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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의 거장 르네 마그리트를 만나다.

제주한라병원 2018. 10. 29. 09:48

초현실주의의 거장 르네 마그리트를 만나다.




 

벨기에 브뤼셀

 

<신뢰 Good faith>와 <회귀 The Return>라는 작품으로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르네 마그리트는 벨기에가 낳은 최고의 초현실주의 작가다. 마그리트의 그림은 미술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팬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 그의 작품은 마네와 반 고흐의 그림처럼 인상주의적인 요소가 없는 대신 피카소의 큐비즘 Cubism 같은 인간의 상상 세계를 느끼게 하는 그만의 강한 호소력이 있다.

푸른색과 분홍색을 좋아했던 마그리트의 흔적은 벨기에의 수도인 브뤼셀에 많이 남아 있다. 이 도시에는 그의 예술과 우정 그리고 사랑이 도시 곳곳에 배어 있어서 그를 좋아하는 팬들에게 브뤼셀은 또 다른 이미지로 다가온다. 사실 브뤼셀은 유럽에서 그리 크지 않은 도시지만,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본부가 있을 만큼 유럽의 심장부이자 교통의 요충지다.

남에서 북으로 강이 흐르고, 중세시대의 고풍스러운 건물과 현대적 마천루가 함께 어우러진 브뤼셀. 프랑스 출신의 빅토르 위고는 브뤼셀을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표현했다. 특히 17세기 중세풍의 이미지를 간직한 구시가지 광장인 그랑플라스에 들어서면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시대로 거슬러 온 느낌이 든다. 1998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그랑플라스는 브뤼셀의 중심부이며 여행의 시작과 끝인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손꼽히는 이유로 언제나 이곳은 수많은 관광객으로 넘쳐난다. 광장 중심에는 높이 96m의 시청사가 있고, 주변에는 바로크 양식의 길드 조합,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 등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어서 건축 박물관을 연상케 한다. 그래서 그랑플라스는 벨기에를 상징하는 아이콘이자 브뤼셀의 문화가 살아 움직이는 예술의 광장이다. 수많은 관광객과 현지 사람들의 모습이 쉴 새 없이 오가는 이 광장에서 마그리트는 맥주를 마시며 예술적 영혼의 목마름을 달래기도 했다. 그는 카페 한 귀퉁이에 앉아 동료들과 열정적인 토론을 펼치기도 하고, 광장에 앉아 캔버스에 아름다운 구시가지의 모습을 담기도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홍합 요리와 함께 프랑스 보드로산 와인을 마시며 환하게 웃는 그의 모습이 환영처럼 보인다. 시가 연기 속에서 사랑하는 여인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그려지고, 밤새 그림을 그리다 지쳐 아틀리에 한구석에서 잠을 청하는 그의 모습도 떠오른다. 마치 그가 살았던 그 시대에 들어와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상상은 끝도 없이 펼쳐진다.

그의 작품 세계와 예술적 영혼을 좀 더 가까이 만나기 위해서는 젊은 시절의 예술적 방황과 고뇌가 스민 아틀리에를 가야 한다.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아틀리에는 마그리트가 프랑스에서 돌아와 생을 다할 때까지 살았던 곳으로, 현재는 마그리트 미술관으로 개조해놓은 곳이다. 3층짜리 작은 건물 안은 그의 열정과 예술에 대한 집착 그리고 삶의 애환으로 넘쳐난다. 그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브뤼셀에서의 여행은 이곳에서부터 시작하게 될 것이다.

세월의 무게감을 느낄 수 있는 대문을 지나면 좁고 가파른 복도와 계단이 나오고, 깔끔하게 단장된 침실로 향하면 우리에게 익숙한 푸른 벽지와 하얀 창틀 그리고 그가 사용하던 카펫 등이 눈에 들어온다. 그의 작품 <회귀 The Return>, <기억 Memory>, <심금 The Heartstrings> 등에서 파란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의 색감은 바로 이 침실에서 나온 것이다. 벽지를 눈이 부시게 푸른색으로 칠한 그의 생각은 다소 엉뚱한 측면이 있지만, 이것이 그가 주로 작품을 디자인하고 그림을 그릴 때 즐겨 사용하던 색이다. 자연스러운 일상의 모습이 천재 화가를 통해 예술로 승화된 것이다. 또 집 안에는 그가 사용하던 책장, 오브제, 욕조, 책상, 가구, 사진, 그림 몇 점 등도 전시되어 있다. 무엇보다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오브제들을 일상생활에서 찾아볼 수 있어서 더욱 흥미롭다. 중절모, 영국산 장미 파이프, 돌, 사과, 벨, 분홍과 푸른빛의 색채 등의 오브제를 그의 집안 내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뜰에 나가면 아담한 새장이 있고, 각각의 문마다 독특한 문고리가 있는데 이런 것들과 마주하는 순간 마치 그의 그림 속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만큼 그의 그림 세계는 현실과 매우 닮았다. 화보로만 작품을 보다가 그의 집에서 직접 푸른색과 오브제 등을 대하자 마그리트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직접 디자인한 책장과 책상, 그의 작업실 등 작은 집안에는 볼거리들로 온통 넘쳐난다. 위대한 예술가와의 만남이 이 작은 공간에서 이렇게 이뤄져 있다.

무엇보다 방안에 걸린 각종 포스터는 마그리트가 가난했던 신혼 생활 때 아내 조르제트 베르제를 먹여 살리기 위해 제작한 것들이다. 마그리트는 열네 살에 처음 만난 조르제트 베르제와 긴 연애 끝에 결혼에 이른다. 하지만 그의 결혼생활은 처음부터 원만하지 않았다. 그의 집에 걸린 벨기에 정부에서 발행한 각종 포스터는 신혼 때의 그의 어려운 생활을 간접적으로 말해준다. 화가가 자신의 그림을 그리지 않고 생계를 위해 엉뚱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참 가슴 아픈 이야기다. 스물네 살의 나이에 결혼한 마그리트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해야 했다. 그래서 그는 생활인과 예술인으로서의 두 개의 운명적인 삶을 살아야만 했다. 예술과 일반 생활에서 오는 괴리감은 언제나 그를 괴롭게 하는 화두였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잘 이끌어갔다. 또한, 이 시기에 그는 루벤스의 고향인 안트베르펜에서 병역의 의무를 다했으며, 군 복무를 마친 뒤에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벽지 공장에서 붉은 장미를 그렸다.

포스터 이외에 그의 방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검은색의 중절모다. 그의 작품 <신뢰>를 비롯해 다양한 그림에서 그가 즐겨 사용했던 중절모다. 마그리트는 젊었을 때는 잘생긴 용모 때문에 모자를 쓰지 않았지만, 중년을 넘어서면서 그의 손에는 영국산 장미 뿌리로 만든 담배 파이프와 중절모가 항상 들려 있었다. 이것이 자연스럽게 그의 작품으로 들어가 멋진 작품으로 승화한 것이다. 아마 그의 작은 집을 한 바퀴 돌고 나면 마그리트의 말처럼 “눈에 보이는 것만 그린다”라는 말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현실이 곧 예술이 되는 그의 생활은 한 마디로 자연스러움 그 자체다. 관찰력과 화가로서의 뛰어난 상상력이 우리 같은 일반 사람들과 다를 뿐, 모든 일상이 그의 예술 세계를 열어주는 원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