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한 야경이 아름다운 수향마을
중국 우전(烏鎭)
상하이에서 남동쪽으로 130km 정도 달려가면 중국 특유의 전통건축물과 작은 운하들이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연상케 하는 우전(烏鎭)에 이른다. 일명 '수향水鄕 마을'의 대명사로 잘 알려진 우전은 우리의 하회마을처럼 문명의 이기에서 몇 발짝 물러나 있는 옛 마을이다. 주장, 둥리, 주자자오, 시탕, 난쉰 등과 함께 우전은 중국 6대 수향마을 문화재로 지정된 유서 깊은 옛 마을이다.
'수향마을'이라는 뜻은 말 그대로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좁은 운하를 따라 생겨난 마을을 지칭한다. 수향마을이 중국에 본격적으로 형성된 시기는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하면서 북쪽 지역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운하를 건설하면서 시작되었다. 수나라 양제는 항저우부터 베이징까지 1800km에 달하는 거대한 운하를 촘촘하게 만들어 백성들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여러 강의 지류들이 하나로 연결되면서 호수와 강에서 뻗어 나온 물줄기를 따라 삼삼오오 집들이 들어서면서 오늘날 수향마을이 조성된 것이다. 하지만 고속도로와 철도 등 대체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수향마을은 쇠락하기 시작했고, 현재는 물류 수송이 아닌 관광지로 변모하였다.
지난 2017년 중국 정부는 10여 개의 수향마을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로맨틱한 야경이 아름다운 우전은 노를 젓는 뱃사공과 운하를 따라 명·청 시대에 건축된 전통건축이 어우러져 자욱한 안개만큼이나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검은색의 기와와 검은색의 대문 등 우전의 건축물들은 한마디로 잿빛의 이미지다. 운하와 습기로 인해 집 안에 벌레가 많아지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검은색을 사용하면서 까마귀처럼 온통 집이 검은색이라 ‘우전(烏鎭)’이라고 불리게 됐다고 한다. 현재 우전은 강물이 마을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흘러 자연스럽게 동책과 서책으로 나누어졌고, 동책은 규모가 좀 작고 주로 관광지로, 서책은 레저휴가구역으로 정해졌다.
동책이든 서책이든 상관없이 마을 안으로 발을 디디면 1300여 년 된 고풍스러운 옛 건물, 운하 위에 놓인 아치형의 석조 다리, 운하를 따라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골목길 등이 아주 색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과거 우전이 물류 중심지로 전성기를 누렸을 당시 이곳의 다리 수는 120여 개가 넘었다고 한다. 강폭은 그리 넓지 않지만, 현재 강 위에는 30여 개의 다리가 세워져 있다.
중국 속에 또 다른 비경을 만나는 듯한 우전은 낮과 밤이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우선 낮에 우전을 찾는다면 고즈넉한 마을 분위기와 나룻배가 달리면서 물살을 가르는 소리, 그리고 뱃사공의 구성진 노래가 전부일 정도로 한가롭다. 하지만 밤이 되면 우전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한산했던 골목길은 지나치는 사람들과 어깨가 부딪칠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해 질 무렵이면 집마다 쏟아내는 작은 불빛을 흠뻑 빨아들인 운하와 물 위에 일렁이는 네온사인 등이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매혹한다.
나룻배를 타지 않더라도 운하가 잘 보이는 카페에 앉아 따뜻한 차 한 잔으로 얼마든지 우전의 낭만을 즐길 수 있고,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는 사람들의 행복해하는 모습만 바라봐도 좋은 곳이 바로 우전이다.
만약 우전에서 인문학적 향기를 느끼고 싶다면 동책에서 가장 유명한 명소인 중국의 대문호 마오둔(茅盾)의 옛집을 방문해 보는 것도 좋다. 과거 반공주의가 팽배했던 시절에 마오둔에 대해 왈가왈부한다는 것은 금기였기 때문에 그의 이름은 우리에게 아주 낯설고, 그의 문학세계도 우리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마오둔을 ‘근대문학의 아버지’로 부를 만큼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
중국 장편소설의 대가인 마오둔은 1896년 우전의 동책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1916년 베이징 대학을 진학할 때까지 마오둔이 살았던 옛집은 1988년 1월 보호 문화재로 지정됐고, 현재는 기념관으로 바뀌어 그의 초판본 작품, 편지, 어린 시절의 작문 원고, 사진, 붓글씨 등을 전시하고 있다.
스물다섯 살이 되던 해, 마오둔은 정전저, 왕퉁자오, 예샤오쥔 등과 함께 중국 최초의 순문학 단체를 만들었고, 상하이 공산주의자 모임에 가담해 서민들의 의식화에 앞장섰다. 그 결과 1949년 중국 공산당이 들어선 이후 초대 문화부장과 전국작가협회 주석을 역임하는 등 예술과 행정에서 모두 인정받은 혁명 작가가 되었다. 15개의 방으로 이뤄진 마오둔의 옛집을 천천히 둘러보며 마오둔의 흔적을 더듬어 보는 것도 우전 여행의 남다른 의미가 될 것이다.
마오둔의 옛집을 뒤로하고 한 걸음 더 마을 깊숙한 속살을 엿보고 싶다면 우전 여행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나룻배를 타야 한다. 구절양장으로 흐르는 강물 위를 유유자적하게 달리다 보면 고색창연한 건축물과 아름다운 아치형 석조 다리가 중세시대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해 질 무렵에 즐기는 뱃놀이는 여행의 대미를 장식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낭만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병원매거진 > 이태훈세계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양의 땅’ 호라즘의 심장부 (0) | 2019.12.31 |
---|---|
활력과 낭만이 넘치는 필스너 맥주의 고향 (0) | 2019.12.03 |
최고의 여름 휴양지, 지중해 품은 해변의 도시 (0) | 2019.10.02 |
순례자들이 잠시 머물러 가는 도시 (0) | 2019.08.30 |
영국 속의 또 다른 영국, 아름다운 상상의 나라 (0) | 2019.07.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