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2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세고비아
▲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세고비아 구시가지 전경.
마드리드에서 기차를 타고 북서쪽으로 2시간 남짓 달려가면 맑은 공기와 산뜻한 이미지를 가진 백설공주의 도시 세고비아에 도착한다. 열차라기보다 우리의 전철과 비슷한 기차를 타고 종점인 세고비아로 가다 보면 알프스와 유사한 풍경들이 투명한 유리창 위에 그려진다. 높은 산악 지대에 위치한 세고비아는 짙은 안개가 많이 끼고, 겨울이면 험준한 산맥의 최고봉인 페날라라 산(해발 2,469미터) 정상에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신비한 동화의 나라라는 인상을 준다. 어디에선가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가 불쑥 나타나 마구 뛰어놀 것 같은 파릇파릇한 녹색 잔디, 눈 덮인 산, 이들이 조화롭게 빚어내는 풍경은 마치 스위스에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이다. 이렇듯 세고비아는 스페인의 여느 도시와는 사뭇 다른 이미지를 선사한다.
기차역을 손살 같이 빠져나와 구시가지로 발길을 옮기면 세고비아의 고풍스러움과 우아함이 경이롭게 다가온다. 세고비아 여행은 거대한 로마 수로교가 있는 아소게호 광장에서 시작된다. 역에서 10분가량 걸어가면 1세기 전·후반에 지어졌다는 거대한 로마 수로교가 웅장하고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수로교가 있는 광장 앞은 여행 정보를 얻으려는 관광객들과 산책을 나온 시민들로 항상 북적거린다. 높이 30미터, 길이 813미터, 그리고 수로를 떠받치고 있는 2층 구조로 된 128개의 돌 아치를 보는 순간 절로 감탄사가 나오고 자신의 눈을 의심하게 된다. 2천 년 전에 세워진 수로교는 도시 북쪽에 있는 후앙프리아 산 기슭에서 흐르는 물을 시내까지 끌고 왔다. 모든 동식물에게 생명의 젖줄을 제공한 로마인들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놀라운 것은 이 거대한 수로교를 만든 당시 로마인들의 건축 기술이다. 거기다가 지금까지 전혀 파괴되지 않고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 또한 경이롭다. 네모나게 다듬은 돌을 시멘트나 회반죽 같은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오직 역학 계산으로만 쌓은 아치형 돌기둥의 정교함과 완벽한 균형, 그리고 견고함은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는다. 이 수로교는 건축과 토목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교과서 같은 곳이고, 일반인들에게는 2천 년 전 로마인들의 지혜를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그야말로 2천 년 전의 현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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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수로 중에서 가장 완벽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세고비아 수로. |
무데하르 양식으로 지어진 백설공주의 성. |
환상적인 수로교를 가슴에 안고 다시 발걸음을 옮겨 세고비아가 자랑하는 백설공주의 성으로 가 보자. 노란 오렌지가 풍성하게 돋아나 있고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인해 반짝반짝 윤이 나는 마요르 광장을 지나 비좁은 골목길을 빠져나가면 파란 하늘 아래 뾰족한 지붕을 머리에 이고 있는 고성 하나가 눈앞을 가로막는다. 성을 향해 조금씩 다가갈수록 발 아래로 불어오는 쌀쌀한 바람이 정신을 맑게 해 주고 백설공주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고 흥분된다. '야, 이곳이 바로 그 성이구나!' 성 입구에 도착하면 하얀 옷을 입고 피아노에 앉아 그림 형제의 책을 손에 들고 있는 백설공주의 동상이 낯선 이방인들과 가볍게 눈을 맞추며 인사를 건넨다.
에레스마 강과 클라모레스 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세워진 알카사바는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이 성은 디즈니가 〈백설공주〉를 만들 때 배경으로 삼은 곳이고,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후견인이면서 카스티야 왕국의 여왕이었던 이사벨 라 카톨리카의 즉위식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또한 스페인이 이슬람 왕국을 완전히 몰아내고 전성기를 누리고 있을 때 펠리페 2세가 오스트리아 출신 아나 데아우스트리아와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만큼 이 성은 스페인에서 남다른 의미를 지닌 유명한 장소이다.
성 안은 밖에서 볼 때보다 한층 더 아름답고 황홀하다. 태양 광선이 눈부시게 쏟아지면 화려하고 섬세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천장과 벽에서 춤을 추고, 단아하고 우아한 문양의 장식품과 고가구들이 방 안 구석구석을 차지하고 있어 성을 톡톡히 빛내고 있다. 특히 방과 복도에 꾸며져 있는 아라베스크식 창틀 너머로 세고비아의 도시 풍광이 시원스럽게 펼쳐져 보는 이를 황홀하게 만든다.
한편으로 내부 곳곳에 갑옷, 투구 등 전쟁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어 과거에 험난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처절하게 싸웠던 곳임을 짐작케 한다. 기록에 의하면 이 알카사바는 높은 언덕 위에 세워져 있어 파수를 보는 요새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군사적인 목적으로 지어졌다가 14세기 중엽에 들어서서 아름다운 성으로 본격적으로 지어졌고 그 후 증·개축을 통해 완전한 백설공주의 성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전쟁을 많이 겪으면서 조금씩 훼손되고 설상가상으로 화재까지 일어나 초기의 모습은 거의 사라졌다. 1882년부터 재건축이 시작되어 1940년대에 이르러 아름다운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한다. 화재 이전의 무데하르 양식으로 완벽하게 재건된 것이다.
▲ 알카사바 입구에 세워진 백설공주 동상.
이 성의 백미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고 가파른 계단을 통과하여 옥상에 올라서서 발 아래로 보이는 아름다운 정원과 언덕 아래로 펼쳐져 있는 카스티야스레온 지방의 목가적인 풍경을 감상하는 것이다. 옥상으로 오르는 길은 다리가 맥이 풀릴 정도로 여간 힘들지 않고 숨은 턱까지 차 오른다. 또한 계곡 밑에서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몸은 날아갈 것 같다. 그러나 마음만은 어느 때보다 상쾌하고 즐겁다. 먼저 올라온 사람들은 시원한 그늘에 앉아 있거나 팔베개를 하고 누워 한가로이 낮잠을 즐기기도 하고, 웃옷을 벗은 채 일광욕을 하는 등 저마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세고비아가 뿜어내는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있다.
다리품을 팔며 열심히 성의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면 한 귀퉁이에서 금방이라도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가 나올 것 같다.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옮길 때마다 공주와 난쟁이들의 뒷모습이 눈에 밟혀 금새 좇아가면 그들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이렇게 동화의 도시 세고비아를 찾아가면 사람들은 잠시 동안이지만 순수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잊었던 추억을 떠올리며 감상에 젖는다.
구시가지 중심이 되는 세고비아 성당 앞은 언제나 많은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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