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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시대부터 온천지로 유명 … 헤세의 흔적도

제주한라병원 2018. 1. 29. 15:24

로마시대부터 온천지로 유명 헤세의 흔적도

 

스위스 바덴

    


인구 2만 명이 살아가는 아담한 온천도시, 바덴

 


로마시대부터 온천지로 유명한 스위스 바덴은 취리히에서 기차로 20분이면 갈 수 있는 인구 1만 8천명의 도시이다. 로마시대 때 ‘아쿠에 헬베티에’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던 바덴은, 중세에 이르러 스위스 최고의 온천휴양도시로 자리매김 했으며, 현재에도 섭씨 47도의 유황천이 나온다. 특히 이곳의 온천물은 식용요법과 입욕요법이 모두 이용되고 있어 스위스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독일 등 여러 나라에서 1~2시간의 휴식이나 에스테(미용)를 위해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스위스 알프스 산자락에 자리한 바덴에는 온천을 비롯해 현대적인 컨벤션센터, 카지노, 고급 레스토랑, 합스부르크 왕가가 사용한 스타인 성 등이 들어서 있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구시가지는 다른 도시에 비해 아주 작은 편이지만 평화롭고 조용한 분위기가 일 년 내내 도시를 감싼다. 마을 안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면 리마트 강이 흐르고 그 위로 13세기에 지어진 목조다리 훌즈브뤼케가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를 연결한다. 그리고 이 도시에서 가장 높은 스타인 성에 올라서면 작은 구시가지와 바덴의 신시가지를 한눈에 감상할 수도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중세도시 바덴은 온천욕 이외에는 볼거리도 즐길 거리도 많지 않지만, 19세기 이후 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을 찾아 통풍과 류머티즘을 치료했던 휴양의 도시였다. 과거 오스트리아 빈에서 활동했던 모차르트도 그의 부인 콘스탄체와 자주 방문했던 곳이고, 독일의 대문호 괴테와 철학자 니체 그리고 헤르만 헤세도 이곳에 찾아와 신경통을 치료했다. 특히 헤세는 바덴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1923년~1952년까지 해마다 늦가을이면 수 주일씩 이곳에 머물며 건강 회복과 작업에 몰두하였다.


헤세는 독일 칼프에서 태어나 스위스 바젤에서 청년 시절을 보냈으며, 아홉 살 연상의 피아니스트 마리아 베르누이와 결혼했다. 이때부터 헤세는 스위스를 너무도 사랑해 루가노를 비롯해 <유리알 유희>, <싯다르타> 등의 명작을 쏟아낸 몬타뇰라까지 이곳저곳으로 이사를 다녔다. 무엇보다 1924년 스위스 여류작가, 리자 뱅거의 딸인 루트 뱅거와 결혼하면서 스위스 국적을 재취득했는데, 이때부터 헤세는 신경통이 생겨 온천도시, 바덴을 즐겨 찾아 몸도 치료하고 작품도 여러 편 썼다. 

 

현재 바덴에는 헤세가 머물렀던 뵈레나호프 호텔이 남아 있고, 그가 사용했던 방 안에는 헤세의 문학적 향기가 고스란히 스민 책상 등이 전시돼 있다. 헤세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책상에서 <황야의 늑대>와 <나르시스와 골드문트> 그리고 많은 시들이 탄생했다.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그 당시로 날아가면 헤세와 그의 두 번째 부인인 뱅거와 유유자적하게 보내던 모습이 그려진다. 이른 아침 헤세와 뱅거는 시가지를 휘감고 돌아가는 리마트 강가에 자주 나와 산책을 즐겼으며, 강 위에 놓여 진 목조 다리를 건너 비둘기와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지나치는 마을 주민들과 인사도 하고, 조용한 카페에서 따스한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또한, 마을 전체를 보고 싶을 땐 이 도시에서 가장 높은 스타인 성으로 올라 작은 시가지를 한눈에 감상했을 것이다. 특히, 겨울이면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인 도시의 풍경은 너무나 황홀하다. 과거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가 사용했던 스타인 성은 폐허로 남았지만, 유럽을 호령하던 옛 영광은 무너진 돌마다 알알이 새겨져 있고, 헤세의 향기도 고성 어딘가에 한 줌의 바람이 돼 머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바덴이 헤세에게 좋은 추억만이 있는 곳은 아니다. 1935년 그가 좋아했던 동생, 한스가 이곳에서 자살을 한 슬픔의 현장이기도 하다. 그는 바덴에 머무르는 동안 한스가 설산에서 죽었다는 소식에 동생의 시신을 찾아 헤매던 모습을 <한스의 추억>이라는 작품을 통해 그 당시의 아픔을 잘 묘사하였다. 이처럼 바덴은 헤세의 문학적 원천이었지만 동생의 죽음이 스민 아픔의 도시이기도 하다. 헤세에게 바덴은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그런 도시였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헤세가 사랑한 바덴은 관광객들이 몰려와 번잡스럽게 노니는 그런 도시는 아니다. 뵈레나호프 호텔에서 머물며 바덴의 촉촉한 분위기와 헤세의 작품에서 만나는 예술적인 이미지를 느껴볼 수 있는 느림 미학이 숨 쉬는 곳이다.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다가 지겨우면 따뜻한 온천에 들어가 모든 시름을 털어내고 맑은 강물처럼 머릿속을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하게 비우는 것이 바로 바덴 여행의 즐거움인 것이다.



헤세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쓴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