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최고의 화가 고야가 사랑한 곳
스페인 마드리드
▲ 마드리드 시민들의 영원한 안식처인 마요르 광장.
20세기 찬사와 혹평을 동시에 받는 스페인 출신 화가 고야. 그는 청각장애를 극복한 베토벤처럼 육체적 한계를 이겨내고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개척한 스페인 최고 화가다. 근대미술의 혁명가, 광기가 어린 미술가, 여자와 로맨스를 즐기는 낭만주의 화가 등 그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는 정말 다양하다. 고야의 작품을 본 사람들이라면 왜 이런 수식어가 따라붙는지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옷을 벗은 마하’와 ‘옷을 입은 마하’ 그림으로 잘 알려진 고야는 광기와 열정으로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화가로 유명하다. 특히 그가 보여준 민족의식은 우리에게 귀감이 될 뿐 아니라 스페인 국민에게 가장 기억되는 화가로 자리하고 있다. 고야의 청장년 시절 미술에 대한 갈증과 고뇌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마드리드는 고야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특별한 도시다.
스페인 부르봉 왕가의 귀족적인 삶의 양식이 건축물 곳곳에 남아 있는 마드리드는 젊은 고야의 꿈과 희망의 무대였다. 또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그의 친구 산초가 누볐던 마드리드는 예술의 도시라 불릴 만큼 고풍스러운 멋과 스페인 특유의 감성이 도시 곳곳에 스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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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을 대표하는 벨라스케스와 고야 등의 작품이 전시된 프라도 미술관 | 스페인의 화려한 궁중 예술을 만날 수 있는 레알 왕궁. | 소박하고 인심 좋은 사람들의 미소가 아름다운 곳, 마드리드 |
400여 년간 스페인의 정치․경제․문화 중심지 역할을 한 마드리드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646m에 위치한 고원도시다. 인구로 따지면 유럽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인 마드리드는 10세기 즈음 스페인의 수도였던 톨레도를 방어하기 위해 세워졌던 곳이다. 그때는 마드리드를 ‘마헤리트’라 불렀고, 카스티야 왕조는 이곳을 톨레도의 변방으로 생각했다. 그 후 1561년 펠리페 2세가 강대한 에스파냐 왕국을 다스릴 중앙정부를 건설하기 위해 수도를 톨레도에서 마드리드로 옮겨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 프라도 미술관 앞에 세워진 고야의 동상
도시의 중심이 되는 구시가는 카를로스 3세 때인 17~18세기에 주로 건설됐다. 여느 유럽 도시처럼 마드리드의 구시가지는 중세의 고풍스러움과 우아함이 동시에 느껴지고, 아랍 이슬람 영향으로 오리엔탈적인 문화와 유럽 문화가 충돌하면서 만들어진 독특한 멋이 녹아 있다. 고색창연한 건축물과 박물관을 비롯해 300년이 넘은 중세의 유적지들이 21세기 문명화된 빌딩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온고지신의 명제를 잘 표현하고 있다. 중세의 자취가 묻어나는 마드리드의 중심은 ‘태양의 문’이라 불리는 ‘푸에르타 델 솔’ 구시가지 광장에서 시작된다. 스페인 도로의 기원 표시 ‘0㎞’가 있는 이 광장은 프랑스 개선문 주변처럼 10개의 도로가 방사선 모양으로 도시를 사통팔달로 연결해 준다. 도로를 따라 미술관과 레알 왕궁, 마요르 광장, 호텔, 레스토랑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들어서 있다. 또한 도로 뒷길로 벗어나면 건물들이 서로 어깨를 맞닿을 정도로 좁은 골목길이 미로처럼 얽혀 도시의 고풍스러움을 한껏 느낄 수 있다. 집집마다 발코니에 내놓은 화분들이 고운 햇살을 받아 아름다운 무지갯빛을 연출한다. 도저히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는 따뜻하고 감성적인 느낌이 건물 곳곳에 녹아 있는 마드리드는 고야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미지를 연출한다.
▶ 세르반테스가 쓴 ‘돈키호테’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형상화한 동상들.
