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력과 낭만이 넘치는 필스너 맥주의 고향
체코 플젠
체코 하면 동유럽의 중심지 정도로 생각하지만, 맥주 애호가들에게 체코는 독일 이상의 의미가 있는 ‘맥주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우리에게도 너무나 잘 알려진 버드와이저와 필스너 맥주가 바로 체코산이기 때문이다. 버드와이저는 미국에 의해 상표가 이용되고 있지만, 그 이전에 체코를 대표하는 맥주였다. 이외에도 체코는 버드와이저만큼 유명한 맥주가 필스너인데, 유럽 여행을 하다 보면 한 번쯤 마시게 된다. 150여 년이 넘은 필스너 맥주는 독특한 맛과 향 때문에 유럽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고, 우리나라에도 ‘플젠’ 이름을 딴 맥줏집이 있을 만큼 애호가들에게는 널리 알려져 있다.
프란츠 카프카의 문학적 지성과 드보르자크의 아름다운 음악선율이 일 년 내내 머무는 프라하에서 기차를 타고 남서쪽으로 90km 정도 달려가면 필스너 맥주의 고향, 플젠을 만나게 된다. 체코와 독일의 바이에른주 사이에 있는 플젠은 10세기에 인류사에 처음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문헌적인 기록에는 별다른 것이 없다. 1292년에 도시가 시가 되었고, 1295년에 바츨라프 2세에 의해 요새화되면서 도시다운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중세부터 필스너 맥주로 유명했던 이곳에는 1842년 설립된 시민 양조장 ‘메슈탄스키 피보바르’가 도시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맥주 말고 또 다른 상징물을 찾는다면 이곳에는 보헤미아 지방에서 가장 높은 첨탑을 가진 성 바르톨로메오 대성당, 1556년에 건축된 르네상스식의 시청사,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성모 마리아 교회 등이 플젠을 대표한다.
◇ 구시가지의 중심이 되는 대성당과 광장.
기차역에서 구시가지까지는 걸어서 10여 분 정도 걸린다. 보헤미아 지방의 맑은 바람을 등지고 천천히 산책하듯 구시가지로 들어서면 높이 102m 대성당 첨탑이 여행자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건넨다. 첨탑과 대성당의 규모만 봐도 과거에 플젠이 가톨릭의 종교적 향기가 얼마나 강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성당 앞에는 시민들과 여행자들이 마음껏 쉴 수 있는 레푸블리키 광장이 넓게 펼쳐져 있고, 이곳은 언제나 시민과 여행자들이 어우러져 활력과 기쁨으로 행복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광장과 성당을 중심으로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광장 내부에는 맥주의 고장답게 수많은 노천카페와 레스토랑이 여행자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불행하게도 아름다운 건축물들은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의 폭격으로 많이 파손된 것을 오랜 시간 동안 시민들의 노력으로 완벽하게 중세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그 결과 색조의 아름다운 건축물들은 중세풍의 우아함과 귀족적인 분위기를 한껏 뽐내고 있다.
◇ 고색창연함을 보여주는 르네상스식 건축물
100m가 넘는 대성당 첨탑에 올라서면 발아래로 아기자기한 구시가지와 도시를 감싸고 있는 아름다운 보헤미아 평원이 눈에 들어온다. 드넓은 평원과 보헤미아의 낭만적인 정서가 어우러진 플젠을 한참 동안 바라보면 자신도 모르게 서정적인 분위기에 사로잡힌다. 바로 이때 노천카페로 달려가 시원한 필스너 맥주 한 잔으로 목을
축이고 나면 플젠의 이미지는 더욱더 잊히지 않는 여행지가 된다. 잠깐 입이 즐거워졌다면 본격적으로 이 도시를 여행할 차례다. 필스너 맥주 공장을 견학하는 것도 좋고, 전차를 타고 구시가지를 마구 누벼도 좋다.
