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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소군(王昭君) 이야기 (1부)

제주한라병원 2011. 6. 1. 14:39

2008년/4월

 

바야흐로 정치의 바람이 상춘객의 눈을 홀리는 봄이 지나고 있다. 뉴스시간에 TV화면에 비친 국회의원 후보들의 치열한 경쟁은 눈물겹기까지 했다. 대개는 정치하는 이들을 두고 힘있고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 생각하곤 하지만 그러나 그들에게도 나름 어찌 못하는 ‘권력 아닌 권력’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언론매체의 카메라’다.

 

그 까닭은 정치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대통령도 아니고, 소속정당의 수장도 아닌 바로 대중의 무관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카메라 기자들이 자신의 얼굴을 한번 담아주는 것에 목을 매고 이를 위해 온갖 쇼맨십도 마다하지 않는다. 카메라가 더 이상 정치인 자신을 담지 않게 되어 그가 세상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예전의 권세와 영화로부터 동떨어진 옆집 아저씨가 돼버리고 마는 현실이 두렵기 때문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선데이 서울’이라는 매체가 발행되던 20여년, 그리고 그 이전의 시절에 연예인들이 기자나 PD보다 두려워하고 우대했던 사람이 바로 사진기자들이었다고 한다. 당시에 연예를 담당했던 신문사 선배님들 말씀을 들어보면 그래서 사진기자와 연예인의 스캔들도 종종 있었단다. 그때만 해도 신문이나 잡지에 나오는 사진 한 장이 연예인의 흥망을 좌우할 정도로 매체환경이 단순하고 한정되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리라.

 

어찌 되었건 정치인들이 두려워하는 카메라 기자나 연예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대우했던 사진기자들 이야기를 장황하게 꺼낸 것은 지난호에 이어 중국 미인의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서다. 중국 역사 속에도 이러한 관계가 존재하지 않았을까.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날아가던 기러기를 떨어뜨렸다는 한(漢)나라 때의 미인, 낙안(落雁) 왕소군(王昭君)의 이야기 속에도 그런 관계가 있다. 이야기 분량이 많아 2회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

 

기원전 한나라 원제(元帝) 때 전국에 후궁을 모집한다는 조서가 내렸는데, 각지에서 선발되어 입궁한 궁녀들은 그 수가 수천에 이르렀다. 왕소군도 18세에 후궁으로 선발되었다. 황제는 수천 명에 이르는 궁녀들을 일일이 파악할 수 없었기에, 먼저 화공에게 한 사람 한 사람의 초상화를 그려 바치게 했다. 그래서 부귀한 집안의 출신이나 경성(京城)에 후원자가 있는 궁녀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화공에게 자신의 모습을 예쁘게 그려달라 뇌물을 바쳤다. 그러나 왕소군은 집안이 넉넉하지도 않고 아는 사람도 없는데다 자신의 용모를 황제에게 속일 마음이 없었으므로 뇌물을 바치지 않았다.

 

결국 화공 모연수(毛延壽)는 자기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은 왕소군을 괘씸히 여겨, 그녀의 용모를 아주 평범하게 그린 다음 얼굴 위에 큰 점을 하나 찍어 버렸다. 원제는 왕소군의 초상을 보았지만, 추하게 그려진 그녀의 모습을 안중에도 두지 않게 된다. 이리하여 왕소군은 입궁한지 5년 동안 여전히 황제의 얼굴도 보지 못한 궁녀 신분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러나 BC 33년, 남흉노(南匈奴)의 선우(單于, 흉노의 우두머리) 호한야(呼韓邪)가 원제를 알현하기 위해 장안(長安)으로 오면서 사건이 터진다. 당시 한나라는 흉노를 오랑캐로 여겼지만 외교적 전술로 그들과의 화친을 원하고 있었다.

 

호한야는 모피와 준마 등 많은 공물을 가지고 장안으로 와서 원제에게 매우 공손하게 문안을 올렸다. 크게 기뻐한 원제는 성대한 연회를 베풀어 호한야를 환대했고, 호한야는 원제에게 황제의 사위가 될 것을 청하였다. 원제는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는 공주를 시집보내기 전에 먼저 그에게 한나라 황실의 위엄을  과시하고 싶었다. 그래서 자기의 후궁 중 아직 총애를 받지 못한 미녀들을 불러와 술을 권하게 했다. 궁녀들이 줄지어 들어오자 호한야는 다채로운 모습에 한참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다, 그 중 절색의 미인을 발견하고 시선을 그곳에 고정시켰다. 그리고는 즉시 원제에게 새로운 제의를 했다.

 

"황제의 사위가 되기를 원하지만 꼭 공주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저 미녀들 중의 한 명이어도 괜찮습니다."

원제는 종실의 공주들 중에서 한 명을 택하려고 하였으나, 궁녀들 중에서 한 명을 선발한다면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의 제의를 즉석에서 수락했다. 원제는 호한야에게 직접 선택하도록 했고, 호한야는 그 자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왕소군을 지적한다.

 

호한야가 가리키는 쪽을 보니 과연 천하절색의 미녀가 사뿐히 절을 올리는 게 아닌가! 곱고 윤기 있는 머릿결은 눈부시고, 원망하는 빛이 은근히 배인 왕소군의 눈빛과 아름다운 미모에 원제는 한눈에 반하고 만다.

그러나 황제로서 한 번 내린 결정을 번복할 수도 없었다. 연회가 끝난 후 원제는 급히 돌아가 궁녀들의 초상화를 찾아보았다. 그런데 왕소군의 그림이 본래의 모습과는 천양지차로 다른데다 얼굴에 점까지 그려져 있는게 아닌가. 그 순간 원제는 화공(畵工) 모연수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라 진상을 철저하게 조사토록 명령하였다. 진상이 밝혀지자 모연수는 황제를 기만한 죄로 참수되고 만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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