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7월
몇 개월 전부터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이후로 내 고등학교 시절을 자주 떠올리곤 한다. 지금 고등학교의 풍경과 내가 딱 그만했을 때의 모습을 비교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마다, 연령대에 따라 서로 다른 형태의 추억을 갖고 있고, 그 추억마다 서로 다른 향기가 묻어난다. 어쩌면 몹시도 개인적인 이 추억이라는 게 중요한 것은 그게 어떤 형태이고 또 어떤 향기를 내뿜든 간에, 이때의 시간들을 밟고 걸어온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요즘 고등학생들은 대부분 휴대폰을 갖고 있는 듯하다. 비단 고등학생뿐만 아니라 지금을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듯 이 휴대폰이라는 물건은 굉장히 많은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또 많은 것을 불필요하게 만들었다. 지금 학생들은 이 휴대폰을 통해 전화나 문자를 주고받기도 하고, 위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손쉽게 가족이나 지인에게 연락을 취한다. 내가 놀란 것 중 하나는 담임선생님이나 그 외 선생님들과 직접 연락을 취하기도 한다는 사실이었다. 내 고등학교 시절을 돌아보면 급한 일이 생겼을 때는 전화를 걸기 위해 짧은 쉬는 시간을 이용해 학교에 몇 없는 공중전화 앞에 오래도록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또, 선생님께 용무가 있을 때나 그 반대의 경우일 때에도 항상 무겁고 조심스럽게만 느껴지던 교무실이라는 현실적 공간을 거쳐야만 했다. 이는 결국 고등학교 시절의 나와 현재 고등학생인 이들의 시간과 공간의 의미가 많이 달라졌다는 이야기일 것이고, 결국 다른 조금씩은 다른 기억을 쌓아가게 될 거란 이야기일 것이다.
물론 우리 세대도 윗세대와 분명히 달랐다. 지금 아이들이 당연하게 휴대폰을 들고 다니는 것처럼, 내 또래의 학생들은 대부분 호출기를 가지고 다녔으니까.
지금도 가끔 또래 사람들끼리 말하곤 하지만, 그 호출기라는 것은 참으로 매력적인 물건이었다. 게다가 공중전화의 매력 또한 알게 해준 물건이랄까. 휴대폰 벨소리나 컬러링을 설정하는 것처럼 호출기 사서함으로 연결되었을 때 들리는 안내멘트를 꾸미는 일이며 연락받을 전화번호를 찍을 때 자기만의 고유한 번호를 남기는 그런 경험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호출기가 진동하고, 전화통화가 가능한 곳으로 이동해 상대를 확인하는 그 짧은 시간의 떨림과 기대와 흥분을 나는 아직 잊지 못한다. 아는 번호는 아는 번호대로, 모르는 번호는 모르는 번호대로 우리를 설레게 만들곤 했다.
그 시기에 알게 된 친구 하나가 있다. 사실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고 게다가 얼굴은 전혀 모르는 친구다. 이때에는 통신이나 호출기 등을 이용해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어떤 유행처럼 번져있었다. 그렇게 알게 된 친구 중의 하나였다.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었다. 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다들 조금은 날카로운 상태였고, 다만 서로에게 힘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해주거나 또한 힘든 일이 있을 때 그 이야기를 들어주며 서로 나누는 것으로 만족했던 시기였다. 그 친구와 전화 통화를 그리 자주 한 것도 아니다. 학교 쉬는 시간이나 새벽에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로등 아래의 공중전화를 붙들고 안부를 묻거나 개인적인 감상 등을 음성사서함에 남기는 것이 전부였을 뿐이다.
이 친구는 처음에는 내 호출기에 자신의 전화번호를 남기더니 어느 때부턴가 특정 숫자를 남기기 시작했다. 이 친구가 호출을 하거나 메시지를 남기면 내 호출기의 액정에는 ‘010’이라는 번호가 떠올랐다. 숫자의 힘이란 신기한 것이었다. 그때부터 '010'이라는 숫자를 보기만 하면 모든 것을 그 친구와 연관지어 생각하게 되었으니까. 내가 그 친구에게 '010'의 의미를 물었더니, 그 친구는 처음에는 대답하려하지 않았다. 그래도 끈질기게 묻자 특유의 침착한 말투로 말했다.
