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10월
그럼 이번에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바로 내가 좋아하는 어떤 가수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내가 처음으로 <콘서트>에 가본 것은 1998년 겨울이다. 고3 수학능력시험이 끝난 뒤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람회 크리스마스 콘서트>. 당시 유니텔 전람회 팬클럽 사람들과 미리 단체로 표를 구입하고, 공연 당일 양재동 교육문화회관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공연 당일, 수많은 인파 속에서 일행을 찾기 위해 공중전화를 붙들고 ‘삐삐’를 쳤던 기억이 여태 남아 있다. 유니텔에 삐삐라니. 그렇다. 벌써 10년 전의 이야기인 것이다.
내가 전람회, 특히 김동률을 좋아한다는 것은 나와 친한 사람들은 공공연하게 아는 사실일 거다. 노래방에 가도 김동률, 술집에서 노래를 신청할 때에도 김동률, 길을 걷는 동안 귀에 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김동률, 잘 때 음악을 틀어놓을 때도 김동률. 자취시절 휴가를 나온 동안 내 방에서 지냈던 어떤 선배는 그때 내 방에서 김동률의 <벽>을 처음 들었는데, 2박 3일 동안 그 노래만 들은 덕(?)에 김동률이 싫어졌다고…… (더 싫었던 것은 내가 양파부분을 따라 부를 때였다고.)
내가 김동률을 아니 정확히 전람회를 좋아하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이다. 내가 남몰래 마음에 두고 있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의 호출기로 전화를 걸면 노래가 흘러나오곤 했다. 아마 내가 그 여학생에게 품고 있던 마음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그 친구의 호출기에 연결될 때마다 흘러나오던 그 노래는 내 감성을 자극했다. 나는 그 노래가 어떤 노래인지 궁금해 음악을 좋아하던 친구에게 들려주며 물었고, 그 친구가 친절하게 그 노래뿐만 아니라 노래를 부른 가수에 대한 평까지 내게 줄줄 들려주었다. 그 노래는 전람회 2집에 수록된 <이방인>이었다. 전람회에 대한, 그리고 뮤지션 김동률에 대한 사랑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김동률의 음악이 사람을 활기차게 만들거나 신나게 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좀 쳐지며 혼자 사색하게 하는 분위기를 띤다는 것은 들어본 사람이라면 다들 수긍하리라 믿는다. 전람회의 노래들을 무한 반복해 들으면서, 어쩌면, 나는 무리를 지어 활발하게 돌아다니기보다는 홀로 생각에 잠겨 있는 데에 길들여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나는 전람회의 음악 외에도 영화에 중독되어 있었는데, 키네마 극장(지금은 없어진)이나 씨네하우스, 뤼미에르 극장 등을 돌아다니며 주로 혼자 영화를 보았다. 어떤 일을 혼자 할 수 있게 길들여진 것이 바로 그 시기였다. 늘 귀에 이어폰을 끼고 있었고, 음악은 어김없이 전람회였다. 그때 본 영화 중 하나가 바로 <접속>. 영화 속 한석규와 전도연이 채팅을 할 때 사용한 수단이 바로 유니텔이었고, 나는 다음날 바로 유니텔에 가입했다. 그리고 전람회 팬클럽에도 가입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처럼,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세상 모든 일이 단 하나의 원인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하게 된다. 무수히 많은 일과 요소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고 세상의 무수히 많은 공간과 시간을 마주할 때마다 톱니바퀴들은 점점 더 많아지고 더 견고해져 지금의 우리가 있게 하는 거다.
처음 들은 친구의 호출기 안내 멘트가 전람회의 <이방인>이었던 것, 친구에게 처음 선물 받은 책이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이고 그 뒤로 내가 카뮈를 좋아하게 된 것, 우연히 알게 된 어떤 친구가 내 호출기에 음성메시지를 저장하며 남기던 번호가 010이었던 것, 지금 내 이 메일 아이디에 대부분 <stranger>나 <010>이 들어간다는 것.
모든 일들은 단 하나의 이유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생각도 하지 못하는 여러 요소들이 맞물려 일어나는 것이다. 다만, 그 시기에는 알아채지 못하고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알아볼 수 있을 뿐이다. 늘 시간은 우리에게 또다른 렌즈를 제공하는 법이니까.
그 뒤로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일들이 있었고, 김동률의 여러 앨범들과 수록된 노래들은 때론 1년에 한번, 혹은 2-3년에 한번 꼴로 내 인생의 톱니바퀴에 윤활유 역할을 했다. 대학교 입학, 자취생활, 대학교 졸업, 대학원 입학과 졸업, 그리고 그 동안 만나고 또 스쳐 지나간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시간과 장소들.
그리고 내 인생의 어느 한 부분인 2009년 어느 날에 또한번 김동률의 콘서트를 찾아갔다.
10분 만에 매진이라는 아이돌 못지않은 입장권 판매기록을 실감할 정도로 공연장에는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무대 장막이 들썩일 때마다 사람들은 소리를 질렀고., 어서 공연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기를 여러 차례. 안내멘트와 함께 공연이 시작되었고, 관객들은 숨을 죽인 채 자신들이 기다려온 공연이 시작되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 이후의 감동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김동률이 노래들을 부르는 동안, 함께 웃고, 열광하고, 푹 빠져 있으면서, 노래 하나하나에 담긴 기억들을 마주했던 거겠지. 공연이 진행되는 내내 처음에는 김동률에 열광하고, 그 다음에는 나 자신과 지금 저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사람과의 인연들을 떠올려보고, 그 인연의 앞뒤에 깔려 있는 또다른 톱니바퀴들을 생각해보다, 지금 공연을 보고 있는 시간 역시 무수히 많은 톱니바퀴들 사이에 있으며, 앞으로 다가올 내 인생의 어떤 순간들의 이유가 되리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의 공연장, 객석을 꽉 채운 사람들, 그 사이의 나 그리고 너.
우리가 가진 각각의 톱니바퀴는 이렇게 돌고 돌다가 기적처럼 맞물리기도 하고 다시 떨어지기도 하는 거다. 인생의 톱니바퀴들이 붙었다 떨어진다 해도 그게 끝이 되는 게 아니라 다른 무수히 많은 톱니바퀴들이 돌아가는 이유가 된다. 그렇게 우리들의 시간이 영원으로 남는다.
마지막 노래가 흘러나오고, 노래가 끝나고도 약 20여 분간 다른 관객들과 함께 김동률을 외치던 순간의 즐거움, 그리고 사람들의 환호에 김동률이 등장해 눈물 흘리던 모습, 그 모든 게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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