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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상처를 딛고 새롭게 태어나다

제주한라병원 2015. 8. 26. 10:27

전쟁의 상처를 딛고 새롭게 태어나다
옛 유고슬라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



칼레메그단 요새에 서 있는 빅토르 동상은 세계 2차 대전의 승전기념이다.


베오그라드의 드높은 하늘은 시시각각으로 변하지만 그 아름다움에는 변함이 없다. 한겨울의 찬 기운 속에서도 맑고 투명하게 빛나는 하늘은 한 여름의 폭풍이 불어올 때 거센 바람이 몰고 온 회색빛 구름으로 덮여버렸다가 파노니아의 먼지가 섞인 비를 부린다. 봄이 오면 대지와 함께 피어나고 가을이면 수많은 별로 가득 찬다. 이토록 이상한 도시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보상이라도 하듯, 이 땅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한탄하기라도 하듯, 베오그라드의 하늘은 언제나 아름답고 풍성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베오그라드의 하늘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바로 해질녘이다. 가을과 겨울에는 사막의 신기루 같이 넓고 밝은 노을이 펼쳐지고, 봄에는 하얀 뭉게구름과 붉은 안개가 겹쳐 한층 더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석양의 붉은 불꽃이 평원에 옮겨 붙은 것 같은 광경도 자주 펼쳐진다. 그럴 때면 도시 아래로 흐르는 두 갈래 강물에 비친 하늘의 붉은 빛이 온 도시로 퍼져나가는 장관이 펼쳐진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마지막 붉은 태양빛이 베오그라드의 구석구석을 비추어 조그만 집의 유리창까지 붉게 물들여버리고 만다. 이처럼 한 편의 낭만적인 서정시가 흐르는 도시의 이미지와 달리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는 전쟁의 아픈 상처가 도시 곳곳에 남아 있다. 아마 유럽에서 이 도시만큼 외세 침략과 내전으로 가슴 시린 상처를 많이 가진 곳도 드물다.






칼레메그단 요새에 오르면 발아래로 베오그라드를 품고 휘돌아가는 사바 강과 도나우 강이 한 눈에 들어온다.  

1740년대 튼튼한 돌로 세워진 칼레메그단 요새. 

베오그라드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크네즈 미하일로바 거리의 풍경  


세르비아는 동방정교회의 한 갈래인 세르비아 정교회가 국교이다.


우리에게 유고슬라비아의 수도로 잘 알려진 베오그라드는 사바 강과 도나우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어 예로부터 지정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거점 도시였다. 기원전 4세기 켈트족이 이곳에 작은 도시를 세운 뒤 로마인들이 ‘싱거두눔’이라 부르며 베오그라드를 정복하였다. 여기서부터 작은 강가의 도시는 다양한 민족과 국가에 간섭을 받으며 서로 물고 물리는 혈전을 치르게 되었다. 442년 동양에서 온 훈족이 로마인들이 세운 요새를 파괴한 후 사르마티아인·고트족에게 번갈아 점령당하다가 결국 동로마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게 넘어갔다. 중세시대 접어들어 오스트리아인들이 200여 년간 끝없이 이 땅을 넘봤고, 오스만 튀르크에게 점령당하기도 하였다. 20세기 들어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의 수도가 되고 급격한 발전을 이루다가 1993년 3월 내전을 거치며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도시는 수많은 전쟁을 치르면서 유구한 역사에 비해 볼거리가 거의 없이 다 파괴되었다. 그나마 사바 강과 도나우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높이 솟아 있는 베오그라드 성채가 모진 세월을 힘겹게 이겨내고 도시의 터줏대감처럼 버티고 서 있다. 베오그라드 성채라고 부르는 공간은 위 도시, 아래도시와 베오그라드 시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산책코스인 칼레메그단 공원, 이렇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세기 때 이곳이 전략적 요지임을 일찍이 간파한 로마군단은 ‘로만 카스트룸’이라는 성채를 쌓고, 플라비우스의 군단을 상주시켰다. 고트족과 훈족의 침입으로 파괴된 성채는 6세기 초에 재건되었다가 아바르족과 슬라브족에 의해 다시 파괴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성채가 베오그라드의 군사적 요지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던 시절, 칼레메그단은 적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전투 준비를 하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칼레메그단이라는 이름은 터키어에서 유래한 말로 ‘평원’이라는 뜻의 ‘칼레’와 전투라는 뜻의 ‘메그단’이 합쳐진 말이다. 터키 사람들은 이곳을 ‘내려다보는 언덕’이라는 뜻을 가진 피치르바이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다. 





