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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맞닿은 천혜의 요새, 마사다

제주한라병원 2012. 7. 6. 11:08

2010년 / 5월

하늘과 맞닿은 천혜의 요새, 마사다

 

 

소금기를 가득 품은 사해의 바람은 해발 450m에 우뚝 솟아 오른 마사다(히브리어로 ‘요새’라는 뜻)를 감싼다. 난공불락의 요새이자 이스라엘의 헤롯왕이 건설한 궁전이 있는 마사다는 유대인이 로마 실바 장군에 대항하여 성전을 치른 유명한 장소다. 2천 년에 유구한 역사를 가진 마사다는 2001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대 유적지다. 이스라엘이 이탈리아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에루살렘이 정복당한 후 갈리리 지방의 엘리에젤 벤 야일 장군이 960여 명의 열혈 유대인을 이끌고 마지막까지 이스라엘의 자유를 위해 저항한 성스러운 곳이다. 페루의 공중 도시 마추픽추를 연상케 하는 마사다는 산 정상 위에 길이 650m, 너비 300m의 테이블 모양의 성채를 가진 철옹성이다. 마추픽추가 산비탈을 이용해 도시가 형성되었다면 이곳은 평편한 운동장처럼 드넓은 지형이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마사다는 세계에서 유일한 죽음의 바다 사해를 동쪽으로 끼고 있고 북서쪽은 모두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 같은 협곡이 굽이치는 사막으로 둘러싸여 있다. 동서남북 어딜 가든 절벽으로 이어져 있어 적으로부터 완벽하게 자신들을 보호 할 수 있는 천혜의 요새이다. 그래서 1만 5천이 넘는 로마 10군단이 이곳을 점령하는데 무려 3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자연을 주제한 신도 몰랐던 사해의 마사다에 처음 요새화를 시작한 사람은 BC 2세기 중엽 알렉산더 얀네우스 황제였고 그 뒤 BC 40년, 헤롯왕이 주변 국가의 침략을 대비하기 위해 마사다를 자신의 은신처로 삼았다. 그는 5미터가 넘는 성벽과 38개 탑, 교회, 궁전, 물 저장고 등 다양한 시설을 만들었다. 전쟁 시 마사다에서 자급자족하면서 적과 싸울 수 있는 모든 시스템을 완벽하게 구축해 놓은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헤롯왕은 단 한 번도 이곳에 오지 않았고 사용한 적도 없었지만 훗날 이스라엘의 에루살렘이 로마군에 의해 무참하게 살육 당 할 때 거기서 빠져 나온 유대인과 갈리리 지방에서 온 다수의 유대인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다.

 

헤롯왕의 의해 건설된 마사다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영화 '마사다'로 세계에 알려진 이곳은 너무나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유대인들이 73년까지 저항했던 마사다는 로마 군을 농락했던 철옹성이었다. 로마군은 이곳을 점령하려고 온갖 힘을 쏟아 부어도 쉽게 정복하지 못했다. 가파른 절벽을 오르면 돌과 기름 그리고 뜨거운 물이 사정없이 쏟아졌다. 로마군은 하는 수 없이 서쪽에 흙과 나무를 이용해 경사로를 만들어 성을 공략하기로 했다. 이때 에루살렘에서 잡혀온 유대인들이 경사로를 만들게 했는데 이것은 마사다에 있는 유대인들을 심리적으로 압박하기 위해서였다. 마사다 유대인들은 같은 유대인을 향해 돌팔매질을 못하자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면초가에서 엘리에젤 벤 야일 장군은 마침내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로마 군에게 점령돼 남자들은 노예로 팔려가고, 여자들은 로마군에 의해 윤간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함으로서 유대인의 장렬하고 용감한 저항의식을 보여주려 했다. 그러나 문제는 유대인 율법 상 자살은 허락되지 않았다. 여러 방법을 고민한 결과 이들은 960명 중에서 10명을 복불복으로 뽑은 뒤 선출된 10명의 남자들이 나머지 사람들을 죽이고, 남은 10명 중에 한 명이 9명을 죽인 뒤 마지막 한 명만이 자살을 택했다. 이것은 유대인 율법을 지키는데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다. 다음날 아침 경사로를 통해 쳐들어 온 로마군은 저항 없는 이들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특히 올리브, 대추야자 등 식량은 3년 치나 남았고, 물에는 독을 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이 로마 군을 무서워서도 아니고 자신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도 아니라 경사로를 쌓고 있는 동족을 죽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마사다와 얽힌 이야기는 눈물 없이 듣지 못할 정도로 너무나 가슴 아픈 유대인의 순고한 희생이 스며 있는 곳이다.

