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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끼워 맞추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제주한라병원 2015. 12. 28. 10:09

-영웅 테세우스 1 -
억지로 끼워 맞추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대화와 타협’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용어이고, 자주 듣는 말들이다. 워낙 정치적인 사안에는 문외한이기도 하고 해서 선거철을 제외하고는 큰 관심 두지 않고 지내는 필자이지만, 근래 우리 정치를 보노라면 많은 아쉬움과 한탄을 피할 길 없다. 여야 간에 몇 달 뒤 치러질 선거의 룰인 선거구를 정하는 것조차도 합의를 하지 못해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언급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야당은 그 내부에서 서로 자기 계파의 혁신안을 주장하다 뜻이 맞지 않는다고 내분하여 일부는 탈당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여의도 정가에 계시는 분들은 대한민국에서 꽤 배움이 많고, 누구보다 애국심에 넘친다고 자부하며, 민주주의의 대해 깊이 연구해온 분들 아닌가. 그런 분들이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주의 절차의 요체를 지행합일(知行合一) 하기는커녕, 서로 제 생각만 옳다고 고집 부리며 협상을 통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니…. 요즘 이런 상황을 보면서 신화 속 한 장면이 떠오른다.


무언가를 일정한 틀에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을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고 비유하는데 이것은 그리스신화에서 연원한다. 그리스 출신의 역사가이자 철학자인 플루타르크가 쓴 테세우스 전기나 학자 아폴로도로스의 신화모음집에 의하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하나가 아니라 두 개였다고 한다. 그에겐 큰 침대 하나와 작은 침대 하나가 있었는데, 키가 작은 여행객이 찾아오면 큰 침대에 눕도록 강요한 후 침대 길이에 꼭 맞을 때까지 자신의 몽둥이로 때려서 몸집을 늘였다는 것이다. 반대로 키가 작은 여행객들은 작은 침대에 눕도록 강요당했다. 침대 밖으로 나온 신체의 부분은 여지없이 프로크루스테스에 의해 잘려나갔다.


그래서 정해놓은 틀에 억지로 무언가를 끼워 맞추려 하는 형국을 ‘프로스쿠스테스의 침대’라고 비유하게 된 것이다. 대화와 타협보다는 독선과 고집, 강요로 점철된 오늘날 한국 정치의 현실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아 씁쓸하다.
아무튼 프로크루스테스 이야기는 테세우스라는 불세출의 영웅 스토리와 함께 전해온다. 훗날 아테네의 민족적 영웅이 될 테세우스가 청년기에 그의 고향인 펠로폰네소스 아르골리스 지방에 있는 도시 트로이젠에서 아테네로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여행길에 겪은 모험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그리스 신화의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의 줄인 말로, 집안 좋고 성격 밝은데다 공부도 잘하고 인물도 훤한 모든 면에서 뛰어난 젊은이를 의미하는 신조어)이자 훈남인 테세우스의 탄생에서부터 모험담까지 그 이야기를 2회에 걸쳐 거슬러 올라가보자.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는 트로이젠의 공주 아이트라와 하룻밤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리고 그곳을 떠나면서 아주 무거운 바위 밑에 칼 한자루와 신발 한 켤레를 묻어놓고는, 아이트라에게 혹시 아들을 낳게 되고 그 아이가 그 무거운 바위를 들어 올릴 수 있을 만큼 성장하면 칼과 신발을 징표로 가지고 자신을 찾아오게 해달라고 신신당부하고 떠난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트라는 아들 테세우스를 낳게 되고 그녀는 테세우스로 하여금 본인이 아테네 왕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고 자라도록 가르쳤다. (하지만 그것이 아주 확실지만은 않다고 한다. 테세우스를 갖게 된 그날 밤 바다의 신 포세이돈도 그녀와 잠자리를 같이 했기 때문이다. ㅠㅠ)


어찌 되었건 테세우스는 열여섯 살이 되자 그 비밀의 바위를 너끈히 들어올릴 만큼 힘센 청년으로 성장했다. 그리고는 드디어 아버지가 남겨준 징표를 가지고 아테네로 출발했다. 당시 그리스에는 무서운 도적들과 사나운 동물들이 자주 출몰했기 때문에 그것은 무척 위험한 여행이었지만, 어릴 적부터 위대한 헤라클레스의 이야기를 롤모델로 들으며 자란 테세우스로서는 그저 넘치는 모험심으로 가득했다.


에피다우로스에서 겪은 첫 번째 사건에서부터 그는 목숨을 잃을 뻔 했다.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의 망나니 아들인 ‘페리페테스’는 그곳에 오는 이방인들 모두를 청동 몽둥이로 때려죽이고 있었다. 그는 테세우스에게도 몽둥이를 휘둘렀지만, 날렵하게 이를 피한 테세우스는 격투 끝에 오히려 그를 때려죽이고는 그의 청동 몽둥이를 빼앗아 다시 길을 떠났다.


코린토스 지협에서 테세우스는 더 고약한 악당을 만난다. ‘시니스’라는 거인이었는데, 그는 지나가는 사람을 불러 큰 전나무를 구부리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한 후 나무가 끝까지 다 팽팽하게 당겨지면 얼른 그 나무를 놓아버려서 도와주던 사람이 하늘 높이 내던져졌다 떨어지게 해 온몸이 박살나게 하곤 했다. 테세우스는 시니스가 즐겨 쓰던 이 수법 그대로 시니스를 죽게 한다.


한편 시니스에겐 아름다운 딸이 있었는데 테세우스를 사랑하게 된 이 처녀는 그를 유혹하여 그의 아이를 임신하기까지 한다. 훗날 테세우스는 이 처녀가 좋은 남편을 만나 살도록 돌봐주기도 한다. (다음 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