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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리 물길 따라 떠나는 향긋한 봄꽃 여행

제주한라병원 2020. 3. 31. 15:09


500리 물길 따라 떠나는 향긋한 봄꽃 여행

섬진강




김용택 시인 때문에 더 많이 알려진 섬진강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 중의 하나이다. 두꺼비 ‘섬(蟾)’자와 나루터 ‘진(津)’자의 섬진강은, 전북 진안에서 발안하여 경남 하동으로 흘러 남해 광양만에 이르러서야 생명을 다한다. 19번 국도와 함께 나란히 흐르는 섬진강은 ‘꽃의 강’이라 불릴 만큼 봄이 되면 화려한 색깔로 옷을 갈아입는다. 남녘에서 불어온 봄의 정취는 구례와 광양에서 매화꽃을 터뜨리고 곧이어 노란 산수유와 붉은 진달래를 연신 피우며 섬진강을 따라 발원지인 진안까지 쏜살같이 달아난다. 그래서 봄이면 많은 행락객이 흐드러지게 핀 봄꽃들과 섬진강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껏 즐기기 위해 500리 물길을 찾아온다.

 

섬진강은 정확하게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원신마을 위쪽에 있는 해발 1,080m의 천상봉우리 중턱쯤에서 시작된다. 이곳에 ‘섬진강 발원지’라는 돌비석 하나가 서 있다. 비석이 서 있는 작은 샘이 바로 섬진강의 발원지인데 이 물은 한여름에도 이가 시릴 정도로 차고 맑다. 이 물은 진안을 굽이쳐 임실, 순창으로 들어서면서 오원강, 운암강, 적성강 등 여러 개의 이름으로 불리며 깊숙한 산길과 계곡을 따라 하류로 흘러간다. 


◇ 해질 무렵의 섬진강 풍경은 또 한낮과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쉬지 않고 흐르지만 봄의 기운은 반대로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발원지인 진안에는 아직 새봄이 오지 않았지만, 안개로 유명한 임실의 옥정호 주변에는 부지런한 농부의 쟁기질이 봄을 재촉한다. 일교차가 심해져 자욱한 안개가 앞을 가리지만 농부의 손은 쉴 수 없다. 게으름을 피우는 늙은 황소의 잔꾀에 한낮이 돼서야 작은 밭을 다 간다. 이처럼 봄은 느리게 시작하지만,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우리에게 성큼 다가선다. 


산과 마을을 품으며 쉴 새 없이 흐르는 물길은 남쪽을 향해 오늘도 변함없이 흐른다. 사시사철 흐르는 섬진강을 따라 구절양장으로 난 19번 국도는 드라이브 코스로도 유명하다. 곡성군 압록유원지에서 시작해 섬진강 하류인 하동까지 이어지는 50km의 19번 국도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특히 봄날의 19번 국도는 산수유와 벚꽃 그리고 진달래로 노랗고 하얗고 빨갛게 물들어 여행자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완연한 봄이 아니어서 새순이 아직 나오지는 않았지만, 꽃봉오리가 제법 봄의 향기를 가득 담고 있어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다. 지칠 줄 모르고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의 물줄기는 때로는 거세기도 하고 때로는 아기 숨소리처럼 부드럽기도 하다. 도로 옆으로 피어날 벚꽃을 상상하면 섬진강 드라이브는 소중한 추억이 된다.


평일의 19번 국도는 오가는 차량이 거의 없어 자동차로 섬진강을 즐길 수 있는 최적지다. 숨차게 50km를 달려오면 섬진강을 끼고 있는 가장 유명한 두 개의 마을, 구례와 하동에 이르게 된다. 강가의 고운 모래와 짙은 옥빛의 섬진강 그리고 가수 조영남의 ‘화개장터’로 잘 알려진 구례와 하동은 봄꽃으로도 아주 유명하다. 해마다 봄이면 구례는 청매화와 산수유가, 하동은 벚꽃으로 상춘객들의 마음을 흔든다.


◇ 광양 다압면은 해마다 3월이면 청매화가 피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이 중에서도 매년 3월 중순부터는 구례와 광양 일대에 청초한 매화가 피어나면서 겨울 속에 감춰 두었던 진한 향기를 섬진강으로 마구 뿜어내며, 강변에서 가장 먼저 봄의 서곡을 알린다. 강에서 피어나는 새벽 안개와 백운산의 맑고 깨끗한 이슬을 벗 삼아 자라는 매화는 남녘의 화사한 봄을 알리는 전령사다. 마치 신선들이 놀았을 만큼 아름다운 비경을 자랑하는 매화마을 주변에서 봄의 향기를 담기 위해 삼삼오오 짝을 이룬 사람들이 추억의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온데간데없다. 


매화 향기가 코끝에서 서서히 사라질 즈음이면 또 다른 꽃의 세상이 여행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구례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경남 하동인데, 이곳은 매화보다 개화 시기가 다소 느리지만 하얀 벚꽃으로 유명하다. 하동에서 쌍계사 길로 들어서면 아직은 꽃이 피지 않았지만, 매화가 질 무렵 하동 쌍계사 일원은 꽃의 제국을 연상케 할 만큼 새로운 봄의 교향시가 울려 퍼진다. 



◇ '쌍계사 벚꽃 십리 길'의 모습은 하얀 수채화와 같다



왕복 1차선 도로를 따라 어린 벚꽃의 꽃망울이 밤하늘에 별처럼 나뭇가지마다 매달려 있다. 일명 ‘쌍계사 벚꽃 십리 길’로 유명한 이 길은 요란스러운 진해보다 벚꽃을 감상하기 훨씬 좋다. 왼쪽으로 섬진강이 변함없이 조용히 흐르고, 길 양옆은 하얀 벚꽃으로 장식되어 마치 꽃의 나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특히 4월 초순에 하얀 벚꽃이 절정을 이루면 밭에서는 파릇한 보리가 탐스럽게 익어 봄의 정취를 더욱 짙게 한다. 간혹 화려한 벚꽃을 시기한 바람이 세차게 벚나무를 흔들기라도 하면 여린 가지에 매달린 벚꽃들이 일제히 흩날리며 하늘에서 꽃비가 내린다. 벚꽃 터널을 지날 때 이런 광경을 경험한다면 아마 무릉도원이 따로 없을 것이다.


이처럼 섬진강은 여러 개의 마을을 휘감아 돌며 봄의 기운을 여기저기 뿌려 놓는다. 봄날 섬진강변의 울긋불긋한 꽃들의 향연으로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더 행복해진다. 따뜻한 햇볕과 바람이 앙상한 가지에 잎사귀를 돋우고 섬진강물은 풍성한 녹음을 빚는다. 500리 물길의 봄날은 코끝이 찡한 향긋한 꽃내음으로 가득 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