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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과 바람도 신의 허락이 있어야 머물 수 있다

제주한라병원 2012. 7. 6. 14:06

2011년/6월

Mt. 키나발루

구름과 바람도 신의 허락이 있어야 머물 수 있다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코타키나발루. 이곳에 서면 발아래로 구름과 안개 그리고 맑은 바람 등 자연의 미학이 펼쳐진다.

 

적도의 작렬한 태양 아래에 위치한 코타키나발루는 보루네오 섬 북단에 있는 말레이시아 영토로 오염되지 않은 자연의 신비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에메랄드빛의 산호바다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키나발루(4095m) 산 그리고 수천여 종의 식물이 자라는 밀림 지역으로 유명한 코타키나발루는 고립된 열대 섬이 빚어낸 대자연의 힘이 느껴지는 땅이다.

최근 들어 이곳은 밀림과 바다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여행지로 급부상하면서 세계 여행자들의 관심과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특히 ‘죽은 자들의 안식처’로 여겨진 키나발루는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해마다 수천여 명이 화강암으로 이뤄진 키나발루 정상에 오른다. 일 년 내내 만년설이 있는 히말라야는 전문 산악인이 아니면 정상까지 일반인들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지만, 키나발루는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에게나 자신의 민얼굴을 보여준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산을 허락하는 것은 아니다. 키나발루의 정상인 로우봉(4095m), 존스봉(4090m), 남봉(3933m) 등은 기상이 허락하지 않으면 그 어떤 사람도 아름다운 키나발루의 진면목을 감상할 수 없다. 우리의 백두대간처럼 산에 오르면 자욱한 운무가 멋진 춤사위를 펼치듯 이곳의 변화무쌍한 날씨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다. 맑은 하늘이 물 한 모금 마시고 나면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고,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짙은 안개는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 몇 줌에 금방 갠다. 또한 원시적인 밀림 숲을 통과해야 신의 주제로 빚어진 아름다운 고봉들을 감상할 수 있다.

 

 

 코타키나발루 정상에서 맞은 일출은 평생 잊히지 않는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코타키나발루의 일몰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키나발루 국립공원은 다양한 식물과 850여 종의 나비 그리고 오랑우탄의 세계최대 서식지로 알려져 있다. 산행을 시작하는 2000m에서부터 3700m까지 1000여 종의 식물들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저지대는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처럼 빼곡히 밀림지대가 형성돼 있고, 고도를 조금씩 높이기 시작하면 참나무, 무화과나무, 철쭉나무 등이 중간지대를 형성하고 3500m가 넘으면 나무는 없고 침엽수처럼 뾰족한 낮은 풀들이 화강암 틈새에서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작은 벌레와 곤충을 잡아먹는 식충식물인 네펜데스는 산행 중에 또 다른 볼거리 중에 하나다. 이처럼 키나발루 산행은 자연의 보고를 지나는 신성한 의식과 800m에 이르는 거대한 화강암 산길을 오직 하늘이 허락해야만 무사히 정상에 발을 디딜 수 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이곳에 삶의 뿌리를 내렸던 토착민인 카다잔족은 키나발루를 ‘아키나발루(Akinabalu)-죽은 자를 숭배하는 장소’라 부르며 아주 신성한 산으로 여겨왔다. 카다잔족은 사람이 생을 마치면 그들의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지 않고, 키나발루 산꼭대기에서 또 다른 삶을 영위한다고 생각했다. 죽은 자들의 영원한 안식처로 여겨진 키나발루 정상은 언제나 순수한 영혼들이 늘 머물러 있고, 보루네오 섬의 말간 정신이 오롯이 살아 숨 쉰다.  


 

말레이시아에서 최초로 세계자연유산으로 선정된 키나발루 국립공원의 산행은 아주 흥미롭다. 우선 해발 4095m의 키나발루 정상을 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1박 2일의 시간이 필요하고, 기상이 좋지 않으면 정부에서 입산을 허가하지 않는다. 죽은 자의 안식처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시내에서 자동차로 2시간 남짓 달리면 팀포혼 게이트(1866m)와 메실라우 게이트(2000m) 등 두 개의 입산 루트를 만나게 된다. 우리의 북한산처럼 수백 개의 입산 루트가 있는 것과 달리 키나발루는 두개의 산길 이외에는 그 어떠한 길도 허락하지 않는다. 대부분 등산객들은 팀포혼 게이트를 통해 올라갔다가 다시 그 길로 내려오지만 키나발루 밀림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메실라우 케이트로 올라간 뒤 내려올 때 팀포혼 게이트를 택하는 것이 좋다. 어떤 코스를 택하든 7시간 산행 후 해발 3273m에 위치한 라반라타 산장에서 모두 만나게 된다. 엄청난 높이에 위치한 산장이지만 침대와 샤워 시설 그리고 식당까지 갖춘 수준급의 호텔이다. 긴 산행으로 지친 몸이지만 창문으로 들어오는 붉은 석양과 까만 밤하늘의 은하수는 키나발루 정상의 도전에 용기를 북돋아 주기에 충분하다.


다음날 새벽 2시 30분, 칠흑같이 어두운 새벽을 가르며 정상으로 향한 발걸음은 아주 신비함과 신성함을 동시에 안겨준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나무계단과 화강암 골짜기를 오르다보면 어느새 여명이 발밑으로 서서히 다가선다. 3시간의 새벽산행 끝에 도착한 로우봉 정상에 서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아름다운 장관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정상에서 두 눈을 감고 양팔을 벌려 키나발루의 모든 정기를 가슴으로 안는 순간, 맑고 차가운 공기는 폐부와 머릿속까지 깊숙이 파고들어 상쾌함을 전해준다. 푸른 여명이 떠난 자리에는 붉은 태양이 나타나 깨끗한 햇살을 존슨봉과 남봉에 비추고, 각각 봉우리 아래 밤새 머물렀던 하얀 구름들은 새로운 날을 맞아 활짝 기지개를 켠다. 날이 점점 밝아 올수록 눈에 나타나는 거대한 화강암지대가 모든 사람들의 눈을 자극한다. 어두울 때 몰랐던 길은 햇빛이 조금씩 뿌려지자 검고 흰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드러낸다. 점점 더 해가 달아오를수록 화강암은 어둠 속에 숨겨 놓았던 독특한 비경을 하나 둘 씩 보여준다. 그런데 화강암치고는 검은빛이 많아 정말 ‘죽은 자들의 안식처’라는 별칭이 딱 맞을 정도로 키나발루 정상 풍경은 이색적인 모습이다. 마치 혹성탈출에 등장하는 외계의 별처럼 느껴지게 한다.


그러나 키나발루는 높은 고도와 시시각각 변화되는 날씨로 인해 그리 오랫동안 이방인들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는다. 정상에서 일출을 보고, 사진 몇 장 찍고 나면 바람의 여신이 하산을 재촉한다. 어둠 속에서 보지 못했던 키나발루의 아름다운 모습은 내려오면서 감상한다. 아찔할 만큼 가파른 화강암지대를 어떻게 올라 왔을까? 입에서 연신 감탄사를 지르면서 아름다운 이곳의 풍경을 취해 자꾸 자꾸 뒤를 되돌아보게 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구름 한 점과 바람 한 줌도 신의 허락이 있어야만 잠시 머무를 수 있는 키나발루는 지상의 또 다른 낙원임은 틀림없다.

 

 

옥빛 바다에서 스노우 클링을 즐기고 있는 여행자들. 

한글이 새겨진 앞치마를 두르고 열심히 꼬치를 준비하고 있는 현지 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