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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진 아픔 딛고 일어선 잉카제국의 도시

제주한라병원 2016. 11. 28. 15:19

대지진 아픔 딛고 일어선 잉카제국의 도시
페루 쿠스코


쿠스코 여행의 중심인 아르마스 광장


고대 잉카인들의 삶의 지혜가 오롯이 남아 있는 페루는 남미에서 세 번째로 큰 국가이다. 남미의 뼈대인 안데스산맥과 아마존 강을 품고 있는 이곳은 수준 높은 잉카문명의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유서 깊은 나라다. 우리에게도 잉카인들의 영원한 수도 쿠스코, 공중의 도시 마추픽추 등은 남미를 대표하는 여행지로 잘 알려져 있다. 스페인 식민문화와 잉카 고대문화가 혼재된 페루의 도시들은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큼 아주 매력적인 요소들을 지니고 있다. 그중에서서도 일생에 한 번은 꼭 봐야 할 여행지로 전혀 손색이 없는 쿠스코는 인류가 소중히 간직해야 할 세계문화유산이다.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만큼 잉카의 유적이 풍부하게 남아있는 쿠스코는 페루의 관광 수도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도심에는 고대 잉카의 석벽이 그대로 남아 있고, 인파로 북적이는 비좁은 거리에는 잉카시대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 잉카제국으로 온 것 같은 착각이 쿠스코를 더욱 아름답게 한다.


쿠스코와 잉카 제국의 역사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전설인지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신비하고 미스터리하다. 일반적으로는 서기 700여 년 즈음, 틱사나쿠 부족이 쿠스코에 들어와 살았고 그 후에는 와리 부족이 잠시 동안 이 지역을 지배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잉카 부족은 두 부족의 문명이 충돌하던 1100년경에 번성했으나 곧바로 쿠스코에 들어와 살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로레토 석벽에서 만난 잉카의 원주민. 

고대 석벽이 그대로 남아 있는 비좁은 거리에는 잉카시대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쿠스코의 서민적인 모습까지 느낄 수 있는 로레토 골목길. 



퓨마의 모습을 닮은 쿠스코는 1400년대 중반 때, 파차쿠티 왕자에 의해 도시가 기획되고 건설되었다. 왕자는 도시계획과 건축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였으며 유명한 태양의 신전, 코리칸차 건축의 책임을 맡기도 하였다. 1500년대 초반, 남아메리카에 침입한 스페인 정복자들은 결국 쿠스코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강력한 무기로 무장한 스페인 정복자들은 잉카 제국을 마침내 손에 넣었다. 쿠스코의 금과 은을 약탈한 스페인 사람들은 리마로 페루의 수도를 옮겼고, 그 후 쿠스코는 일개 식민 도시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잉카 제국의 몰락 이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가장 큰 역사적 사건은 지진이었다. 1650년, 1950년 그리고 1986년에 일어난 쿠스코 대지진은 모든 유적지를 송두리째 앗아갔다. 특히 1650년에 일어난 대지진으로 쿠스코는 쑥대밭이 되었다. 수많은 전쟁과 지진에도 불구하고 쿠스코는 도시를 재건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한 번 일어났다. 쿠스코의 명소들은 스페인 식민지시대의 건축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며 아름다운 교회들과 유서 깊은 저택들이 잉카 유적들과 어우러져 남미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성장하였다. 특히 잉카시대에 축조된 석벽으로 둘러싸인 쿠스코의 좁디좁은 거리를 걷다 보면 옥외 박물관을 관람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곳의 잉카 유적은 쿠스코의 토대를 이루었던 것으로 오늘날까지 훼손되지 않은 채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독특하고 저마다 생김새가 다른 석벽은 쿠스코 전역에 남아있지만 다른 곳보다 보존상태가 우수한 곳이 몇 군데 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로레토(Loreto) 거리와 산토도밍고 교회 석벽이다. 로레토 거리는 쿠스코에서 가장 오래된 석벽들 중 하나이자 아클라우아시(태양 처녀의 신전)를 둘러싸고 있던 석벽이다. 그리고 코리칸차 터에 세워진 산토도밍고 교회 석벽은 잉카시대의 건축기술을 잘 보여준다. 지금은 교회가 무너지고 없지만 둥글게 돌아간 6m 높이의 잉카 석벽은 세월의 먼지를 뒤집어쓰고 고스란히 남아 있다. 석벽의 미학이 살아 숨 쉬는 로레토 거리는 그야말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 시대로 온 느낌이다. 어린 아이만한 큰 돌로 치장한 석벽은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쿠스코의 중심지인 아르마스 광장에서 남동쪽으로 난 라 콤파니아 성당 옆으로 들어서면 시간과 동떨어진 로레토 거리에 이른다. 잉카 제국시절에 쌓은 돌담이 골목길을 따라 길 양쪽으로 이어진다. 우리의 제주의 돌담이 바람구멍의 미학이라면 로레토의 석벽은 튼튼하고 견고함을 자랑한다. 로레토 석벽은 잉카 제국의 모든 역사와 쿠스코 시민들의 삶의 궤적과 늘 함께 하였다. 무엇보다 로레토의 골목길이 좋은 이유는 외국인을 비롯해 다양한 현지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전통의상을 입고 라마를 끌고 다니는 여성에서부터 쿠스코의 서민적인 모습까지 느낄 수 있다. 갓난아이를 등에 업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연인의 모습이다. 이처럼 로레토 거리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출된다. 잉카 제국의 수도였던 만큼 쿠스코에는 지진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거나 복원된 유적들이 풍부하게 남아 있어, 페루 여행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도심에는 손상되지 않은 고대 잉카의 벽을 그대로 간직한 건물들이 길을 따라 양쪽에 줄지어 서 있는 거리들이 많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쿠스코의 비좁은 거리에는 계단이 많아 옛 정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쿠스코 여행의 중심은 단연, 아르마스 광장이다. 세계에서 수많은 여행자들이 한 자리에 모인 인간시장을 방불케 한다. 유럽인과 미국인 그리고 한국인까지 정말 다양한 인종과 민족들이 아르마스 광장에서 페루의 숨겨진 여러 여행지를 가기 위해 시작점이 되고, 때로는 종착점이 되기도 한다. 아무 일 없이 아르마스 광장에 있는 스타벅스에 앉아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열 수도 있고, 낮에는 따스한 잉카의 햇살을 받으며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 아르마스 광장이다. 또한, 여행자들에게 어머니 품처럼 따스하고 넉넉하고 때로는 낭만적인 분위기를 선사한다. 그렇지만 500여 년 전 스페인의 정복자들은 잉카의 수도인 쿠스코를 정복하고 도시를 재정비한다는 명목으로 잉카의 건축물들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 가톨릭 성당과 귀족들이 살 집을 지었다. 지금은 로맨틱한 분위기의 광장이지만, 현지인들에게는 슬픔이 서린 광장이기도 하다.