“음, 그러니까, 별 뜻이 있는 것은 아니고. 처음 0은 과거, 중간 1은 현재, 마지막 0은 미래야. 뭐 과거나 미래에 연연하지 않고 현재에만 충실하고, 현재를 중요하게 보고 싶다는 말이지.”
“그거 멋진데? 나도 써도 돼?”
“응, 뭐 어때. 특허 낸 것도 아닌데.”
호출기에 찍을 번호 하나도 신중하게 생각하고 고민하던 그런 때도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자기표현의 한 방법이라는 듯 말이다. 사실 나는 그 숫자의 의미를 친구의 말 안에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게 잘못된 방법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표면적인 말의 의미만 생각했을 뿐, 그 안에 어떤 것이 담겨있는지 더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존재의 표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벅찬 인간이라는 동물에게는 말이다.
수학능력시험 결과가 발표되고 또 대학 진학이 결정되던 때였던 것 같다. 나는 대학진학이 결정되었고, 그리하여 한번쯤 그 친구를 만나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연락을 시도했다. 친구의 음성사서함에 그런 내 생각을 남기고 연락을 기다렸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연락이 오질 않는 것이었다. 아마 서로 만나자는 말을 하지 않기로 한 암묵적 약속을 깬 것 때문인 것 같았다. 연락이 되지 않는 것을 답답해하는데, 우연히 그 친구가 다닌다던 학교의 학생 하나를 알게 되었다. 그 학생을 통해 친구를 수소문했고,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런 노력 끝에 알게 된 사실은, 분명히 그 친구가 다닌다고 말했던 그 학교, 그 학급에,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때의 기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시계바늘이 회전하는 동안 시간을 함께 하고 의지하고 서로 감정을 나눈 친구가 실체는 확인할 수도 없는 목소리와 '010'이라는 번호 하나로 남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기분. 그러나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게 다인 것이다. 그 친구가 내게 남긴 것이 있다면 그것은 기억 하나와 '010'이라는 번호가 전부였다.
처음 0은 과거, 중간 1은 현재, 마지막 0은 미래. 과거나 미래에 연연하지 않고 현재에만 충실하고, 또 현재를 중요하게 보고 싶다는 것……
그 뒤로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친구 녀석이 자주 사용했던 그 숫자의 힘은 여전히 내게 ‘작용’하고 있다. 내 인터넷 아이디에는 꼭 ‘010’이라는 숫자가 들어간다. 처음 아이디를 만들 때에는 별별 생각들을 하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여 만들었겠지만, 지금 그 의미들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이디 뒤에 꼭 '010'을 붙이는 것도 그랬다. 처음에는 분명한 의미가 있었겠지만, 그 이후로는 습관적으로 그랬던 게 사실이다. 가끔 사람들이 내 아이디를 보고 묻곤 한다. '010'의 뜻이 뭐냐고. 그러면 나는 오래전 그 친구가 했던 말을 되뇌고, 그 이야기를 해준다. 그러나 입으로만 말했을 뿐, 시간이 많이 흐르는 동안에도 나는 그 숫자의 의미에 대해 진심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리고 지금,
그 의미를 완전히 아는 것은 아니지만, 숫자 ‘1’의 무게를 실감하고 있다.
요즈음 들어 부쩍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되도록 현재만을 보고 파악하려하며, 과거란 현재나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분명한 경험이긴 하지만, 그것만을 갖고 확실한 근거인 마냥 현재나 미래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배우는 것이다. 우리 각자의 시간이 서로 다른 빛을 띠는 것처럼, 세상 사람들의 사적인 시간과 인식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고 내 관점만으로 이를 판단하지 않는 것. 그런 관계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지금, ‘1’이라는 현재가 얼마나 무거운지, 그것만을 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두 어깨, 그리고 가슴으로 느낀다.
그러면서 가끔 생각한다. 한 시기를 공유하고 각자의 시간 한 귀퉁이를 관통했던 그 친구의 시간은 지금 어디쯤 왔을 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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