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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여름 휴양지, 지중해 품은 해변의 도시

제주한라병원 2019. 10. 2. 14:55

최고의 여름 휴양지, 지중해 품은 해변의 도시

스페인 발렌시아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집시 여인이 과거를 회상하며 스페인 발렌시아에 관해 열심히 이야기를 나눈다. 지중해를 끼고 있는 해변의 도시, 발렌시아가 사람의 마음을 유혹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발렌시아는 우리에게 불꽃 축제인 ‘라스 파야스’와 토마토 축제인 ‘라 토마니타’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중에서도 매년 3월 12일부터 19일까지 일주일 동안 행해지는 불꽃 축제는 스페인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중세시대부터 시작된 이 축제는 목수들이 마분지와 천으로 싫은 사람을 인형으로 만들어 오래된 가구들과 함께 불에 태우는 전통에서 시작되었다. 또한, 발렌시아에서 30km 정도 떨어진 ‘부뇰’에서는 매년 8월이면 토마토 축제가 열린다. 1944년 토마토 가격이 폭락하자 이를 항의하기 위해 시의회 의원들에게 토마토를 던진 것에서 유래한 ‘라 토마니타’ 축제도 발렌시아를 대표하는 축제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2개의 축제로 일약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발렌시아는 와인과 올리브, 그리고 도자기 등으로도 유명하다. 늘 푸른 지중해를 끼고 있는 발렌시아의 기후는 사계절 온화하며 가을을 제외하곤 연중 거의 비가 내리지 않아 일 년 내내 해수욕을 즐길 수 있고, 겨울철에도 평균 기온이 10도를 웃돌아 북유럽 사람들에게 인기 많은 겨울 휴양지로 알려졌다. 그 결과 2017년에 미국 경제 잡지인 ‘포브스’에서 뽑은 살기 좋은 유럽 도시 50위 중 13위를 차지했고, 2018년에는 영국 ‘더 가디언’ 일간지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기 좋은 40개 도시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처럼 유럽에서는 인기 있는 휴양도시이자 축제의 도시로 사랑받고 있는 도시가 바로 발렌시아이다. 그렇다고 발렌시아가 아름다운 지중해만을 자랑하는 곳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발렌시아는 기원전 138년에 로마의 식민 도시로 건설되었고 5세기에는 서고트족에게, 8세기에는 이슬람에게 정복되었다. 그 후 이베리아반도를 정복한 우마이야 이슬람 왕조가 몰락하자 1010년 발렌시아 왕국으로 독립하였고, 1094년 카스티야레온 왕국의 알폰소 6세의 명을 받은 스페인의 전설적인 영웅, 엘 시드가 발렌시아를 정복한 뒤 1099년 사망할 때까지 발렌시아 왕국을 다스렸다. 이후 발렌시아는 1238년 9월에 아라곤 왕국에 합병되었지만, 자치권을 인정받아 사회적·경제적으로 최고의 번영기를 누렸다. 


굴곡진 역사를 지닌 발렌시아는 다른 스페인의 도시들처럼 고대 그리스, 카르타고, 로마 제국, 서고트, 이슬람 등의 지배를 받아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혼재되어 있다. 현재 도시 곳곳에 이슬람 지배 당시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으며, 1479년 아라곤 왕국의 다른 지역들과 함께 가톨릭 군주인 페르난도 왕과 이사벨 여왕이 통치하는 카스티야 왕국에 통합되는 등 동서양의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다. 


◇ 1850년부터 1859년 사이에 건설된 투우장.



우선 발렌시아 북역에 내리면 제일 먼저 오른쪽에 18세기의 네오클래식 양식으로 건축된 투우장과 중세풍의 건축물이 발렌시아의 이미지를 한껏 고풍스럽게 만든다. 역에서 발렌시아의 황금기였던 15세기의 유물 같은 건물들이 즐비하게 들어선 구시가지의 중심인 레이나 광장까지는 도보로 10분 남짓 걸린다. 구시가지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은 단연 대성당이다. 원래 이슬람 사원이 있었던 자리에 세워진 대성당은 1262년에 공사를 시작해 15세기에 고딕 양식으로 완성되었다. 이 성당의 가장 큰 특징은 서로 다른 양식으로 건축된 3개의 출입문이다. 가장 오래된 출입문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팔라우 문’이고, 메인 출입문은 18세기의 바로크 양식인 ‘철의 문’이고, 나머지 하나는 고딕 양식의 ‘사도의 문’이다.


그리고 정문 옆에는 구시가지에서 가장 높은 미겔레테 종탑이 터줏대감처럼 서 있다. 1380년부터 짓기 시작해 1429년에 완성된 이 종탑은 높이 50m에 8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건축 당시 ‘8’이라는 숫자는 신성함을 상징하는 수였다고 한다. 207개의 나선형 계단을 숨 가쁘게 오르면 1532년에 만들어진 7.5t의 커다란 종이 매달려 있다. 무엇보다 미겔레테에 오르면 발 아래로 구시가지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다만 가파른 계단 때문에 젊은이들을 제외하면 많은 사람이 오르지 않지만, 한번 종탑 꼭대기에 서면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망중한을 즐기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


높은 곳에서 내려와 대성당 뒤로 천천히 걸어가면 아름다운 분수가 인상적인 ‘처녀 광장’과 헤네랄리다드 왕궁,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전통 실크 거래소, 1929년에 만들어진 중앙 시장, 산토스 후안 성당,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구시가지 골목길 등 중세시대의 고풍스러움과 우아함을 만끽할 수 있다. 



◇ 처녀 광장에서 바라다본 발렌시아 대성당.



그렇다고 발렌시아가 중세시대 때의 건축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구시가지로 들어오는 출입문 중의 하나인 세라노 타워에서 버스를 타고 지중해를 볼 수 있는 바닷가 방향으로 20여 분 달려가면 발렌시아 미래의 상징물인 최첨단 문화 과학 예술 단지에 이른다. 이곳은 발렌시아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가 디자인하였으며, 과학과 기술에 연관된 교육뿐만 아니라 다양한 놀이시설까지 갖춘 복합 문화공간이다. 사실 우리는 스페인 하면 가우디 건축만 생각하지만, 이 도시 출신의 건축가 칼라트라바가 자신의 모든 열정을 바쳐 지은 과학 예술 단지는 21세기를 대표하는 스페인 건축의 백미이다. 


◇ 건축가 칼라트라바가 설계한 예술과 과학도시는 2000년에 문을 열었고, 6개월간 100만 명이 방문.



마지막으로 발렌시아 여행의 화룡점정은 지중해를 보는 것이다. 남북으로 250km의 해안을 가진 발렌시아는 드넓은 백사장과 하얀 모래가 인상적인 곳이다. 과학 예술 단지에서 버스로 10여 분만 달리면 야자수 나무와 일 년 내내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카바 날’과 ‘말 바로 사’ 해변이 나온다. 이 중에서 말 바로 사 해변은 지중해의 따뜻한 빛과 바람을 인상주의 화풍으로 그려낸 스페인 출신의 호아킨 소로야에게 영감을 준 곳으로 유명하다. 


인상주의 화가 소로야의 작품만큼이나 아름다운 발렌시아 해변에 노을이 물들기 시작하면 황홀한 풍경이 그림처럼 그려진다. 그리고 해변에 있는 수많은 레스토랑과 카페에는 현지인과 여행자들로 가득 차 또 다른 밤 풍경을 그려낸다. 


◇ 말 바로 사 해변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시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