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한라병원

이명아명,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자신의 몸처럼 돌본다

병원매거진/이태훈세계여행

동방으로 가는 관문 도시⋯‘중동의 파리’

제주한라병원 2017. 12. 28. 13:33

동방으로 가는 관문 도시⋯‘중동의 파리’

 

레바논 베이루트(Beirut)

 

 


중동의 파리ㆍ중동의 보석ㆍ중동의 화약고ㆍ중동의 종교시장 등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를 수식하는 단어는 너무나 다양하다. 그러나 비행기ㆍ배ㆍ버스 등 여러 교통수단을 이용해 혼잡한 베이루트에 가까워지면 평생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인상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도시 오른쪽으로 솟아오른 레바논 산맥은 일 년 중 300일 이상 태양빛을 흠뻑 받아 보석처럼 빛나고 겨울이면 담요처럼 포근한 눈으로 덮여 중동에서 가장 독특한 모습을 보여준다. 아시아ㆍ아프리카ㆍ유럽 등 세 개의 큰 대륙이 만나는 베이루트는 예로부터 동방으로 가는 관문의 도시로 성장했다.


베이루트의 역사는 5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BC 3000년경부터 페니키아인이 지중해안 지대를 중심으로 ‘티루스(현재 티레)’와 ‘시돈(사이다)’이라는 도시국가를 건설하면서 베이루트의 장대한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 후 무역항으로 발전한 베이루트는 천혜의 지리적 조건 때문에 바람 잘 난 없는 역사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된다. 고대시대 때는 바빌로니아ㆍ페르시아ㆍ로마ㆍ헬라ㆍ비잔틴 등에 의해 지배를 받았고, 11~12세기에는 셀주크 터키와 십자군의 전쟁의 무대가 되었다. 16세기에는 오스만 튀르크에 합병된 뒤 19세기까지 이슬람 세력이 이곳을 지배했다. 그 후 베이루트는 1943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하면서 동․서양의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서로 충돌하면서 독특한 분위기의 도시로 성장하였다. 그중에서도 여러 민족의 종교는 오늘날까지 베이루트가 발전하지 못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로마시대 때는 가톨릭이, 비잔틴시대 때는 그리스도교가, 7세기 이후 아랍인이 베이루트를 정복한 뒤에는 이슬람교가 널리 퍼졌다. 이때부터 베이루트는 고대부터 믿어오던 그리스 정교회ㆍ아르메니아 정교회ㆍ가톨릭교ㆍ개신교ㆍ이슬람교도의 수니파와 시아파 등 종교의 시장으로 변모하였다. 그 결과 지금의 레바논은 개신교와 이슬람교도 간의 17년 동안 내전을 겪은 뒤 기독교에서 대통령이 선출되고, 총리는 아랍 수니파, 국회의장은 모슬렘 시아파가 맡는 특이한 정치적 구조를 만들었다. 베이루트가 사회적․종교적․정치적으로 아주 복잡하게 얽혀 있어 부정적인 면도 있지만, 여러 나라의 식민도시로 성장하면서 문화와 역사 면에서 많은 유적지를 갖게 되었다.