그 중에서도 마드리드 시민의 안식처이자 여행자들의 발길이 하루 종일 이어지는 곳이 바로 레알 왕궁과 마요르 광장이다. 우선 레알 왕궁은 스페인 왕의 공식거처이자 스페인 왕국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건물이다. 동쪽에 있어 ‘오리엔테 궁전(Palacio de Oriente)’이라고 불린 왕궁은 10세기에 이슬람교도가 에스파냐의 수도였던 톨레도로부터 마드리드를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성채를 세운 자리에 있다. 그리스도교가 마드리드를 탈환한 후 이슬람교도의 성채를 스페인 합스부르크왕가의 궁으로 사용하였지만 1734년 크리스마스이브에 화재로 소실되었다. 1734년 부르봉가 왕가의 시조이며 베르사유 궁전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펠리페 5세(루이 14세 손자)가 베르사유 궁전을 모델로 하여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돌과 화강암으로만 건축하였다. 1764년 펠리페 5세 아들인 카를로스 3세 때부터 살기 시작하여 후안 카를로스 현 국왕의 조부인 알폰소 13세가 왕정의 문을 내린 1931년까지 역대 스페인 국왕들의 공식 거처로 사용되었다. 레알 왕궁 내부에는 총 2,800여 개의 방이 있고, 그 중 50개 정도를 일반인들에게 개방한다. 도자기로 장식된 방, 화려한 연회가 열리는 대형 식당, 중국 양식으로 꾸며진 가스파리니 방 등을 관람하며 화려한 궁중생활을 엿볼 수 있다.
레알 왕궁은 왕과 왕실 가족들의 전유물이라면 마드리드 시내 한 가운데 있는 마요르 광장은 시민들의 영원한 휴식처이자 삶의 궤적을 함께 한 역사적인 장소이다. 가로 90m 세로 109m의 넓이로 유럽에서 가장 큰 공공광장 중 하나인 마요르는 관광객들과 지역 주민들이 다 같이 즐겨 찾는 카페, 상점, 레스토랑 등이 들어선 분주한 광장이다. 광장의 시작은 펠리페 2세가 1561년 마드리드의 왕궁으로 옮겨온 후 1580년에 처음 시작되었고, 건축가 후안 데 에레라가 이를 실행했다. 광장에서는 투우, 가면무도회, 왕실 결혼식, 대관식 등의 행사가 거행되어 왔다. 그러나 이곳이 항상 단순한 사교적 중심지였던 것은 아니다. 이 광장은 아빌라의 테레사, 이시도르,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등의 성인이 시성 받은 장소이다. 또한 17세기 스페인 종교 재판이 성행했을 때 이단자 등 유죄 판결을 받은 이들이 공개적으로 처형당하거나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 보였던 장소이기도 하다.
고야의 대표작 ‘옷 벗은 마하(위)’와 ‘옷 입은 마하’ | 나폴레옹 군대에 맞서 싸운 마드리드 시민들의 저항 정신을 그린 고야의 ‘1808년 5월 3일’ |
▶ 루벤스, 렘브란트와 함께 바로크 3대 화가로 존경받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레알 왕궁과 마요르 광장은 건축적으로 마드리드의 외형적인 면모를 봤다면 이제부터는 마드리드의 정신문화를 느껴볼 차례이다. 마드리드 문화와 예술의 메카라고 불리는 곳은, 프라도 미술관이다. 스페인이 자랑하는 이곳은 프랑스의 루브르 미술관, 러시아의 에르미타주 미술관, 미국의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함께 세계 4대 미술관으로 꼽힌다. 천재 화가 파블로 피카소가 가장 존경한 벨라스케스와 프란시스코 고야의 작품이 전시된 프라도 미술관은 그림을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마치 미술의 요람과 같은 거대한 학습장이다. 벨라스케스가 펠리페 4세와 그의 일가를 그린 ‘라스 메나스’, ‘시녀들’ 등을 비롯해 피카소에게 영향을 많이 줬던 스페인의 고전주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고, 무엇보다 프랑스 군인의 침략에 마드리드 시민들의 저항의식을 고스란히 담아낸 고야의 ‘1808년 5월 3일’과 ‘전쟁의 참화’는 우리의 일제강점기 때 암울한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이처럼 프라도 미술관과 마드리드는 고야를 좋아하는 팬들에게 둘도 없는 여행지이자 감수성을 채워주는 보고이다. 특히 고야의 걸작들이 전시돼 있는 프라도 미술관에 들어서면 화집에서 봤던 주옥같은 작품들이 소리 없이 우리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한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광기와 열정을 가진 고야는 궁정화가로서 조금은 괴팍하고 전위적인 그림을 그렸다. 고야는 렘브란트와 벨라스케스를 좋아했고, 스페인의 아름다운 대자연과 프랑스 중세의 멋스러움을 사랑했다고 한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고야를 통해 마드리드는 문화의 도시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단순히 제국주의 시절 스페인 함대가 주는 부정적인 면에서 이제는 벨라스케스, 고야, 피카소 등을 통해 스페인이 문화의 나라로 거듭 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단연 마드리드의 꽃으로 불리는 프라도 미술관이 있다. 스페인이 낳은 세계적인 예술가가 있는 이상 이 도시는 축구보다 더 영원한 예술의 도시로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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