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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의 도시

제주한라병원 2019. 4. 30. 10:06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의 도시

중국 상하이



유유히 굽이쳐 흐르는 장강(양쯔강) 하류에 똬리를 튼 상하이는 20세기 초반 미국의 뉴욕과 영국의 런던에 이어 세계적인 금융 도시로 성장하였다. 또한, 우리에게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가 있는 도시로도 잘 알려져 있다. 150여 년 전 아주 작은 어촌에 불과하던 상하이는 베이징, 충칭, 텐진과 더불어 중국 4대 직할시가 되었고, 고층빌딩의 화려함과 역동성을 지닌 국제도시이자 중국의 경제수도로서 명성을 날리고 있다. 


한 걸음 더 과거 속으로 들어가 보면 상하이는 1842년 난징조약으로 영국에 의해 강제적으로 개항되었고, 서양문물을 빠르게 받아들여 국제적인 상업 도시로서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어찌 보면 상하이의 발전은 서구 열강들의 제국주의와 관련이 깊다. 


19세기 중반 이후 청나라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서구 열강들의 먹잇감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와 달리 중국은 워낙 거대한 나라였기 때문에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등 한 국가가 상하이를 독차지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세계열강들은 일명 ‘조계지(租界地)’라는 공동통치구역을 설정해 상하이를 지배하였다. 


1945년 일본의 패망 후 중국 공산당은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을 대만으로 쫓아내고 상하이를 차지했지만, 덩샤오핑에 의한 개혁개방 정책이 시행되기 전까지 상하이는 중국의 여느 도시와 별다른 차이 없이 발전하지 못했다. 1990년 이후 중앙정부는 푸동 지구의 대대적인 개발계획을 발표하고, 상하이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시작하면서 동양의 또 다른 홍콩을 꿈꾸기 시작하였다. 이후 상하이는 “하루가 1년 같다”라는 말처럼 30여 년 만에 세계적인 경제의 중심도시로 성장하였다. 


◇ 유럽풍의 금융빌딩들이 즐비하게 들어선 와이탄 지구


상하이 여행의 중심은 황푸강을 중심으로 좌우로 대비되는 푸동 지구와 와이탄 지구이다. 그중 상하이의 마천루를 형성한 푸동 지구는 매일 밤이면 화려한 네온사인의 불빛이 홍콩야경만큼이나 아름답고 다양하다. 이곳에서 가장 상징적인 빌딩은 동방명주(Oriental Pearl TV Tower )이다. 이 빌딩은 상하이를 상징하는 랜드마크인데, 높다란 기둥을 중심축으로 구슬 세 개를 꿰어놓은 듯 독특한 외형이 인상적이다. 1994년에 준공된 동방명주는 방송 송신탑으로 높이 468m이고, 건설 당시 캐나다, 러시아, 중국 광저우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높은 건물이었다. 하지만 현재 푸동 지구에서 가장 높은 빌딩은 2015년에 완공된 상하이 타워다. 높이 632m의 상하이 타워는 120도 수직으로 비틀어진 건물 외형이 마치 용이 승천하는 모양을 닮았다.


푸동 지구의 완벽한 스카이라인을 감상할 수 있는 와이탄 지구는 1850년대부터 하나둘씩 생겨난 유럽식 건축물이 번드(제방)를 따라 1.5km 정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20세기 초, 비린내 나던 작은 포구가 세계열강들에 의해 대형은행들이 모여들면서 유럽풍의 건축물들이 야외 전시장처럼 즐비하게 들어선 것이다. 


매일 밤, 수십만 명의 여행자와 중국인들이 황푸강과 푸동 지구의 마천루, 그리고 와이탄 지구의 근대식 빌딩을 감상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중국의 인구가 많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와이탄 전망대이다. 만약 와이탄 지구에서 좀 더 번화하고 깊은 속살을 엿보고 싶다면 난징둥루(南京東路)로 가면 상하이의 화려함을 더욱 맛볼 수 있다.


