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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클레스의 탄생, 神들의 구상과 연결돼

제주한라병원 2013. 9. 30. 10:08

- 헤라클레스 이야기Ⅰ -
헤라클레스의 탄생, 神들의 구상과 연결돼

 

<헤라의 질투와 분노>에서 제우스가 정숙하기로 소문난 알크메네를 속이고 그녀의 남편인 암피트리온의 모습으로 변신해서 동침에 성공한 일, 그리고 이를 전혀 모르던 암피트리온도 그날 밤 그녀와 동침한 일, 그리하여 태어난 쌍둥이 자식이 헤라클레스(제우스의 아들)와 이피클레스(암피트리온의 아들)였다는 이야기를 살짝만 들여다봤는데 헤라클레스와 연관된 이야기들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페르세우스의 손자인 암피트리온은 준수하게 성장하여 많은 처녀들이 넘보는 외모를 지닌 청년이 되었다. 하지만 그가 연정을 품게 여인은 바로 자기 여동생 아낙소의 딸인 알크메네였다. 조카에게 반한 것이다. 어떻게 손아래 동생의 딸과 나이로 보아서 연애가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지만, 신화니까 하고 이해해야 될 듯하다.


어렵사리 그녀의 아버지 엘렉트리온으로부터 조건부로 결혼허락을 받아내는데는 성공했지만, 그녀는 자기 형제들의 죽음에 대한 복수가 이뤄져야 암피트리온과 진정한 사랑을 나눌 수 있다고 뒤로 물러선다. 우여곡절 끝에 암피트리온은 전쟁에서 그녀의 복수를 완수하고 그녀와의 가슴 설레는 사랑을 꿈꾸며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 직전에 제우스가 ‘알크메네의 사랑 가로채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살펴본 상황은 인간의 눈에서 본 것이고, 신들에게는 좀 다른 이유로 의도된 상황이 있었다. 당시 제우스는 우주의 권력싸움에서 기간테스라고 불리우는 족속과의 한판 전쟁을 앞두고 있었다. 기간테스는 ‘가이아의 자식’이라는 뜻으로 ‘기가스’의 복수형이고, 영어로는 자이언츠(Giants)다. 거인족인 이들은 크로노스가 자른 우라노스의 남근에서 떨어져 나온 피에서 기원한 24명의 족속으로 상반신은 인간의 모습이고, 하반신은 두 마리의 뱀의 모습을 한 흉측한 괴물이었다. 앞으로 있을 기간테스와의 싸움(기간토마키아)에서 신들을 구할 용감한 인간을 낳게 할 계획을 제우스는 이미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영웅을 낳을 수 있는 가장 현명하고 아름다운 여성으로서 알크메네를 점찍어 둔 것이다. 그녀는 인간으로서는 제우스의 마지막 연인이 된다.


한편 임피트리온이 막상 전쟁에 나서자 알크메네는 불안하고 초조하기 그지없었다. 그녀도 이미 마음 깊이 임피트리온을 사랑하고 있었던지라, 자주 바닷가에 나가 그가 돌아오면 그의 넓고 강한 가슴에 안겨 사랑을 속삭일 생각에 빠져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상상에 빠지기도 하고, 때로는 쓸쓸한 우수에 젖기도 했다. 이런 모습은 제우스의 마음을 더욱 설레게 했다. 하지만 제우스는 그런 그녀의 속마음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어느 누구도, 설사 제우스라도 그녀의 마음을 열지 못할 것임을 간파하고 암피트리온으로 변신하여 그녀 앞에 나타난다.


남편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던 그녀는 돌아온 암피트리온(변신한 제우스)을 보고 너무 반갑게 맞이하였고 둘은 달콤한 밤을 보내게 된다. 달콤했던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을 때, 제우스는 이미 떠난 후였고, 그녀는 너무나 당연히 지난 밤의 주인공이 암피트리온인 줄로만 알고 자리에서 일어나 곱게 치장하고 맛난 음식을 준비한다.


전쟁에서 이기고 만면에 웃음을 띠고 돌아온 진짜 임피트리온이 알크메네 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모습을 보고도 놀라는 기색도 없이 그저 빙긋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어젯밤에 뜨거운 사랑을 나눈 것에 대한 약간의 쑥스러움만 비칠 뿐, 이미 얼마 전에 돌아온 사람처럼 대하는 것은 그녀의 입장에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이상하긴 했지만 그녀와의 사랑을 애타게 기다려왔던 암피트리온은 서둘러 그녀와 사랑의 밤을 보낸다. 그렇게 폭풍같은 사랑을 나눈 후에서야 어제의 일을 이상히 여긴 그는 테바이의 테이레시아스라는 예언자를 찾아간다. 늙은 예언자는 “제우스가 자네의 모습으로 변신해 알크메네와 하룻밤을 보낸 것이네. 제우스가 훌륭한 영웅을 낳기 위해 자네 아내를 이용한거야”라며 사실을 알려준다.


그제서야 암피트리온은 의문을 풀었지만, 그토록 사랑하고 아끼던 알크메네가 자신이 아닌 다른 이에게 먼저 몸을 허락했다니 억울하고 분통하기 그지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복잡한 생각이 교차했다. 최고의 신인 제우스를 상대로 싸울 수도 없는 일이다. 또 아내는 자신인 줄로만 알고 제우스와 밤을 보낸 것이니 그녀에게 죄를 물을 수도 없는 일이다. 그녀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그녀와 헤어져야 할지, 그대로 덮어두고 살아가야 할지 괴롭기만 했다. 고민 끝에 그는 이 사실을 평생 가슴에 묻은 채 그녀와의 결혼생활을 지속하기로 결정한다. 


결국 알크메네를 임신시키기 위한 시간을 벌 요량으로 제우스가 의도한 전쟁에 암피트리온이 말려든 셈이다. 제우스는 암피트리온이 전쟁에 나간 틈을 타서 알크메네와 관계를 맺고 훗날 헤라클레스가 되는 자신의 아들을 잉태시킬 준비를 해놓았던 것이다. 헤라클레스가 태어나기까지는 이런 복잡한 우주의 움직임, 신들의 구상이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