구름도 잠시 쉬었다가는 쿠스코의 전경. 

스페인 식민지시대에 건축된 가톨릭 성당들이 많은 아르마스 광장.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 같은 쿠스코의 뒷골목 풍경. 


아르마스 광장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은 쿠스코 대성당이다. 이곳은 1559년에 시작되어 1669년에 마무리되었다. 대성당의 터는 잉카시대의 비라코차(Wiracocha) 신전이 서 있던 자리이다. 대성당에는 400여점이 넘는 종교화가 보관되어 있다. 16~17세기에 제작된 이들 그림은 유럽의 회화기법과 안데스 원주민들의 영향이 합쳐진 매우 독특한 작품들이다. 예를 들어, 마르코스 사파타(Marcos Zapata)의 ‘마지막 만찬’이라는 작품 속에는 쿠스코의 명물인 기니아 피그로 식사를 하는 사도들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성당 내부에는 400kg에 달하는 은으로 만든 주제단과 백향목으로 만든 성가대석, 그리고 정교한 나뭇조각 등 주목할 만한 유물들이 많이 남아있다. 엘트리운포 교회는 1650년의 대지진으로 파괴된 쿠스코의 모습을 재현한 저 유명한 알론소 코르테스 데 몬로이(Alonso Cortes De Monroy)의 그림이 소장되어 있다. 아르마스 광장에서 대성당이 쿠스코 시민들의 영혼의 안식처가 되어주고, 그 옆에는 16세기에 예수회 교회로 사용되고 있는 라 꼼빠니아 데 헤수스 교회가 자리한다. 1650년의 대지진으로 큰 타격을 입었으나 곧 재건되어 1660년대에는 기존의 모습을 되찾았다. 교회의 크기가 쿠스코 대성당을 능가한다는 이유로 건축 당시 수많은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교회이다. 이처럼 쿠스코에는 잉카인들이 오롯이 지켜낸 삶과 스페인의 가톨릭 종교가 함께 어우러져 독특한 풍경을 빚어낸다.


바람도 구름도 잠시 쉬었다가 갈 만큼 높은 곳에 찬란한 문화와 문명의 도시를 만든 잉카인들.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도 강인한 인간의 삶의 의지를 보여준 쿠스코는 지구별에서 가장 아름답고 독특한 모습을 지닌 여행지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