 

 

집보다 더 큰 물저장고. 

 단백질 섭취를 위해 비둘기를 사육한 장소.


이스라엘의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꼭 마사다에 와서 옛 선현들의 남긴 교훈을 마음으로 아로새긴다고 한다. 현재 마사다 정상에 올라가는 방법은 모두 세 가지이다. 첫째는 뱀 모양처럼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30여 분 정도 오르는 코스와 로마군이 쌓은 경사로 그리고 마지막은 손쉽게 갈 수 있는 케이블카이다. 어떤 방법을 이용하든 정상에 발을 디디면 사해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몇 줌이 여행자들의 눈과 마음을 시원하게 만든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케이블카를 타고 5분 만에 정상에 오르지만, 이스라엘의 청소년들은 ‘뱀 길(Snake Path)’이라고 불리는 길을 통해 천천히 오르면서 죽음으로서 항전했던 조상들의 영혼과 잠시 만난다. 이유가 어떻든 마사다 정상에 오르면 제일 먼저 북쪽에 위치한 헤롯왕의 궁전을 가게 된다. 정상에서 좁은 난간을 통해 내려가면 사해와 협곡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궁전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탁 트인 시야가 마음을 평온하게 만든다. 왼쪽으로는 실바 장군이 주둔하던 로마 주둔지와 협곡이 굽이쳐 흐르고, 오른쪽으로는 눈이 부시게 푸른 사해가 터줏대감처럼 자리하고 있다. 이스라엘 왕궁으로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산 정상에 마련된 헤롯왕의 궁전은 지정학적으로 너무나 완벽한 위치에 있다. 궁전을 둘러보고 나면 마사다를 본격적으로 보게 되는데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곳은 군데군데 있는 커다란 25개의 물 저장고이다. 마사다에는 물이 한 방울도 나지 않는데 어떻게 이들이 수년 동안 살았는지에 대한 유대인의 지혜를 잘 보여준다. 헤롯왕은 비가 내리면 빗물이 그냥 사해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막아 자연스럽게 빗물이 저장되도록 큰 물 저장고를 산 밑에 몇 개 만든 뒤 당나귀를 통해 정상까지 물을 끌어올렸다. 산꼭대기에는 전체의 인구가 사용할 있도록 도시 여러 곳에 물 저장소를 만들어 척박한 땅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했다. 정상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유적지는 폐허로 남아 있다. 마사다의 영화로움은 이곳에서 죽음으로 영원한 자유를 얻은 유대인과 함께 어디론가 사졌다. 사해에서 불어오는 바람만이 이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 뿐이다. 죽음을 기다리는 동안 마사다 유대인들은 항아리 하나를 깨뜨려 작은 조각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뒤 이것을 다시 항아리에 넣어 자신들의 이름 몇 자를 남긴 것처럼 마사다의 영웅은 너무나 겸손하게 생을 마감했다. 세월에 의해 다듬어진 돌덩이 하나하나에 유대인 지혜가 빛나고, 지나가는 바람에 이들의 영원한 자유가 느껴진다. 비록 유적지가 앙상한 폐허로 변했지만 조각에 새겨진 960명의 이름은 사해가 마르지 않는 한 영원히 마사다 하늘을 빛낼 것이다.

 

로마인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교회 내부의 모자이크

마사다 유적지에서 출토된 옛 유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