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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머프의 집을 닮은 버섯바위의 도시

제주한라병원 2012. 7. 6. 14:24

2011년/9월

터키 ‘카파도키아’

스머프의 집을 닮은 버섯바위의 도시

 

열기구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신의 주재에 한 번 더 놀라게 된다.

 

60억의 인구가 사는 지구별은 참 재미있는 행성이다. 다양한 언어와 민족 그리고 종교가 서로 충돌하면서 만들어낸 상이한 문화는 끝없이 사람들의 발길을 유혹한다. 신의 섬세한 손길에서 만들어진 대자연의 신비함은 인간이 만든 문화․문명과 달리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히말라야, 세계에서 가장 큰 빅토리아 폭포, 세계에서 가장 큰 숲, 아마존 등 대자연의 아름다움은 지구별이 가진 최고의 신의 선물이다. 그 중에서 터키 아나톨리아 고원에 자리한 카파도키아는 버섯 모양의 독특한 기암괴석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하얀 모자에 하얀 바지를 걸친 스머프들이 늘 가가멜에 쫓기던 흥미진진한 만화 시리즈 ‘개구쟁이 스머프’. 그 만화에서 주인공 스머프들이 “랄랄라 랄랄라 랄라랄라라” 노래하며 들어갔던 버섯 같은 집이 생생하다. 그런데 그 집을 꼭 닮은 곳이 있으니, 바로 터키의 카파도키아다. 하늘을 향해 뾰족하게 솟아오른 기기묘묘한 바위기둥들에 자그마한 창문이 나 있는 모양이 꼭 스머프들의 집인 듯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사실은 작가가 바로 이 카파도키아에서 ‘개구쟁이 스머프’의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또한 어른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에 나오는 어느 행성의 한 마을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아이에서 어른까지 카파도키아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만큼 버섯의 도시, 카파도키아는 지구상에 현실적으로 존재할 것 같지 않은 기괴한 지형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이스탄불이 인간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곳이라면 카파도키아는 자연의 미학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실크로드 중간 도시이자 수도인 앙카라에서 270km 남짓 떨어진 카파도키아는 터키어로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땅’이라는 뜻의 도시다. 신의 손놀림으로 만들어진 자연의 소나타가 너무나 아름다워 유네스코에서 1985년에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으로 지정했고, 1986년에는 터키의 국립역사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무엇보다 이곳의 진면목을 감상하기엔 열기구가 안성맞춤이다. 해 뜨기 전 어슴푸레한 새벽을 가르고 열기구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버섯들이 새벽이슬을 맞고 땅위에 솟아오른 듯한 모습에 감탄사가 절로 난다. 산마루에 붉은 태양이 걸리기 시작하면 밤새 어둠속에서 품었던 자연의 미를 한껏 뽐낸다. 열기구가 바람에 실려 높이 솟아오르면 카파도키아가 숨겨놓은 속살을 하나 둘씩 내주며 진정한 ‘신의 미학’이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알려준다. 지구별의 아주 독특한 풍경이 많다고 하지만 카파도키아만큼 유별나고 독특한 곳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기 힘들 정도로 아름답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황홀함 그 자체다.

신에게 좋은 선물을 받은 카파도키아는 약 3백만 년 전 화산폭발과 대규모 지진활동 그리고 오랜 풍화작용 등을 거쳐 하늘을 향해 뾰족하게 솟아 오른 기기묘묘한 바위 덩어리들은 마치 지구별이 아닌 다른 행성을 보는 듯 신비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데린구유, 네브쉐히르, 위르굽, 괴레메, 우치사르 등 남한의 4분의 1 크기의 땅에 우후죽순처럼 솟아 오른 버섯바위의 도시 카파도키아는 지구별 속에서 아주 색다른 모습을 지녔다. 겉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이 지역의 역사는 지구표면에 분화구가 가득하던 지질 제 3기, 즉 약 5천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 이후로 엄청난 양의 용암이 분출되어 나왔고 화산재와 용암이 수백 미터씩 거듭 쌓여 독특한 원뿔모양의 바위들이 생겨났다. 이렇게 형성된 원뿔 바위들에 사람들이 동굴을 파고 그 속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이곳은 초기 기독교인들의 삶의 안식처이자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역사의 장이 되었다.

