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지 위에 사랑하는 여인을 그렸다
슬라바키아 브라티슬라바(Bratislava)
▲ 1801년 베토벤이 사랑한 여인, 귀챠르디와 헤어진 후 월광을 작곡한 브라티슬라바 성
음악의 도시 오스트리아 빈에서 50km 정도 떨어져 있는 브라티슬라바는 수준 높은 음악이 일 년 내내 연주되는 오스트리아의 빈과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의 영향을 받아 음악의 도시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독일의 천재 음악가 베토벤은 브라티슬라바에서 ‘월광’을 작곡했고, 피아노의 천재 리스트 페렌츠는 아홉 살의 나이에 경이적인 피아노 솜씨를 선보여 많은 사람들로부터 ‘피아노의 천재’라는 칭호와 박수갈채를 받았다. 또한 금세기 최고의 소프라노 에디타 그루베로바의 아리아는 중세의 도시 브라티슬라바를 더욱 황홀하게 빛낸다. 이 외에도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라이테르 뤼도비트, 피아니스트 요한 네포무크 후멜 등 이 도시 출신의 위대한 음악가는 셀 수 없이 많다.
▲중세의 고풍스런 분위기가 연출되는 구시가지 | ▲브라티슬라바 성의 외관 |
◀구시가지 광장 주변에서 커피 한 잔으로 낭만을 즐기고 있는 시민들.
오스트리아의 남역에서 기차를 타고 1시간 남짓 달리면 베토벤과 리스트의 음악적 열정이 녹아있는 브라티슬라바에 도착한다. 슬로바키아라는 이름보다 더 낯선 브라티슬라바는 우리에게는 낯선 도시이다. 독일어로 프레스부르크(Pressburg), 헝가리어로는 포조니(Pozsony)라 불리는 브라티슬라바는 켈트족과 로마인의 의해 처음으로 도시가 요새화되었고, 8세기 이후 슬라브족이 정착하면서 점차 도시다운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지금은 슬로바키아의 수도이지만 과거에 이 도시는 헝가리의 영토였기 때문에 헝가리 최초의 대학 아카데미, 아이스트로 폴리타나가 세워졌다. 그리고 16세기에 오스만제국이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를 점령했을 때 헝가리 왕가는 수도를 이곳으로 옮겨와 1526~1784년까지 약 250년 동안 이곳에 머물렀다. 합스부르크가의 마리아 테레지아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시절 프랑스와 독일바이에른 군대의 위협을 피해 이곳으로 잠시 피난을 오기도 했다. 이처럼 브라티슬라바는 헝가리와 오스트리아의 영향을 받으면서 발전했다.
▲브라티슬라바 시민들의 삶의 희로애락을 품은 구시가지 광장 | ▲구시청사와 그 앞에 있는 작은 광장은 시민들이 많이 찾는 휴식처가 된다. |
▶ 영원히 푸른 하늘과 붉은 색으로 뒤덮인 지붕이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중앙역을 등지고 남서쪽으로 10여 분 정도 걸어 내려오면 도시 중앙에 우뚝 솟아오른 붉은 지붕의 성이 눈에 들어오고, 하늘 높이 솟아오른 교회의 첨탑들이 날렵한 몸매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도시 남쪽으로는 다뉴브 강이 흐르고, 구시가지는 강 북쪽에 위치해 있다. 보통 브라티슬라바 여행은 이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고성(古城)을 구경한 뒤 구시가지로 내려와 시청사, 박물관, 성 마르틴 교회, 호르반 광장 등의 다양한 볼거리들을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지닌 브라티슬라바 성은 인구 50만 명의 브라티슬라바 시민의 자랑거리이다. 강 수면에서 100m 높이에 세워진 성은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세워졌으나, 1431~1434년 사이에 고딕 양식의 요새로 다시 지어졌다. 그 후 오스만제국의 침략에 대비해 성 모퉁이에 4개의 탑을 증축했다. 그러나 1811년의 대형 화재로 인해 성의 많은 부분이 소실돼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개축한 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현재 이곳은 슬로바키아 의회와 시립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성의 3층에는 20세기 슬로바키아의 역사·문화·예술 등과 관련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성의 앞마당과 뜰에는 로마의 바실리카 양식으로 지어졌던 교회 터들이 곳곳에 남아 있고, 성벽 바로 아래로 베토벤의 눈물과 리스트의 피아노 선율을 실은 다뉴브 강이 흐른다. 이곳에 서면 사람들은 말이 없어진다. 모두들 소리 없이 흐르는 강을 바라보며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든다. 건축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울긋불긋한 도시의 지붕과 성당에 시선이 머물고, 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파란 하늘과 중세풍의 도시에서 시상을 떠올리며,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베토벤의 월광을 들으며 호젓한 시간을 갖는다. 기록된 자료는 없지만 악성 베토벤도 이 성에 올라 자신을 떠난 줄리에타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 높이 85m의 첨탑을 가진 성 마르틴 성당.