◇ 와이탄 전망대에서 바라본 푸동 지구의 아름다운 야경



1km 남짓 된 난징둥루는 그야말로 불야성의 거리이자 보행자의 천국이다. 페어몬트 호텔에서 시작해 난징둥루 역을 거쳐 인민광장까지 이어진 대로는 밤이면 자동차를 통제할 만큼 수많은 사람이 거리를 가득 메운다. 거리를 따라 호텔, 레스토랑, 백화점 등 백여 년의 전통을 가진 상가와 건축물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어, 쇼핑도 즐기고 와이탄의 아름다운 밤을 즐기기에 이보다 더 좋을 곳은 없을 것이다.



물론 밤만 즐길 거리로 가득한 것은 아니다. 낮에는 난징둥루 역에서 10여 분만 걸으면 현대식 빌딩이 아닌 우리의 한옥처럼 명·청 시대의 전통건축물이 여행자의 눈과 마음을 유혹한다. 그중에서도 16세기 중엽, 명나라의 고위 관료이자 당대 최고 부자였던 반윤단이 부모를 위해 조성한 예원은 상하이를 대표하는 또 다른 랜드마크이다. 예원을 중심으로 1760년에 창건된 삼수당이 있고, 아홉 번 직각으로 꺾이게 만든 구곡교, 예원을 둘러싸고 있는 예원 산성 등 중국의 전통건축물로 이뤄진 상하이 옛 거리는 또 다른 풍경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 상하이 시민들의 자긍심이자 삶의 휴식처인 예원



짧은 일정으로 구석구석 다 볼 수는 없지만, 상하이에 왔다면 한국인으로서 꼭 가봐야 할 곳이 있다. 그곳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살아 숨 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이다. 와이탄의 중심인 예원 역에서 지하철로 두 정거장 떨어진 신천지 주변에 있는 임시정부청사는 과거 프랑스 조계지였다. 1919년 3월 1일 만세운동 이후 독립운동가들은 국내에서 더는 항일운동이 어려워지자 상하이로 대거 이동하였다.


마침내 1919년 4월 11일, 민족 지도자 대표 29명이 상하이에 모여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정해졌고, 민주 공화제를 표방하는 임시헌장도 공포됐다. 이어 4월 13일, 조국의 광복을 염원하며 상하이 임시정부가 출범했다. 그러나 프랑스 조계지에서도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임시정부는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1926년 지금의 건물로 이사를 왔고, 1932년 매헌 윤봉길 의사의 의거 이후 일본의 감시와 탄압이 계속되자 독립투사들은 항저우, 전장, 창사, 광저우, 치장, 충칭 등 중국의 여러 지역으로 청사를 이전해야 했다. 


그 후 이 건물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고, 1989년에는 도시개발계획으로 임시정부청사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었다. 다행히 국민의 요청과 중국 정부의 도움으로 1993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돼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는 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백범 김구 선생의 흉상이 여행자를 환하게 맞이해 주고, 세월의 먼지를 뒤집어쓴 나무 계단과 삐걱거리는 마루 위를 조심스럽게 걷다 보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여기가 바로 대한민국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라 생각하면 누구나 다 경건해지고 애국심이 저절로 나온다. 건물 안에는 백범 김구 선생의 집무실을 비롯해 임시정부와 관련된 서적, 사진 등의 전시물이 한글로 자세히 기록돼 있다. 작고 보잘것없는 건물이지만 이곳에서 이봉창의 일왕 암살미수 사건과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홍커우 공원 폭탄 투척 사건 등이 기획되었다. 

◇ 상하이 임시정부청사 내부 전경 (국가보훈처 제공)



일반 주택을 개조한 임시정부청사는 작고 초라하지만, 이곳에 모인 독립투자들의 마음은 파란 하늘보다 넓고 컸다. 건물을 빠져나올 때, 스물네 살 젊은 나이에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매헌 윤봉길 의사의 흉상을 보는 순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한국인이면 누구나 눈시울이 붉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