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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자존심 에펠탑

제주한라병원 2018. 11. 28. 14:22

프랑스의 자존심 에펠탑…몽환적인 세게의 이정표

 전세계인이 한번쯤 가보고 싶어하는 파리 

 

 


흔들리는 차창 밖으로 앙상한 가지들과 빛바랜 건물들이 스치듯 지나가고 그 뒤로 에펠 탑이 잔잔한 샹송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흑백의 세계를 북돋듯 하늘은 회색빛으로 갈아입고 몇 개의 빗방울이 창문 위로 떨어질 때마다 에펠 탑은 몽환적인 세계의 이정표가 되어 준다. 이런 이미지는 프랑스 출신의 영화 천재,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이 1959년 어린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자전적 흑백 영화 〈4백 번의 구타〉의 도입 부분에서 볼 수 있다.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이 작품의 시작은 파리를 상징하는 에펠 탑을 오랫동안 되새김질하면서 파리 시민들의 자존심을 하얀 스크린 위에 아름답게 그려 낸다.

50년 전 트뤼포 감독이 흑백 필름으로 담아낸 에펠 탑은 백 살의 나이를 훌쩍 뛰어넘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자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에펠 탑은 언제부터인가 여기를 다녀간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누구나 파리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프랑스의 상징물이 되었다. 아마 파리를 여행한 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300m에 이르는 에펠 탑 앞에서 멋진 자세로 추억을 하나쯤은 찍어 냈을 것이다.

2002년 에펠 탑은 2억 명의 방문자를 기록할 만큼, 파리 시내를 가득 메우고 있는 여러 개의 훌륭한 건축물들을 제치고 큰 키만큼이나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다. 에펠 탑은 프랑스 혁명 백 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889년 구스타브 에펠이라는 유명한 건축가가 세운 철탑으로 그의 이름을 따서 부르게 되었다.



에펠 탑은 파리를 여행하는 동안 새롭고 신기한 경험을 제공한다.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파리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꼭대기에 올라서면 발아래로 장난감 모형처럼 자동차·집·빌딩·센 강 등이 펼쳐지는데 마치 걸리버가 되어 소인국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파리 시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에펠 탑을 배경으로 과연 어디서 기념촬영을 하면 좋을까 하고 여행자들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예술가들의 쉼터인 몽마르트르 언덕, 파리지앵이 넘쳐 나는 샹젤리제 거리, 오벨리스크가 솟아 있는 콩코르드 광장 등 달팽이처럼 생긴 파리 시내에서 에펠 탑을 배경으로 즐거운 표정들을 작은 카메라 안에 담느라 사람들은 정신이 없다.

"등잔 밑이 더 어둡다."라는 옛 속담처럼 탑 밑은 탑의 전체적인 모습을 감상하기에는 역부족이지만 에펠이 만들어 낸 철 구조물의 교향곡을 감상하기엔 이곳만큼 좋은 곳은 없을 것이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왜곡된 이미지와 네 개의 다리를 쫙 벌리고 요염한 자태로 서 있는 에펠 탑은 카멜레온을 연상시키듯 빛의 방향과 색깔에 따라 아주 이색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에펠 탑을 멀리서 보면 튼튼한 네 다리에 중심을 두고 곧게 솟아오른 모습이 잘생긴 패션모델처럼 느껴지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아줌마 몸매처럼 펑퍼짐하고 넉넉한 웃음을 안겨 준다. 에펠 탑은 하루에도 수천 명의 여행자가 다녀갈 정도여서 파리 최고의 명승지로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에펠 탑이 처음 세워졌을 때는 예술품이냐 건축물이냐 시시비비를 가리는 통에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당시 파리의 지식인들로부터 "최악의 고철 덩어리이다.", "가볍고 천박한 이미지를 가진 마녀이다.", "산업기술이 예술의 도시 파리를 파괴하고 있다." 등 혹평과 비난이 구스타브 에펠에게 쏟아졌다고 한다. 특히 소설가 모파상은 "에펠탑이 완공되면 파리를 떠나겠다"는 글을 남겼고, 완공 후에는 흉측스러운 에펠탑을 보지 않기 위해 늘 에펠탑 2층의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고 한다. 반대로 미국의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은 파리를 방문했을 때 에펠을 직접 찾아가 경의를 표했다는 일화도 있다. 무려 1만8000여 개의 금속 부품으로 이뤄진 1만여t의 이 거대한 철탑이 지상에 가하는 압력은 불과 4㎏ 정도라 하니 에펠은 과연 철의 마법사라 불릴 만하다.

파리는 건물을 지을 때 옆에 있는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건축 허가를 내주지 않을 정도로 국가 차원에서 도시 전체의 이미지와 균형미를 조절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300m가 넘는 에펠 탑을 보는 순간 사람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을 것이다. 수백 년 동안 내려온 중세의 건축 양식과 전혀 어울리지 않고 거기다가 고풍스러운 주위 환경과 30m 높이도 채 안 되는 건물들을 헤치고 혼자 기린의 목처럼 솟아오른 것이 영 입맛에 맞지 않았다. 이단아 같은 에펠 탑은 당연히 핍박과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 각국에서 이 탑을 구경하기 위해 한 해 동안 수천만 명이 방문할 정도로 명실공히 프랑스를 대표하는 상징물이 되었다. 탑이 세워진 후 1억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데는 90년 가까이 걸렸지만 2억 명을 돌파하는 데는 불과 2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에펠 탑은 지난 1998년 프랑스월드컵 홍보물에 의인화되어 축구선수로서 기량도 한껏 뽐내었다. 날아오는 축구공을 머리로 헤딩하는 에펠 탑의 모습은 유쾌하고 친근하게 세계 사람들에게 깊이 각인되었다. 특히 1999년 12월 31일,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날 에펠 탑 뒤로 아름답게 수놓은 불꽃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까만 밤하늘에 형형색색 다양한 불꽃들이 화려하게 피어나고, 엷은 네온사인에 가냘픈 몸매를 드러낸 에펠 탑의 모습은 파리 야경과 함께 어둠의 미학을 보여 주는 듯하였다. 밤이 되면 더욱 멋진 모습으로 옷을 갈아입는 도시의 야경은 그야말로 인간이 만들어 낸 빛의 예술이다. 은은하고 잔잔하게 퍼지는 가로등 불빛과 소리 없이 센 강을 달리는 유람선 조명등 불빛이 파리를 점점 몽환적인 세계로 이끌고 간다. 물론 밤의 세계 중심에는 에펠 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