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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내려 준 최고의 선물 '와인' ......프랑스 보르도

제주한라병원 2012. 7. 6. 13:13

2010년/10월

신이 내려 준 최고의 선물 '와인' ......프랑스 보르도

 

파리 몽파르나스 역에서 고속열차 TGV를 타고 3시간 남짓 남서부로 내려가면 와인의 도시 보르도에 도착한다. 일생에 와인을 한번이라도 마셔 본 사람들에게 보르도는 그 이름 자체만으로도 흥분과 특유의 감성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메독(Medoc), 그라브(Graves), 생테밀리옹(Saint-Emilion), 포므롤(Pomerol), 소테른-바르삭(Sauternes-Barsac)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 최고의 와인 상품이 바로 보르도 산이다. 또한 보르도는 와인으로 유명한 도시이지만 프랑스 역사에서 프랑스 혁명이 시작된 곳이고 계몽사상의 대표자이자 《페르시아인의 편지》의 저자 몽테스키외의 고향이기도 하다.


1인당 연간 60리터 이상을 마시는 나라답게 프랑스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포도 산지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포도의 품종 또한 아주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세계 최고의 포도 산지로 손꼽히는 곳이 바로 보르도이다. 와인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조차도 프랑스 와인하면 보르도를 떠 올릴 만큼 유명세는 과히 세계적이다. 1950년 보르도 지방의 포도밭 주인들이 모여 와인의 품질과 다양성에 대한 정보를 나누기 위해 시작된 ‘보르도 와인 축제’ 때 이곳을 방문하게 되면 세계 전역에서 몰려 든 와인 애호가와 관광객들로 도시는 북새통을 이룬다. 독일 뮌헨의 맥주 축제인 ‘옥토버 페스트’가 있다면 해마다 6월 말에 열리는 보르도 와인축제는 와인의 깊은 맛을 풍미하기 위해 수백 만 명이 프랑스의 작은 도시를 찾는다. 그럼 언제부터 보르도 와인이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일까? 역사적인 기록으로 볼 때 보르도 와인은 2세기경부터 제조되었고, 유럽에 일약 대표적인 브랜드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1152년 보르도 지역의 공작 딸 알리에노와 영국 황태자의 결혼을 계기로 보르도 와인이 영국에 수출되면서 체계적인 품종 관리와 생산이 이뤄지면서다. 그 후 와인이 유리병에 담겨 유럽과 미국까지 수출되면서 보르도 와인은 일약 세계적인 와인으로 성장하였고, 1999년 유네스코에 의해 생테밀리옹 마을이 포도재배에 관련한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을 만큼 보르도 와인산지는 술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럼 2000년의 와인 역사를 가진 보르도에서 가장 깊은 맛을 내는 와인 산지는 어디일까? 이곳의 최고급 와인은 가론 강과 도르도뉴 강이 합류해 대서양으로 흘러들어가는 지롱드 강 지역에서 생산되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메독, 그라브, 생테밀리옹, 소테른 등 11만 헥타르 농지에서 연간 5억 리터에 달하는 60여 종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세계 1% 안에 드는 최고급 와인은 메독 지역에서 생산된다. 와인의 깊은 맛을 결정하는 조건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땅·기후·일조량·품종 등 다양한 조건들이 오케스트라의 좋은 하모니처럼 서로 잘 어울려야 사람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출 수 있다. 우리도 알고 있는 것이지만 비옥한 토양보다는 자갈이나 돌이 많은 땅에서 좋은 포도가 생산된다. 메독 산지는 이처럼 자갈밭으로 뒤덮여 있고 바다와 강에서 적당한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어와 포도가 잘 자랄 수 있는 기온이 유지되고, 풍부한 일조량이 있어 포도의 단맛을 증가시켜 세계 최고의 와인을 생산하게 되었다. 물론 보르도 와인은 각기 다른 포도원의 토양에 맞게 2~3 종류의 포도를 재배한 뒤 그 포도를 적절한 비율로 블렌딩하여 최고의 맛을 만들어낸다. 단일 품종보다는 맛이 서로 다른 몇 개의 품종을 섞어 보르도만이 가진 독특한 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와인은 다른 지역의 와인보다 맛이 조금 무겁고 거칠다. 최근에 생산된 보르도 와인 중에서 1982, 1988, 1989, 1990, 1996, 1998, 2000, 2005, 2006년도의 빈티지가 비교적 좋은 품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와인 빛으로 물든 보르도를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지역에 있는 다양한 사토를 방문하기 위해서다. 와인의 도시답게 기차역에 내리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샤토 투어를 알리는 다양한 광고판이다. 역내에 위치한 정보센터에 가서, 일명 '샤토 투어'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아주 손쉽게 보드로의 유명 포도 산지를 방문할 수 있다. 샤토는 프랑스에서 '성(城)'을 뜻하지만 보르도에서는 포도를 재배하고 그 포도를 이용해 와인을 만드는 '양조장이 있는 곳'을 의미한다. 보르도 역이나 구시가지에 있는 여행정보센터에서 신청을 하면 되는데 여름철 성수기에는 며칠 전에 신청해야 하고, 11월 이후에는 매주 수요일 한 차례밖에 투어를 하지 않기 때문에 예약은 필수이다. 투어 코스는 다양하다. 그 중 메독, 생떼밀리옹, 이 두 지역이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어 한국 사람이나 일본 사람에게 가장 인기 있는 코스라고 한다.


