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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홍수환이 챔피언이 된 도시

제주한라병원 2015. 6. 29. 09:19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홍수환이 챔피언이 된 도시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Durban)



더반에서 가장 자랑거리는 더반 비치이다. 해변도로를 따라 나란히 길게 늘어선 해변이 아주 인상적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위치한 더반은 우리에게 아주 생소한 도시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희미한 우리 기억 속에 아련하게 떠오르는 도시가 더반이다. 왜냐하면 1974년 권투 선수, 홍수환이 WBA 밴텀급 타이틀전에서 챔피언 아놀드 테일러를 이기고 한국 복싱사상 최초의 원정경기 타이틀을 기록한 역사의 현장이 바로 더반이다. 승리의 감격으로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는 말이 권투를 사랑하는 팬들의 추억 속에는 아직도 홍수환과 더반이 기억되고 있다. 조금은 낯선 도시, 더반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로 산업의 중심지이자 주 항구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아열대성기후와 끝없이 펼쳐진 인도양 그리고 훌륭한 기반시설덕분에 더반은 남아프리카의 대표적인 휴양지로 매년 2백만 이상의 방문객이 찾는 해변도시다. 그러나 더반은 휴양도시라는 이미지보다는 여러 민족이 서로 얽혀 있어 다양한 문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것이 아주 매력적인 곳이다. 거주 인구의 거의 절반이 아시아계이고, 그 중에서 인도인들이 제일 많다. 백인은 대략 20만 명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원주민 줄루족이 차지한다. 흑인들은 인종격리정책 ‘아파르트헤이트’가 한창이던 시절에 도시 중심부를 백인들에게 내 주고 변두리로 쫓겨나 가난하게 살고 있다. 






한가롭게 해변을 산책하고 있는 더반의 시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우샤카 마린월드. 

우샤카 마린월드는 바로 해변에 위치하고 있고, 해수욕과 관광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21세기 더반이 아시아인과 원주민 줄루족 그리고 백인이 서로 어울리며 살게 된 이유는 수백 년에 치러진 제국주의의 전쟁 때문이다. 1497년 12월 25일 성탄절 날, 포르투갈의 바스크 다 가마가 더반을 처음 발견하고, 포르투갈어로 성탄절이라는 의미의 ‘나탈’이라고 명명하였다. 그 후 1823년이 돼서야 영국 상인들이 처음으로 이주하기 시작해 백인문화를 정착시켰다. 이때 영국인들은 코끼리 상아를 취급하는 무역 중심지로 발전시키면서 더 많은 백인들이 돈을 벌기 위해 더반으로 몰려들면서 이곳의 원주민 줄루족은 점차 외곽으로 쫓겨나야 했다. 1835년 영국이 완전히 이 지역을 장악한 뒤 영국 출신의 ‘벤자민 더반’ 총독의 이름을 따서 ‘더반’을 공식이름으로 채택하면서 하나의 시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것은 또 하나의 전쟁을 암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영국이 더반에서 많은 부를 축적하자 1837년 최초의 네덜란드계 백인개척자들이 이 지역에 도착하여 더반에서 북서쪽으로 80km 떨어진 곳에 ‘피터마리츠버그’라는 도시를 세웠다. 1838년 12월 16일, 블러드 리버에서 줄루족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보어인들(네덜란드 이민자)은 처음으로 네덜란드계 공화국을 세우고 더반을 수도로 삼았다. 이에 불만을 품은 영국인들이 네덜란드인과 교전을 벌였으나 1842년 콘겔라 전투에서 대패한 후 한 달 동안 더반 요새 안에 피신을 해야 했다. 다행히도 그레이엄즈 타운에서 약 1000km를 용감하게 달려온 리처드 왕의 지원군들은 동료들을 구해내고 네덜란드인들을 격파하면서 영국인들이 다시 더반을 장악하게 되었다. 그 후 더반은 케이프공화국에 편입되면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1860년, 급속도로 확장된 사탕수수 농장의 일손이 부족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인들은 인도 식민지에서 수많은 계약직 노동자들을 데려왔다. 인도인의 수는 사탕수수 발전과 함께 빠르게 늘어났고, 그들 중 대부분은 계약이 끝난 뒤에도 더반을 떠나지 않고 정착을 했다. 인도에서 온 이민자 중에는 1893년에 이 땅에 도착한 이후 21년간 소수 인도인들의 권리를 위해 투쟁한 젊은 변호사 마하트마 간디의 가족도 있었다.



