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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속에서 만나는 또 다른 중국, 福健省 土樓

제주한라병원 2012. 7. 6. 13:10

2010년/8월

중국 속에서 만나는 또 다른 중국, 福健省 土樓

 

지난 2008년 7월 캐나다 퀘벡에서 제 32차 세계문화유산 총회가 열렸다. 이날 41개국에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받기에 위해 모두 47개 문화유산이 후보에 올랐다. 그 중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린 것은 중국 복건성(福健省)의 토루(土樓)였다. 심사위원들은 "복건성의 토루는 아시아 특유의 씨족문화와 높은 건축기술 그리고 독특한 건축구조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손색이 없다"고 밝혔다. 하늘에서 보면 삼삼오오 모여 있는 도넛 모양의 토루들이 집인지 아니면 미사일기지인지 착각할 만큼 이색적인 풍광을 보여준다. 광활한 대륙에 다양한 민족들이 살고 있는 중국이지만 토루만큼 건축구조와 생김새가 독특한 것은 그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운 가옥 구조다.
중국 하문(廈門)에서 서쪽으로 차로 3시간 남짓 달려가면 남정(南靖)․영정(永靖)․화안(華安) 등을 중심으로 3000여 개의 크고 작은 토루가 있고, 그 중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46채의 토루를 만난다. 토루는 저마다 ××루(樓)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데, 이것은 성(姓)이 서로 다른 하나의 집성촌으로 이해하면 된다. 중국 5대 민가 건축양식 중에 하나인 토루는 769년 당나라 시대 때부터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해 송·원(宋·元)을 거쳐 복건성 남서부에 우우죽순처럼 들어섰다. 현재 남아 있는 대부분의 토루는 명나라 때 건축된 것이고, 지역에 따라 1000년이 넘는 토루도 있다. 그럼 무슨 이유로 복건성에 이처럼 많은 토루가 들어섰을까?


토루에 사는 사람들은 한족(漢族)에서 갈라진 객가(客家)족인데 이들은 南宋 시절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고향을 떠나 복건성 산속으로 이주해 동그란 모양의 토루를 짓고 살았다. 해발 300~600미터에서 차밭을 일구며 살아 온 객가족은 외부와의 철저한 단절과 적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성채 같은 집을 짓고 살았다. 토루는 외벽의 형태에 따라 원형, 방형, 반원형, 사각형 등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만 보통 원형이 많다. 원형 토루의 직경은 40~60미터이고, 둘레는 수백 미터에 이르고 토루 하나에 250~800여 명이 거주하였다. 외부는 두터운 흙벽으로 구축됐고 내부는 우리의 한옥처럼 못을 쓰지 않고 나무를 짜 맞춰 지었다. 보통 3~5층 구조로 건축된 토루는 1층에는 부엌과 식당이 있고, 2층에는 창고, 3층 이상에는 주거를 위한 침실이 있다. 토루 내부 한 가운데는 씨족의 제반 행사를 할 수 있는 공간과 학교와 사당 그리고 손님들이 머물 수 있는 객실 등도 마련돼 있다. 토루에서 특이한 요소는 방위를 목적으로 외벽을 견고하게 구축하여 하나의 철옹성처럼 만든 것이다. 그래서 토루로 들어가는 문은 오직 하나 밖에 없다. 침실에는 환기와 밖을 감시할 수 있는 창문이 있는데 이것은 적이 침입할 때 활을 쏘기 위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군사시설 같지만 토루 안에 들어가면 의식주가 모든 것이 해결 되었을 만큼 객가족들은 편안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중국 중심에서 밀려난 한족의 갈래인 객가인들이 복건성으로 내려와 전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특이한 형식의 집단 가옥을 짓고 산 것은 그 자체만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하다. 자신들의 고유한 민족성과 생활습관 그리고 사회구조를 오롯이 지키기 위해 출입문을 하나 밖에 만들지 않은 객가인들의 삶의 철학이 인상적이다. 하늘을 통하지 않고서는 개미 한 마리도 출입할 수 없는 토루의 특이한 건축구조는 현대건축사에 획을 긋는데 의미가 있다. 세계문화유산 심사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만장일치로 토루를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선정한데는 그 나름대로 이유가 분명하다. 특히 토루 안에는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서 있지만 마당 곳곳에 우물이 있는 것이 놀랍다. 외부와 전쟁을 치르더라도 우물이 있기 때문에 쉽게 적에게 토루를 내 주지 않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자급자족이 가능한 집체인 셈이다. 지금도 객가인들은 우물에서 물을 길러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가축을 기른다.


3층부터 살림집이 빈틈없이 빼곡하게 들어선 토루는 객가인들의 공동체 의식을 높이고 자신들만의 고유한 전통을 사수하는데 남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하나의 작은 집성촌 사회이기 때문에 위계질서는 물론이고 교육과 혼례 등 모든 것이 토루 안에서 이뤄졌다. 혼례는 3대  이상 지나야 같은 성끼리 혼례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근친상간에 대해서도 지혜를 발휘했다. 중국 속에서 또 다른 중국을 만날 수 있는 토루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특별한 장소가 될 것이다. 단지 세계문화유산이라는 보증수표가 있어서가 아니라 객가인들이 수백 년 동안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 토루는 건축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한다. 세계문화유산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살 지 않는 집이 아니라 현재에도 차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여행의 즐거움이 배가 된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세계문화유산인데 어떻게 사람들이 살 수 있을까? 혹시 문화재가 파괴되지는 않을까? 염려스럽지만 이 모든 것은 기우에 불과하다. 집은 사람이 살지 않으면 금방 폐허가 되는 것처럼 사람이 살아야 깨끗하게 유지관리 된다. 어떤 것이 정답인지 모르지만 토루는 분명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독특한 건축과 문화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