브라티슬라바 성과 베토벤의 인연은 1801년으로 돌아간다. 베토벤은 그 해 사랑하는 여인 줄리에타 귀챠르디(Giulietta Guicciardi)와 헤어진 후 이곳에 와서 이별의 슬픔을 멋진 음악을 만들어 헌정했는데, 그 곡이 바로 ‘피아노 소나타 14번’이다. 원래 이 곡의 이름은 ‘환상곡 풍의 소나타’였는데 1832년 베토벤이 죽은 후 시인 루드비히 렐시타프가 제1악장이 ‘스위스 루체른(Luzern) 호수 위에 비친 달빛이 물결에 흔들리는 조각배 같다’고 비유한데서 ‘월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바로 브라티슬라바 성에서 만든 곡이 우리가 즐겨는 듣는 월광으로 베토벤이 사랑하는 줄리에타 귀챠르디를 위해 작곡한 것이다. 이처럼 베토벤을 생각하며 블라티슬라바 성에서 발 아래로 펼쳐진 강과 구시가지를 감상하노라면 한 편의 영화처럼 베토벤의 사랑이 흘러간다.
동서로 흐르는 다뉴브 강, 쪽빛만큼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 사랑의 세레나데를 지저귀는 새, 여인의 입술처럼 붉은 지붕들……. 그는 아름다운 브라티슬라바의 자연을 바라보며, 가슴 속에 묻어 둔 옛사랑을 떠올렸고, 오선지에 사랑하는 여인을 그렸다. 느릿느릿한 피아노의 선율에는 부드러운 서정이 녹아 베토벤의 열정적인 사랑을 느끼게 한다.
잠시 베토벤과 그의 감성을 브라티슬라바 성에서 느끼고 나면 발걸음은 본격적으로 구시가지를 향해 나간다. 좁은 골목길과 계단을 따라 성에서 내려오면 과거 합스부르크가 통치자들이 대관식을 거행했던 성 마르틴 성당(St.Martin's Cathedral)이 나온다. 높이 85m의 첨탑을 가진 대성당은 구시가지를 보호하는 성벽 역할을 하고 있다. 14세기 초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져 가장 오랜 역사와 가장 큰 규모로 브라티슬라바 시민들의 자긍심을 한껏 높이고 있다. 이곳에서는 1563년부터 1830년까지 11명의 왕의 대관식이 거행되었는데 그 중 합스부르크왕가의 최고 실세였던 마리아 테레지아도 1741년 6월 25일에 이 성당에서 왕관을 썼다. 이처럼 마르틴 성당은 오랜 건물의 역사 이외에도 중세 유럽의 큰 축을 담당했던 오스트리아 왕가의 대관식이 이뤄졌을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이처럼 성과 성당이 이 도시를 대표하는 건물이지만 구시가지 광장에 들어서면 서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6월과 10월에 브라티슬라바 구시가지 광장에서는 여름문화행사 쿠르투르네 레토(Kulturne Leto)는 포크댄스, 전통음악 연주, 간이연극 등으로 시작되어 연극, 발레, 음악회 등의 공연이 9월까지 열린다. 그리고 10월 초에 열리는 브라티슬라바 음악축제는 약 1주일 동안 국제행사 규모로 열린다. 이때는 유럽 전역에서 모여든 다양한 형식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국립교향악단의 공연은 빈 필이나 베를린 필 못지않은 높은 수준의 음악을 선사한다. 아마 고성이나 중앙광장에서 듣는 클래식 연주는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풍성한 음악축제가 열리는 브라티슬라바 여행은 동유럽 예술의 진수를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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