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한라병원

이명아명,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자신의 몸처럼 돌본다

연재종료코너/이준희사람세상

Not Going Anywhere (1)

제주한라병원 2011. 6. 2. 09:02

2009년/5월

내가 아는 선술집이 하나 있다. 여러 종류의 어묵과 정종을 파는 가게다. 밖에서 볼 때에는 여느 술집과 별반 다를 게 없지만, 한번이라도 가게에 가본 사람이라면 그 유별난 분위기를 잊지 못해 다시 찾게 된다. 그것은 주인의 유별난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 주인은 열고 싶을 때 가게를 열고, 또 그런 때에도 안주를 준비해 놓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손님들이 안주를 좀 만들어달라고 통사정을 해도 귀찮다며 국물만 조금 끓여서 내줄 뿐이다. 상호가 엄연히 ‘오뎅가게’인데도, 오뎅을 먹을 수 있는 날은 별로 없는 것이다. 그러다 아주 가끔 부글부글 끓는 국물 속에 어묵 꼬치들이 가득 차 있는 때가 있다. 사람들은 놀라면서 웬일로 제대로 장사를 하냐고 물어본다. 그럼 주인 말이 더 가관이다.
“오뎅가게에서 오뎅을 파는데 그게 이상하냐?”

가게를 찾은 손님들은 서로 쉽게 친해졌다. 가게가 비좁은 탓에 다닥다닥 붙어 앉는 영향도 있겠지만, 손님들을 보면 말을 걸며 친해지고 싶어하는 주인의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 새벽 즈음에는 가게에서 노래판이 벌어지기 일쑤였다. 요즘의 호프집과는 다른 분위기인 것이다. 그런 분위기와 편안함 때문인지 그곳에 들를 때면 무거웠던 마음이 괜히 가벼워지는 듯 여겨지기도 한다.

 

그 술집 이야기를 길게 하는 이유는 지난 해 가을 즈음에 그곳에서 겪은 어떤 일 때문이다. 모든 일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다시 말해, 아무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날 내가 가게를 찾은 것도, 그리고 가게에서 어떤 것을 목격한 것도 그 말과 무관하지 않은 것같다.

그날 오후, 나는 강남역 중앙차로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날 밤샘작업을 한 터라 제정신이 아니었다. 비몽사몽인 상태로 서 있는데, 내 앞쪽에 서서 버스를 기다리던 한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는 한참 그 여자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순간이지만 여자가 잠시 몸을 비튼 사이 나는 그녀와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그녀의 얼굴을 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언뜻 스쳐 지나며 봤을 뿐인데, 내가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정신이 든 게 아니라 밀려들던 잠보다 훨씬 달콤하고 치명적인 기운에 일순간 취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는 버스 위에, 그녀를 따라, 재빨리 올라탔으니까. 
 

여지는 나를 보지 못한 듯했다. 동행자가 한 명 있었는데, 대화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여자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힐끗 곁눈질만 했을 뿐이다. 사실 그 순간까지도 나는 내가 쫓고 있는 사람이 내가 아는 사람이 맞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게 벌써 몇 해 전이었다. 만약 대상이 다른 사람이었다면, ‘누구 아닙니까?’라고 물어봤겠지만, 그녀에게만은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예전에 그녀와 나는 자주 만나 함께 식사를 하고 영화를 보거나, 아니면 찻집에 앉아 느긋하게 책이나 내가 쓴 소설들을 읽은 후 토론하곤 했다. 음악을 함께 듣기도 했는데, 그녀가 유독 좋아했던 Keren Ann의 <Not Going Anywhere>를 즐겨들었다. 연인사이였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런 식으로 나름의 우정을 쌓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남몰래 연애하는 거라 했고,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애써 부정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 고백컨대 내 심정이 과연 말과 같았을까. 스스로 인정하고 또 상대에게 확인한 사실만 없을 뿐이지, 내 마음도 주변 사람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으리라. 
 

“파란 피를 갖고 싶어.”
그녀는 종종 입버릇처럼 중얼거리곤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손목을 만지작거렸다. 그 길고 하얀 손목에는 선홍색 상처자국이 옅게 남아 있었다. 내가 모르는 그녀의 시간에 남은 상처였다. 그녀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가까스로 화제를 돌리는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바람이 많이 불던 어떤 날엔 유난히 말돌릴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무심코 묻고 말았다. 대체 그 파랗다는 게 어떤 거야? 라고.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게 있어. 어스름히 어둠이 찾아올 무렵을 말하는 거래. 왜 그런 때 있잖아. 낮이었는데 갑자기 어두워지는 그 사이의 순간. 그 시간에 옆 마을로 놀러갔던 개들이 돌아오는데, 그 개들 사이에 늑대가 숨어들어온다는 거야. 그래서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부른대. 그때의 하늘은 어둡고, 세상은 아주 짙은 푸른빛 기운이 감돌지. 사물의 경계가 흐릿해져 개인지 늑대인지 구분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때 직감했어야 했다. 그녀가 어느 저녁에 푸른빛을 따라 사라질 거라는 사실을. 만약 그랬다면 혼자 남겨진 자리에서 좀 더 다부지게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친구들은 나를 위로한답시고 전화를 해서 어떻게 우리에게 이럴 수 있냐는 말만 되풀이했고, 나는 나대로 한 달 가까운 시간을 폭음으로 보냈다. 그렇게 해야만 그녀가 갑자기 사라진 이유를 알 수 있을 것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 어디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았고,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