샤토 투어는 두 가지로 크게 나눠진다. 하나는 아주 간단하게 포도 산지를 방문해 포도밭과 양조장 등을 둘러보는 코스이고 또 하나는 하룻밤 샤토에 머물면서 와인의 세계에 흠뻑 빠지는 코스이다. 와인 마니아가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나절 코스에 참여해 좋은 와인을 구별하는 아주 기초적인 상식을 배운다. 와인 잔을 들고 그 속에 담긴 와인의 빛깔과 향을 맡기도 하고, 쏟아지지 않게 흔들어 침전물이 유리잔에 얼마나 묻어나는지, 알코올의 잔상이 어떤지 알아내고 조금씩 입 안에 넣어 혀로 이리저리 돌리며 와인이 가진 모든 맛과 향을 동시에 음미하는 법을 배우기도 한다.


사실 한 번의 투어를 통해 와인의 참 맛을 구별하거나 좋은 와인을 고르는 법을 모두 배울 수는 없다. 그래서 좋은 호텔이나 고급 레스토랑에 가면 소믈리에라는 와인 전문가가 일반인들에게 맛있는 음식과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해 주기도 한다. 이처럼 좋은 와인을 선별하기 위해서는 여러 종류의 와인을 많이 마셔 보면서 머리속에 기억해야 한다. 포도의 품종·생산지·생산연도를 비롯해 와인의 색깔·맛·향기 등 아주 복합적인 요소를 코와 혀를 통해 감지해야 한다. 물론 좋은 와인을 선별했다고 해서 맛이 좋은 것은 아니다. 신맛이나 단맛 아니면 담백한 맛 등 사람마다 좋아하는 종류가 다르기 때문에 아주 까다롭다.


일단 와인을 따면 잔에 조금 따라 불빛이나 하얀 색 배경을 통해 와인의 색깔이 어떤지, 혼탁한지 등을 확인하고 그 다음 코밑으로 가져가 혀로 맛볼 수 없는 향기를 느껴야 한다. 코로 맛볼 수 있는 와인의 맛은 혀로 느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다고 한다. 그래서 와인을 마시기 전에 반드시 향기를 맡아야 하는 것이다. 색깔과 향기를 느꼈다면 다음은 입 안에 한 모금 물고 혀를 천천히 돌리며 와인의 깊고 그윽한 맛을 최대한 느껴야 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반복하고 머리 속에 자신이 마신 와인 맛을 기억하면 나중에 좋은 와인을 선별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사람이 술독에 빠지면 헤어나기 힘들다더니 정말 코와 입으로 먹은 와인 몇 잔에 금세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마음은 구름 위를 나는 것처럼 행복하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와인 저장고처럼 보르도는 푸른 포도 잎과 붉은 와인 빛으로 물들어 있다. 또한 파리의 콩코드르 광장 안에 서 있는 보르도의 정신적 지주 몽테스키외의 동상이 더욱 이 도시의 명성을 드높이고 있다. 기차역에서 보르도 사람들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구시가지까지는 제법 다리품을 팔아야 한다. 그런데 카페와 레스토랑, 호텔 등이 밀집된 번화가에서 와인을 파는 상점을 구경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분명 차창 밖에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을 눈이 시리도록 보았지만 정작 번화한 거리에서는 생각보다 와인숍이 그리 많지 않아 아이러니하였다.


보르도 여행은 와인으로 시작해 와인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낮 동안의 투어를 통해 와인의 상식을 넓히고, 저녁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그곳에서 산 포도주의 황홀한 붉은빛 유혹과 속삭이면서 보르도 여행의 마침표를 찍으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