 

▲ 자연의 미학으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보기 드문 자연의 집을 보여주는 카파도키아.

사실 카파도키아는 자연의 아름다움 이외에도 인간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현장이기도 하다. 청동기시대와 기원전 2000년 전 소아시아 시리아 북부를 무대로 활약했던 인도 유럽계의 민족인 히타이트 족이 이곳을 교역의 중심지로 삼았다. 기원전 1250년부터는 프리지아 인들의 지배를 받았고, 기원전 6세기 중엽에는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아 조로아스터교가 널리 퍼져 있었다고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서기 17년, 로마의 속주가 된 카파도키아에는 무역 로와 군사로가 놓였고 도시의 모습이 갖춰지기 시작했으며 거주 인구도 점차 늘어나게 되었다. 그 후 소아시아에 그리스도교가 퍼지면서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의 탄압을 피해 이곳으로 몰려와 공동체를 형성했다. 그때부터 카파도키아에서는 다양한 문명과 종교가 혼합되면서 서로에게 강한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했다. 또한 동로마제국시절, 종교적인 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기 위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면서 카파도키아는 초기 기독교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곳이다. 기암괴석에 만들어진 동굴 도시는 8세기 전후 이슬람 세력에 의해 한껏 움츠러든 기독교인들에게 피난처이자, 자신들 고유의 문화와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은신처가 되었다. 덕분에 기독교인들은 이곳에서 공동체 도시를 만들 수 있었다.


실제로 카파도키아의 관문격인 괴뢰메에서는 바위 동굴 속에 지어진 교회와 수도원을 볼 수 있다. 9세기경 이슬람교도의 탄압이 심해지자 기독교인들이 바위를 파서 동굴을 만들고 그 안에 교회를 만들었던 것이다. 샌달 교회, 다크 교회, 성 바르바라 교회 등을 포함, 현재 이곳에는 400~500개의 동굴 사원이 있다고 한다. 이들 교회 벽면은,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 등을 주제로 한 성화들이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마치 또 다른 행성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카파도키아. 

카파도키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열기구를 타고 하늘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는 일이다.  


괴뢰메가 동굴 위에 지어진 건축으로 유명하다면, 데린구유는 거대한 지하 도시로 유명하다. 데린구유는 성인 몇 명이 겨우 다닐 수 있을 만큼 좁은 길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데, 현재까지 동굴 방, 예배당, 그리고 수도원으로 구성된 지하 8개 층이 발굴되었다. 데린구유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훌륭한 환기 시스템이다. 수직 깊이 총 85m에 달하는 지하 도시에 사람이 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갱도에 갖춰진 52개의 환기 시스템 덕분이다. 그 기술은 현대인의 눈에도 그저 놀랍게만 보인다.


데린구유는 맨 위 3개 층만이 거주지로 사용되었고 낮은 층들은 위급 상황에 사용되거나 예배당, 혹은 저장 공간으로 쓰였다고 한다. 집집마다 부엌, 화장실, 식당, 욕실, 무기 저장고, 약 3만 리터의 물을 저장할 수 있는 물탱크, 그리고 마구간이 갖추어져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데린구유에 있는 지하 수도원은 정신병원으로도 사용되었는데, 내부에는 공동 연구소, 성수반, 진료소, 정신병자들이 치료를 받던 방 등이 있다. 또한 지하 도시의 중앙에는 현재 사원으로 사용되고 있는 현무암으로 지어진 예배당이 있다. 16~17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예배당에는 예수, 마리아, 천사, 그리고 성자들의 그림이 보관되어 있다.


카피도키아는 신의 손길과 인간의 손길이 함께 만들어 놓은 거대한 예술 작품이다. 신이 버섯 모양의 큰 틀을 주재하고, 그 위에 혹은 그 아래에 인간이 굴을 파서 집과 교회를 짓고 들어가 살았다. 이제는 그곳에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가 들어서고 있다. 과거 기독교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굴을 파서 만든 숙소가 말이다. 스머프들의 집에서 하룻밤 묵어가는 것, 그것은 카파도키아에서만 누릴 수 있는 행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