더반 시민들에게도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우샤카 마린월드 수족관 

음식 종류가 다양하지 않지만 길에서도 만나는 음식을 사 먹을 수 있는 더반 




더반 공항에 내려 인도양에서 불어오는 맑은 바람 몇 줌을 맞고 나면 한결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동안 케이프타운처럼 아프리카가 아닌 유럽의 어느 도시에 온 것처럼 세련된 건물과 깔끔하게 단장된 거리가 인상적이다. 더반은 남아공의 케이프타운이 그런 것처럼 백인들이 많이 사는 도시 중심에는 탁 트인 대로, 높은 건물, 아파트 단지들과 공원 등이 들어서 있어 현대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빅토리아 양식의 건물들은 더반이 현대도시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거의 다 사라졌다.


‘남아공에서 가장 활기가 넘치는 도시’라는 평을 받고 있는 더반답게 도시 곳곳에는 여행자들을 배려한 각종 편의시설과 볼거리들이 산재되어 있다. 이곳에서 며칠을 묵어갈 예정이라면 더반의 호텔은 해변 쪽에 몰려있고, 공원이나 오락을 즐길 수 있는 곳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거린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조용한 분위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도시의 북쪽이나 남쪽에 있는 해변 리조트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제일 먼저 이 도시의 자장거리인 우샤카 마린월드로 가면 이색적인 워터월드를 경험하게 된다. 우샤카 마린 월드는 더반 뿐 아니라 남아프리카 공화국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기 있는 관광명소로 이곳에는 담수와 해수, 자연적인 요소들과 1940년대에 난파된 배를 개조해놓은 모형이 갖추어진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수족관이 설치되어 있다. 그 뿐 아니라 아프리카 고유의 조각상들과 싱싱한 초록식물 그리고 더반 항의 모습들을 볼 수 있으며, 물 미끄럼이 있는 놀이공원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낼 수도 있다. 놀이공원은 온가족이 함께 재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으며 여러 가지 활동을 할 수 있는 다섯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져 있다. 꼬박 하루 정도 우샤카 마린 월드에서 시간을 보내도 전혀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더반에서 좀 더 이색적인 볼거리를 원한다면 더반 식물원에 가는 것도 좋다. 더반 식물원은 더반을 찾은 관광객들이 꼭 들러보아야 할 장소이다. 더반 시의 북서쪽, 베레아 언덕 경사면에 위치한 식물원의 20헥타르에 달하는 부지에는 희귀종 식물을 비롯한 셀 수 없이 다양한 종류의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1849년에 만들어진 식물원답게 아주 오래된 식물 종들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야자나무가 위풍당당하게 줄지어선 대로와 열대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환상적인 색깔의 난초 하우스가 아름답다. 허브 정원과 시각장애인을 위해 특별히 조성해놓은 정원도 더반 식물원이 자랑하는 명물들이다. 이 식물원에 서식하는 새의 종류가 50여종이 넘기 때문에 어딜 가나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 이외에 걸어 다니면서 도시구경을 하고 싶다면 ‘골든 마일’이라는 해변대로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가장 활발한 부분은 마린 퍼레이드와 웨스트 스트리트의 교차점이다. 나란히 뻗어있는 동서방향의 일방통행로 웨스트 스트리트와 스미스 스트리트는 쇼핑과 비즈니스의 중심지이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도시의 서쪽부분으로 연결되어 인도인들의 비즈니스 지구인 그레이 지구와 빅토리아 스트리트가 나온다.

오래된 배를 개조하여 만든 레스토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