낡고 남루한 전차가 도시 한 가운데를 가로지고 있는 베오그라드. 

터키의 영향으로 도시에는 이슬람 사원이 곳곳에 남아 있다.  

칼레메그단 요새의 망루를 개조한 카페.   


바위산 위에 세워진 성채에 서면 발아래로 아름다운 두 개의 강과 널따란 파노니아 평원이 한 눈에 펼쳐진다. 특히 해질녘에 이곳에 서면 강물 위로 부서지는 은빛의 역광이 너무나 아름답다. 원래 베오그라드의 뜻이 ‘하얀 도시’인데, 아마 늦은 오후 역광으로 도시를 보면 하얗게 반짝이는 모습이 너무 황홀해 이름을 이렇게 붙여진 것이 아닐까?


성채를 등지고 길 하나를 건너면 21세기 세르비아의 진면목을 감상할 수 있는 코네즈 미하일 거리가 나온다. 성채 주변으로 낡은 전차와 고색창연함이 있다면 이 거리에 들어서면 우리의 명동이 생각난다. 2차 세계대전과 내전으로 많이 파괴되었던 거리를 완벽하게 복원해 동유럽 특유의 멋스러움이 거리 곳곳에 묻어난다. 노천카페, 레스토랑, 명품 숍 등 세르비아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로 눈과 입이 즐거운 곳이다. 무엇보다 전쟁을 많이 치른 국민답지 않게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은 모두 미소를 품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노천카페에 앉아 지나치는 사람들 구경해도 그냥 행복해지는 곳이 바로 미하일 거리다. 서유럽에 비해 비교적 싼 물가 때문에 잠시 이 거리에서 쇼핑으로 잠시 호사스러움을 누려도 좋을 것이다. 아니면 해질녘 칼레메그단에서 사바 강과 도나우 강쪽으로 지는 석양을 감상해 보는 것도 베오그라드에서 즐길 수 있는 낭만이다.


낭만적인 석양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시간이 나면 도시 중심에 자리한 성 마르코 교회를 방문해 보는 것도 좋다. 1931년에서 1940년 사이에 새로 지어진 성 마르코 교회는 1835년부터 있던 타마즈단의 옛 교회 터에 새롭게 지은 것으로 세르비아 정교회의 중심 되는 곳이다.  건축가 페타르와 브란코 크르크티가 설계한 이 교회의 전체적인 양식은 세르비아-비잔틴 스타일을 따랐으나 일부 형태와 화려한 색깔의 건물 전면에서는 그라니카 수도원의 건축 양식과 비슷한 일면이 엿보인다. 내부에는 세르비아에서 가장 귀중한 보물이라는 18세기, 19세기의 성화가 보관되어 있다.


전쟁의 상처가 많이 아물었지만 아직도, 세르비아는 다소 경직된 문화가 자리하고 있다. 세르비아와 함께 같은 유고 연방에 속한 크로아티아가 발칸의 맹주로서 관광대국으로서 발돋움 하는 동안 잠시 움츠려 있었지만 2000년대 들어와 눈부신 발전으로 세계 여행자들의 눈과 마음을 매혹시키고 있다. 그 중심에는 세르비아의 심장과도 같은 베오그라드가 자리하고 있다.

베오그라드에서 가장 인상적인 성 마르코 세르비아 정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