만약 좀 더 이곳에서 특별한 것을 찾는다면 지하도시를 탐방하는 것은 어떨까?
플젠에는 13세기부터 19세기까지 지어진 지하 터널과 지하도가 미로처럼 서로 얽혀있는 지하도시가 아주 매력적이다. 중세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 통로들은 수백 년 동안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됐다. 16세기 때 터널들은 마을의 분수와 급수탑으로부터 물을 끌어들이는 수로와 하수로의 역할을 했고, 도살장에서 흘러나오는 폐수의 통로로 이용되기도 했다. 또한, 지하 저장소는 식품과 다른 상품들을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지하 발굴 작업 때 출토된 항아리를 비롯한 여러 물건은 중세시대의 일상생활을 짐작케 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다만 터널 관람에는 반드시 현지 전문 안내자와 동행해야 하므로 자유롭게 여행할 수 없다는 것이 단점이다. 지하도시 이외에 19세기에 세워진 시나고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유대교회이다. 체코가 공산주의 체제하에 있을 당시에는 시나고가 황폐하게 버려졌다가 복원되었다. 한때 이곳에는 유대인 인구 2000여 명이 살았지만, 지금은 200여 명이 살고 있다.
플젠에서 색다른 볼거리는 바로크 시대의 약국 ‘하얀 일각수에서’이다. 이곳에는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약국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하얀 일각수에서’는 원래 예수회가 운영하던 것이었으나 1773년 예수회가 해산하면서 한 시민의 소유가 되었다. 선견지명이 있었던 새 주인은 현명하게도 오래된 기구와 장비들을 모두 보관해놓았다. 18세기에 사용되던 가구가 그대로 놓여있어 옛날 약재상의 모습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플젠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맥주 양조장 견학을 빼놓을 수 없다. 해마다 10월이면 뮌헨의 옥토버페스트처럼 이곳에서도 맥주 축제가 열린다. 꼭 축제 기간이 아니더라도 플젠의 양조장 견학은 항상 여행자들을 위해 열려 있다. 플젠에 왔다면 카페, 레스토랑, 호텔 등 다양한 곳에서 플젠을 대표하는 맥주, 필스너를 마실 수 있고, 꼭 마셔야 한다. 현재 우리가 마시고 있는 대부분의 라거 맥주는 이곳에서 만든 필스너 맥주가 원조이다.
◇ 플젠을 대표하는 필스너 맥주 양조장
19세기 중반 플젠의 양조장들은 어려움을 겪을 때 독일 바이에른의 젊은 양조사를 초빙해 새로운 기법으로 맥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젊은 양조사 중 요셉 그롤은 저온 발효 기법과 옅은 색의 맥아를 볶아 황금빛의 라거 맥주를 만들어냈다. 플젠의 넓은 지하 저장고는 저온으로 맥주를 숙성시키는 데 적합했고, 인근에서 생산된 품질 좋은 홉은 라거 맥주 탄생의 밑거름이 되었다. 이렇게 만든 라거 맥주는 곧 세계를 점령했고, 지금 우리가 마시는 맥주의 70% 이상을 라거가 차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플젠을 찾는 여행자라면 누구이든 이곳의 대표적인 맥주 ‘필스너 우르켈(Pilsner Urquell)’을 마시게 된다. 필스너 우르켈은 ‘오리지널 필스너’라는 뜻으로 플젠이 라거 맥주의 종가라는 자부심을 상징한다. 당시 플젠 지역은 독일어를 사용하는 오스트리아 제국 영토였기에 독일어 명칭이 지금도 사용되는데, 체코어로 필스너 우르켈은 ‘플젠스키 프라즈드로이’다.
시원한 필스너 맥주 한 잔을 마시고 나면 중세풍의 고즈넉한 플젠이 낭만적인 풍경으로 다가선다.
◇ 낭만적인 가을 햇살을 즐길 수 있는 공원의 오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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