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 7월
아랍인들이 북아프리카에 건설한 이슬람의 도시 카이로우완
낡은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아잔의 코란소리가 절집에서 흘러나오는 스님의 독경소리처럼 들린다. 이슬람 지역을 여행하다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듣게 되는 아잔의 소리는 우리의 정서와 조금은 이어진 듯한 인상을 받는다. 사람마다 다르게 들리겠지만 깊은 산 속에서 외로이 불경을 외는 스님의 종교적 열정처럼 아잔의 목소리도 너무나 성스럽게 들린다. 신에 대한 경건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이들의 목소리이기 때문에 종교와 상관없이 사람들의 마음을 차분하고 평온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북아프리카에서 최초로 아랍인들이 세운 튀니지 카이로우완에서 듣는 아잔의 목소리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기존의 북아프리카 여행은 로마가 남긴 흔적들을 더듬어 보지만 튀니지에서 남쪽으로 120km 떨어진 카이로우완은 아랍인들에 의해 세워진 모스크와 메디나(구시가지) 등 이슬람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인구 15만 명밖에 안 되는 아주 작은 도시이지만 과거 이곳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지어진 모스크가 있어 무슬림들에게는 이슬람의 성지로 유명한 곳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와 메디나,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이집트의 카이로와 함께 이슬람 4대 성지인 카이로우완은 670년 아랍의 장군 '우크바 이븐 나피 알 피흐리'가 북아프리카로 진군하던 중 베르베르 족의 공격으로부터 피하기 위해 우거진 숲 한가운데 군사진영을 세웠는데 이를 계기로 북아프리카 최대의 이슬람도시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래서 도시 이름은 페르시아어로 야영지, 숙소 등을 일컫는 '카라반'에서 유래되었다.
시간을 되돌린 것처럼 아득한 느낌이 도시 전체를 감싸는 이곳은 이슬람의 문화와 로마 문화를 동시에 엿볼 수 있는 도시다. 천 년이 훌쩍 뛰어 넘는 구시가지 메디나에 들어서면 영화 아라비안나이트를 연상케 할 만큼 영화 세트장 같은 모습이 여행자들을 즐겁게 한다. 서구문명 대신 고유한 이슬람 문화를 오롯이 지킨 이들의 정신과 마음은 도시 건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하얀 벽으로 치장된 건물과 기하학적 무늬가 새겨진 이슬람식의 창문 그리고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좁은 골목길은 타임머신 여행에 안성맞춤이다. 2009년 이슬람 문화의 도시로 선정된 이곳은 북아프리카 이슬람의 신앙의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슬람 4대 성지 중에 하나이고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곳이지만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도시임은 틀림없다.
무슬림들의 꿈과 희망이 서려 있는 이 도시는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모스크가 최대 자랑거리다. 이슬람의 성지답게 이 모스크는 유구한 역사와 종교적 기품을 자랑해 수많은 무슬림들이 이곳을 방문한다. 얼핏 보기에는 이곳이 모스크일까 싶을 정도로 넓은 마당과 회랑 그리고 대리석 빛의 첨탑이 전부다. 아랍인들이 이 땅에 처음 발을 디딘 후 제일 먼저 만든 모스크는 소박하지만 강한 신심으로 점철되어 있다. 671년 처음으로 건축된 후 9세기 아글라브 왕조에 의해 다시 증축되었다가 12세기에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사각형 마당에서 2000여 명이 동시에 기도를 올렸던 모스크는 건축적으로 아주 특이한 사항이 몇 개 있다. 첫 번째는 모스크 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회랑의 기둥이다. 400여 개의 기둥을 자세히 보면 이슬람식이 아닌 로마의 코린트, 도리아 식 기둥이 처마를 받치고 있다. 이는 아랍인들이 이곳에 이슬람을 세우면서 주변 로마식민도시에서 가져온 기둥을 사용해서 모스크를 건설한 것이다. 첨탑을 받치고 있는 벽돌과 회랑을 받치고 있는 기둥에는 라틴어가 씌어진 것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구시가지 메디나에 있는 오래된 일반 가정집도 로마의 기둥을 사용했을 만큼 카이로우완은 로마 건축을 재활용한 이슬람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라틴어가 새겨진 기둥과 벽돌이 반듯하게 쓴 것이 아니라 거꾸로 뒤집혀 있는데 이는 아랍인들이 라틴어를 몰라서 그랬다고 한다. 회랑의 기둥과 첨탑을 보고나면 드넓은 마당이 새롭게 보인다. 둘째는 모스크의 마당이 가진 비밀이다. 대부분의 이슬람 모스크가 엄청난 규모의 안뜰 마당을 갖고 있지만 카이로우완의 마당은 조금 특별하다. 그 이유는 사막지역에 모스크를 짓다 보니 수많은 무슬림들이 기도를 올릴 때 식수가 부족했다. 하얀 대리석을 깔아 놓은 마당 가운데는 네 개의 모서리에 비해서 낮다. 그 이유는 빗물을 모으기 위해서다. 비가 내리면 마당에 설치된 작은 홈을 통해 마당 지하에 파놓은 저수장으로 물이 모이게 했다. 한마디로 안마당의 지하는 물 저장고였다는 것이다. 이 물 저장고를 생각하면 그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기도를 올렸는지 추측이 가능해진다. 물론 지하 물 저장고는 빗물만을 모은 것이 아니라 10여개의 산에서 40km 지하수로를 통해 물을 끌어왔다. 모스크 주변에도 지하 물 저장고 말고도 엄청나게 큰 옥외 물 저장고가 마련돼 있다. 그 저장고에서 이슬람의 왕이 수영을 했다는 문헌적 기록도 남아 있다. 사막지역에서 물은 곧 생명이었기에 카이로우완 사람들은 모든 지혜를 짜내 물 저장고를 모스크와 도시 건설에 안정된 식수를 제공했다. 이런 이색적인 모스크를 감상하고 나면 모스크와 바로 연결된 구시가지 메디나로 향하게 된다. 하얀 색의 벽과 푸른색의 문이 인상적인 메디나는 튀니지에서 가장 멋스럽고 고풍스런 이미지다. 보통 재래시장을 ‘숙’이라고 부르는데 카이로우완의 숙은 튀니지에서 가장 고색창연하다. 터키 이스탄불이나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만큼 오래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한다. 숙의 규모는 작지만 성벽 안에 마련된 작은 상점과 가옥 그리고 여러 개의 모스크는 중세시대의 이슬람 시장을 연상케 한다. 치안도 안전하기 때문에 시장 곳곳을 돌아보며 영화 속에 주인공이 된 것처럼 시간 여행을 즐겨 보는 것도 좋다. 낯선 이방인과 눈을 맞추는 순간 환한 웃음으로 맞아주는 이들의 따스한 미소와 눈빛은 평생 잊히지 않는 카이로우완의 매력으로 남는다. 우리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않지만 조상 대대로 살아온 삶의 터전에서 평화롭게 알라만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평온함을 간직한 순례자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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