 자취를 느끼고, 카지노의 명성 때문에 이곳은 여행자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마카오는 김대건 신부가 6년간 신학을 공부하며 한국인 최초로 사제의 길을 걷기 시작했던 곳이기 때문에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곳이다.
서울의 종로구보다 조금 더 큰 마카오는 인구 60여만 명 정도이지만, 이곳을 찾는 한 해 관광객 수는 백만 명이 넘을 정도로 아시아에서 최고의 관광도시로 성장했다. 마카오라는 지명은 1553년 포르투갈 선원들이 젖은 화물을 말리기 위해 처음으로 도착한 ‘아마카오(阿媽)’ 항구를 발음하는 데서 ‘마카오’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 여기서 아마카오는 바다를 지키는 여신의 이름이다. 중국인들은 마카오를 ‘아오먼(澳門)’이라 불렀으며, 지난 1999년 12월 20일 포르투갈령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뒤부터 마카오를 ‘호우콩’, ‘호이컁’으로 부르기도 한다. 1997년 홍콩에 이어 442년 만에 중국으로 이양된 마카오는 ‘일국양제’ 원칙에 따라 홍콩처럼 특별행정구로서의 외교와 국방문제만을 제외한 채, 자치권을 인정받고 있다.
신의 이름을 지닌 마카오는 1550년대 포르투갈 무역상들에 의해서 처음으로 유럽 문화가 전해졌다. 포르투갈 사람들이 마카오에 도착했을 때 이곳은 광둥 지방의 농민들과 푸젠성의 어민들이 살고 있었다. 그 후 중계 무역항으로 급성장한 마카오는 많은 부를 축적했지만, 전략적 좋은 위치 때문에 유럽 열강들이 호시탐탐 빼앗으려 해 전쟁의 상처가 많은 도시이다.
△ 248m의 마카오 타워와 야경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마카오의 구시가지는 조선 청년 안드레아가 도착했을 때와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로 보존상태가 아주 좋다. 우선 마카오 여행의 중심이 되는 세인트 폴 성당은 이탈리아 예수회 신부들이 선교사 양성을 목적으로 설계했고, 종교 박해를 피해 나가사키에서 건너온 일본인들이 1637년에 완공했다. 불행하게도 1835년 태풍과 화재로 정문과 계단 일부, 외벽만 덩그러니 남기고 소실됐다. 바로크 양식으로 건축된 이 성당은 화려하고 섬세한 조각이 인상적이며, 가톨릭의 상징과 성경의 내용을 한자와 라틴어로 성당 외벽을 장식한 것이 특징이다. 아마 김대건 신부도 이 성당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기도를 올렸을 것이다.
이 도시의 랜드마크인 세인트 폴 성당을 시작으로, 그다음으로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 포르투갈 식민시대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세나도 광장이다. 이곳에 들어서면 과거 포르투갈에서 직접 가져와 만든 파도문양의 검고 흰 돌바닥이 사정없이 눈 속으로 파고든다. 처음 마카오에 입성한 포르투갈 사람들이 심한 태풍을 맞아 표류한 끝에 이곳으로 스며든 것처럼 과거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드는 그런 바닥문양이다. 아마 포르투갈의 수도인 리스본을 여행한 사람들이라면 마카오의 건축물과 물결문양이 아주 익숙할 것이다. 또한, 노랗게 물든 독특한 양식의 건물들이 돌길을 따라 늘어져 있어 마치 이곳이 마카오가 아닌 리스본의 로시우 광장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 포르투갈의 양식으로 건축된 마카오 여행의 중심지, 세나도 광장
450여 년 동안 중국문화와 포르투갈문화가 공존하며 발전한 마카오는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간접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아시아의 보석이다. 하지만 마카오는 미국의 라스베이거스와 함께 일확천금을 꿈꾸는 도박의 도시로도 유명하다. 아마 이 도시를 방문한 외국인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카지노에서 대박을 꿈꾼다.
마카오에서 도박이 시작된 시기는 대략 18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박을 좋아하는 중국인들답게 이미 마카오는 18세기 이후 제국주의의 넘쳐나는 식민 자본을 바탕으로 돈과 여자 그리고 도박의 도시로 변했다. 지금도 세나도 광장에서 바닷가 쪽으로 걷다 보면 ‘여인의 거리’가 나오는데 과거 외국 선원들과 중국 상인들로 이 거리가 시끌벅적했다고 한다.
그때 당시 여인의 거리가 얼마나 흥청거리고 도박이 성행했는가는 ‘전당포 박물관’을 보면 알 수 있다. 전당포 박물관에는 돈 되는 모든 것을 담보로 돈을 빌려준 곳인데 심지어는 여자를 맡아 두는 곳도 있었다고 한다. 도박에 미친 남편이 아내를 담보로 도박을 하고 빚을 갚지 못하면 아내는 이 거리 한 귀퉁이에 있는 술집에 팔려 고단한 인생을 살아갔다. 이처럼 마카오는 오래 전부터 도박의 도시로 자리를 잡다가 지금으로부터 62년 전부터 합법적으로 카지노가 운영되고 현재는 10여 개 카지노가 정부의 감독 하에 운영되고 있다.
마카오는 도박의 도시로 유명하지만 구시가지의 유적지들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면서 유서 깊은 역사와 문화의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마카오 중심에 서 있는 세인트 폴 성당을 중심으로 마카오의 역사를 품고 있는 유적지와 현대식 빌딩 숲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중국 속에서 또 다른 중국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외벽만 남아 있는 세인트 폴 성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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