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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속의 또 다른 영국, 아름다운 상상의 나라

제주한라병원 2019. 7. 29. 16:39

영국 속의 또 다른 영국, 아름다운 상상의 나라

웨일스 스란두드노

 



한 소녀가 숲속 근처에서 놀다가 어디론가 뛰어가고 있는 하얀 토끼를 만나면서 소녀는 놀라운 모험을 시작하게 된다. 소녀는 회중시계를 보는 토끼를 뒤쫓아가다 자신도 모르게 이상한 나라에 들어가 악명 높은 하트 여왕, 카드 병정, 담배 피우는 애벌레, 가발을 쓴 두꺼비 등이 벌이는 기상천외하고 신비한 세계를 체험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누구나 한 번쯤 읽어 보았을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이다. 판타지 소설 효시로 일컬어지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이솝, 안데르센과 더불어 세계 3대 동화작가로 불리는 루이스 캐럴이 1865년에 썼고, 100년을 훌쩍 뛰어넘어선 지금까지도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고 있다. 잠시 복잡한 일상을 접고 어렸을 적 꿈꾸었을 상상의 나라, 영국 웨일스 서북부 지역에 있는 스란두드노로 여행을 떠나 보자. 


◇ 짙푸른 대서양을 끼고 있는 스란두드노의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와 같다.



런던 유스턴 역에서 이른 아침 기차를 타고 3시간 남짓 북서쪽으로 달려가면 런던과 아주 다른 풍경들이 마구 눈 속으로 파고들어 정말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는 듯 묘한 느낌이 든다. 동화에서 보았던 모습들이 작은 수정체 안으로 쏟아져 들어와 기억 속에 깊이 묻어 두었던 동심이 저절로 솟아난다. 비록 완행 기차는 낡고 초라하지만, 동화 세계로 인도하는 것처럼 느껴져 왠지 낯설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웨일스 전원 풍경은 영혼까지도 아름답게 만든다.


4시간을 달려 도착한 기차역 푯말 ‘Cyffordd Llandudno’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영어 실력을 최대한 동원해도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웨일스어로 표기돼 마치 이상한 나라에 들어온 것처럼 영국에 와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게 해준다. 


◇ 기차역에서 신문을 읽고 있는 현지인의 모습.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역사 속으로 떠나 보면 웨일스는 영국 연방에 속하는 작은 나라이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영국은 남쪽으로 잉글랜드, 북쪽으로 스코틀랜드, 서쪽으로 웨일스와 북아일랜드로 구성돼 있다. 그래서 영국 국기인 유니언 잭을 보면 영국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잉글랜드 국기 세인트 조지 크로스, 1603년에 병합된 스코틀랜드 국기 세인트 앤드루 크로스, 1800년에 병합된 북아일랜드 국기 세인트 패트릭 크로스가 합쳐져 유니언 잭이 만들어졌다. 웨일스는 유니언 잭이 만들어지기 전에 잉글랜드에 병합돼 유니언 잭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녹색과 흰색 바탕에 빨간 ‘용’이 선명하게 그려진 독자적인 국기를 가지고 있다. 비록 다른 지역보다 일찍 병합되었지만, 지금까지 그들 나름대로 정체성을 지키며 켈트 문화와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플랫폼을 빠져 나와 10분쯤 걸어가면 콘위 강과 콘위 성, 바다 위에 떠 있는 형형색색 요트와 유람선들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강을 중심으로 오른쪽엔 하얀 별장들이 바다를 향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왼쪽엔 모진 풍파를 겪으며 북웨일스를 지키고 있는 콘위 성이 늠름하게 자리 잡고 있다. 



◇ 시원하게 바다를 가로지르는 요트와 아름다운 집들.



사실 이곳은 한국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스란두드노는 유럽인이나 미국 사람들에겐 여름 휴양지로 유명하다. 웨일스 휴양지의 대명사로 불릴 만큼 자연경관이 매우 아름다워서 유럽인들이 여름만 되면 이곳을 많이 찾는다고 한다. 작고 예쁜 이 마을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이유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때문이다. 앨리스 리델의 여름 별장이 바로 스란두드노에 있다. 이 동화가 탄생하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동화 저자인 루이스 캐럴은 옥스퍼드대학에서 수학과 논리학을 가르치는 교수였고 앨리스 리델은 당시 옥스퍼드대학 학장으로 있던 핸리 리델의 딸이었다. 캐럴 교수는 학장과 친분이 두터워 그의 세 자매 앨리스, 로리나, 이디스와도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여기서부터 이 동화가 탄생하기 시작했다. 캐럴 교수는 그 당시 사진작가로 활동했는데, 아이들의 사진을 잘 포착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것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탄생하게 한 배경이다. 


앨리스가 살았던 스란두드노를 둘러보면서 사람들은 어릴 때 소중한 꿈들을 떠올리며 상상의 세계로 빠져든다. 우울한 런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이 마을은 동화 속에서 엿볼 수 있는 많은 이미지로 가득 차 있다. 바다 위엔 요트와 유람선이 떠 있고, 녹색 잔디와 어우러진 꽃들, 벤치에 앉아 열심히 책을 읽고 있는 노부부, 조용한 산책길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 마을은 파란 하늘 아래 하얀색 옷을 입었고 지나가는 어린이들 맑은 눈 속엔 웨일스인의 따뜻한 정이 스며 있다. 인간이 상상의 날개를 펼 수 있는 까닭은 직접 체험했거나 간접적으로 얻은 모든 것들이 머릿속에서 영화처럼 편집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 해맑은 웃음을 간직한 스란두드노의 아이들.



여기서 잠깐 앨리스에 대한 상상의 날개를 접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콘위 성으로 가면 중세시대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다. 세월의 먼지를 켜켜이 뒤집어쓴 콘위 성은 성과 성벽이 삼각형 모양으로 마을을 둘러싸고 있어 철저하게 외부와 단절돼 있다. 원래 이 성은 잉글랜드 헨리 3세의 맏아들인 에드워드 1세가 북웨일스를 정복하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특히 콘위 성은 4년 만에 완성되었는데 당시 축조 기술로 보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짧은 시일에 지어졌다. 성 외벽과 8개 원기둥꼴 탑이 있고 도개교와 내리닫이 문이 설치돼 있으며, 높이 약 9m 성벽이 1㎞에 걸쳐 콘위 시내를 철옹성처럼 에워싸고 있다.


콘위 성은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보존 상태가 비교적 좋아 성 안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이상한 나라에 들어가는 것 같다. 성 내부는 푸른 잔디와 울퉁불퉁한 돌밭, 그리고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벤치, 미로처럼 얽힌 내부, 높게 세워진 원형 탑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름이 각각 다른 8개 원기둥꼴 탑으로 올라가면 제각기 빚어내는 북웨일스의 멋진 풍광이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아름답다. 


◇ 1283∼1289년에 에드워드 1세가 웨일스의 침략을 막기 위하여 건설한 콘위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