기원전 14세기 이집트에서 발견된 설형문자와 성경에 ‘베니게’로 이름이 알려진 베이루트는 수천 년 동안 지중해를 장악하며 부와 명성을 누렸던 도시이다. 현재 구시가지 지하에는 오토만ㆍ맘루크왕조시대ㆍ십자군원정시대ㆍ아바시드ㆍ우마이야왕조시대뿐 아니라 비잔틴ㆍ 로마ㆍ페르시아ㆍ페니키아 그리고 가나안시대의 유적들이 묻혀있다. 이런 유서 깊은 유적지와 함께 구시가지에는 명품 숍을 비롯해 세려된 카페와 레스토랑 그리고 호텔들이 들어서 있고, 오마리 모스크ㆍ시청 건물ㆍ아사프와 아미르 문지르 모스크ㆍ회랑이 늘어선 마라드 거리ㆍ국회의사당ㆍ네즈메 광장ㆍ그리스 정교 교회ㆍ가톨릭교회ㆍ로마 목욕탕과 열주 등 다양한 볼거리들이 도시 곳곳에 산재돼 있다. ‘중동의 파리’라고 불리는 이 도시 중심부에 들어서면 낯선 몇 개의 장면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장갑차와 탱크 그리고 총을 든 군인들이 도시를 안전하게 지키고, 전혀 알아 볼 수 없는 아랍권의 글씨 대신 영어 알파벳이 거리를 장식하고, 아잔의 우렁찬 코란소리 대신 마돈나의 팝이 거리에 울려 퍼지고, 히잡이나 부르카를 쓴 이슬람의 여인대신 서구화된 짧은 옷에 선글라스를 낀 여자의 모습이 도시를 가득 메운다. 푸른 바다가 넘실대는 지중해변으로 가면 물고기를 잡고 있는 낚시꾼, 사랑을 나누고 있는 연인, 조깅을 하고 있는 시민, 비키니를 입고 수영을 즐기는 여자들까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중동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베이루트의 현재 모습이다.


베이루트를 제대로 즐기려면 걸어 다니는 것이 제일 좋다. 걷다가 지치면 베이루트에서 가장 유명한 비둘기 바위가 있는 라우쉐 지역에서 잠시 쉬어갈 수도 있고, 쇼핑센터와 로마시대의 목욕탕과 이슬람 모스크가가 모여 있는 함라 지역도 천천히 걸으면서 베이루트가 가진 아름다움에 취해 보는 것도 좋다. 특히 에메랄드빛으로 물든 지중해와 세련된 카페와 레스토랑이 들어선 라우쉐 지역은 밤이 되면 그야말로 로맨틱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곳이다. 지중해로 넘어가는 붉은 석양을 감상하면서 사랑하는 연인과 밀애를 속삭이는 라우쉐의 카페들은 언제나 젊은 연인들로 넘쳐난다. 또한 이곳에서는 레바논의 특산 요리를 비롯해 세계 각국의 음식을 맛볼 수 있어 미식가들이 즐겨 찾는 명소이기도 하다. 조금 더 특별한 것을 찾는다면 베이루트 도시 전경과 푸른 지중해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하리사’라고 불리는 산에 오르는 것도 좋다. 하리사 정상에는 언제나 푸근한 인상의 성모 마리아 상이 있고, 그 주변에는 그리스 정교회ㆍ개신교회ㆍ가톨릭 성당이 모여 있다. 20m가 넘는 성모 마리아 상 앞에 서면 발아래로 옥빛으로 물든 지중해와 보석처럼 빛나는 베이루트가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마치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의 테이블마운틴에 올라 온 것처럼 아주 비슷한 풍광이 그려져 여기가 중동의 베이루트인지 잠시 헷갈린다. 지그시 눈을 감고 한 동안 아무런 말도 없이 이곳에 그냥 서 있어도 마음은 한 줌의 티끌도 없이 정화되고 순화되는 기분이 느껴진다.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깨끗한 바람에 우리가 가진 이 도시에 대한 편견과 종교로 얼룩진 이들의 삶이 모두 치유되길 바란다.  


main : 하리사 정상에서 내려다 본 베이루트 시내와 지중해 바다.

1: '비둘기 바위'로 유명한 라우쉐 지역의 카페.

2: 시내 중심의 한 카페 창문에 비춰진 이슬람 모스크

3: 이슬람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게 서양의 광고판이 많은 베이루트

4: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서로 다른 종교로 인해 내전 중 파괴된 건물

5: 베이루트 중심지에는 여행자들을 위한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6: 한가로이 한 잔으로 여행의 미학을 꿈꿀 수 있는 시내 거리.

7: 하리사 정상에 20미터 높이로 세워진 성모 마리아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