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3월
‘드디어 봄이 왔노라’ 고 굳이 우기지 않아도 따스한 공기와 부드러운 바람은 봄이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음을 자연스럽게 알게 해준다. ‘봄처녀 제 오시네~’하는 콧노래가 절로 나올 법한 봄날의 분위기에 걸맞게 이번 호에서는 미녀 이야기를 소개해 볼까 한다. 나름대로 호응이 있으면 몇 번 더 소개할 생각도 있다.
중국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뻥’이 좀 센 편이라는 것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다들 잘 아시는 삼국지의 전쟁 장면에는 수십만 또는 수백만 명의 군사가 수시로 등장해서 장수의 지략으로 순식간에 전멸하기도 하고, 새롭게 집결되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 숫자와는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것이 역사가들의 일반적인 추정이다. 통 큰 중국 이미지답게 표현도 상당히 통 크고 과장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장의 성향은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웠다는 미인들의 별명에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중국에서 실존인물이든,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가상의 인물이든 가장 아름다웠던 미인으로는 4명이 손에 꼽힌다. 그들을 부를 때 쓰이는 어휘로 『浸魚落雁(침어낙안) 閉月羞花(폐월수화)』라는 말이 있다. 직역하면 ‘물고기를 가라앉히고 기러기를 떨어뜨리며, 달의 얼굴을 가리고 꽃을 부끄럽게 하다’ 정도로 해석되는데 과장이 좀 심하긴 해도 풍류가 느껴지는 멋진 표현들이 아닐 수 없다.
침어(浸魚)는 월나라의 서시(西施) 라는 여인을 일컫는 말이다. 어느 날 그녀가 강변을 거닐고 있었는데 맑고 투명한 강물에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이 비쳤다. 수중의 물고기가 아름다운 그녀를 보고는 헤엄치는 것을 잊어 버리고 천천히 강바닥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이리하여 침어라는 별칭이 붙여진 것이다. 또 낙안(落雁)은 ‘하늘을 날던 기러기가 땅에 있는 그 미모에 놀라 날개짓 하는 것조차 잊게 하여 땅으로 떨어뜨리는 미녀’란 뜻으로 한나라의 왕소군(王昭君)을 일컫는다.
폐월(閉月)은 ‘달도 그녀의 미모에 스스로 부끄러워 얼굴을 가리게 만든 미녀’로 삼국지에 등장하여 동탁과 여포 사이를 갈라놓았던 초선(貂蟬)을, 수화(羞花)는 ‘꽃조차 그녀의 미모에 부끄러워 스스로 꽃잎을 말아 올리게 했다는 유명한 당나라 양귀비(楊貴妃)를 가리킨다.
오늘은 그 중에서 서시라는 여인 이야기를 살펴보자. 서시는 중국 춘추말기(B.C.500년경) 월(越)나라의 미녀로 어릴적 이름은 이광(夷光)이며, 절강(浙江) 저라산(苧羅山) 근처에서 나무장수의 딸로 태어났으며 그녀와 관련하여 ‘서시빈목(西施嚬目)’이라는 고사성어도 생길 정도로 대단한 미모였다고 한다. 그 지방 여자들은 무엇이든 서시가 워낙 절세미녀인지라 그녀의 흉내만 내면 아름답게 보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가슴앓이병이 있어 자주 눈을 찡그리던 서시의 흉내를 낸 여인들을 두고, 외형에 사로잡혀 본질을 망각하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비꼬는 고사성어가 생겨난 것이다.
또 우리가 잘 아는 ‘와신상담’의 실제 사건에도 서시가 등장한다. 오왕 부차에게 회계산에서 대패하고 복수를 벼르던 구천의 충신 범려는 보복을 위해 미인 서시에게 예능을 가르쳐 호색가인 부차에게 바친다. 부차는 서시의 미모에 사로잡혀 정치를 돌보지 않게 되었고 마침내 월나라에 패망하게 된다. 오나라가 망한 후에 월왕이 서시를 강물에 던져 익사케 했다는 설(說)도 있고, 원래 서시의 정부였던 범려가 데리고 은거했다는 설도 있지만 어쨌든 두 나라의 운명을 갈라놓은 한 여인의 이야기. 그리고 그 미모를 ‘침어(浸魚)’라는 말로 표현한 중국인들의 ‘뻥이 세다’고만 하기에는 풍류 넘치는 감각이 새삼 재미있게 느껴지는 봄날이다.
자~ 봄날의 나른함을 깨우기 위해 우리 모두 실천해보자. 지금 주변에서 가장 먼저 눈의 띄는 여인에게 ‘침어’같다고 불러주고 그 뜻을 얘기해주자. 아마 절대로 싫지 않은 표정의 환한 미소(?)를 돌려받을 수 있지 않을까.
※ 참조
본래 와신(臥薪)은 ‘섶에 눕는다’는 뜻으로 월(越)왕 구천에게 아버지를 잃은 오(吳)왕 부차가 불편한 잠자리를 쓰면서 구천에 대한 복수를 되새겼다는 데서 온 말이고, 상담(嘗膽)은 ‘쓸개를 맛본다’는 뜻으로 복수를 다짐하던 부차에게 월왕 구천이 대패하고 나서 돌아와 항상 쓸개를 핥으며 훗날을 기약했다는 데서 온 말인데 두 사람의 이야기가 합해져서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고사성어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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