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3
비싼 약값 논란 한미 FTA로 인해 새국면 맞아
약값이 4월 1일부터 내립니다. 보통 국민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28년 전 미국 LA 올림픽 취재를 갔다가 교통사고로 척수손상을 입고 하반신이 완전히 마비돼 감각 기능도 전혀 없는데 이상하게 왼다리엔 가끔 극심한 통증이 왔습니다.
담당 현지 병원의 의사는 척수손상 환자에게는 그런 통증이 올 수 있다면서 진통제를 처방해 주더군요. 그 약을 복용했더니 통증이 약간 사라져서 좋은데 한 달간 사용해보니 아무래도 약이 너무 독한 것 같았습니다.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 같았고 몽롱한 느낌이 이어져 거울을 들여다보니 제 눈동자가 흐릿해 보였습니다.
의사와 상의하니 약효가 센 것 같지만 생활하는 데는 괜찮을 것 같다고 합니다만 저는 그 진통제에 마약 성분도 있고 기억력이 감퇴되는 것 같아 당장 그 약을 끊었습니다. 통증이 다시 심하게 와서 타이레놀을 처방해 주길래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복용량이 한 알이나 두 알씩 3~4회 먹으라고 하였으나 그것도 많은 것 같아 한 알씩 하루에 두 번이나 세번 정도 복용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뉴욕에 갈 기회가 있어서 마침 뉴욕대 재활의과 교수인 동창을 만나 상의했더니 이 친구도 타이레놀 정도면 많이 복용해도 괜찮다고 해서 지금도 상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 갈 적마다 마트나 대형할인점에서 타이레놀을 몇 통씩 구입합니다. 그런데 타이레놀 약값이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비싸다는 점입니다. 50% 가량 고가입니다. 미국에서는 200알 들이 한 통에 14~20달러로 한 알에 100원 미만인데 한국 약국에서 사면 한 알당 싸게 파는 곳이 150원이고 비싼 곳은 250원을 받습니다.
휠체어를 타는 중증장애인이 되니까 사용해야 할 의약품이나 의료기구가 많습니다. 욕창을 치료할 때 사용하는 거즈와 비슷한 습포(100장 들이)는 미국에서는 10달러(1만1천원) 이하에 살 수 있으나 이곳에서는 3만5천원입니다. 소변백은 미국에선 3만원 가량이고 이곳에서는 7만원 이상인데다 사용하기에 불편한 점이 있습니다. 소변이 잘 나오게 하는 비타민 C정 한 통(300알 들이)도 우리나라에서 수도권에서는 2만원, 지방에선 2만8천원에 구입하지만 미국에서는 1만6천원 정도입니다.
최근 정부가 6,506개 의약품에 대해 약값을 인하키로 했습니다. 2012년 4월1일부터 적용되는데, 제약사마다 수십억 원에서 최대 1,000억 원 이상 매출 하락이 예상된다고 제약사에서는 난리입니다. 일반 국민들이야 반가운 일이나 국내 제약산업계에선 100년 역사상 처음 일어난 일이라면서 반발이 큽니다. 정부를 상대로 소송까지 벌이고 있습니다.
복지부를 상대로 약가 인하 취소 소송을 가장 먼저 제기한 업체는 KMS제약, 다림바이오텍을 포함한 4곳에 이어 대한제약협회 윤석근 이사장이 운영하는 일성신약과 에리슨제약도 지난 3월 9일 서울행정법원에 '약가인하 고시 취소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이들 중소형 제약사들이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정작 약가 인하 피해규모가 큰 상위 제약사들은 소송에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동아제약, 녹십자, 대웅제약 등 상위 10대 제약사들은 "정부와 대립해서 기업이 이익을 본 사례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며 소송을 주저하고 있습니다. 제약업계에선 연간 1조7,000억 원의 손실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정부는 의사와 약사에게 제공하는 리베이트가 20% 정도였기 때문에 전체 매출액의 20%에 해당하는 리베이트를 인하해 약값의 거품을 빼야 한다고 밝힙니다.
전인구 한국약학교육평가원 이사장은 우리나라 약값은 과연 터무니없이 높은 수준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정부는 구매력지수를 적용해 우리나라 약값이 높다고 주장하지만 세계적으로 약가 정책을 기준으로 하는 ‘환율’로 평가하면 높은 수준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약가 인하의 명분으로 리베이트 근절을 내세우고 있으나 매출액의 20%에 해당하는 리베이트엔 학회나 학술활동 지원, 영업사원 판촉활동 등 공정경쟁 규약에 의거한 합법적인 마케팅 행위까지 포함시켜 불법 리베이트로 적용했고 과다하게 부풀려 약가 인하의 근거로 삼았다고 말합니다. 약값의 단계적 인하가 제약업계를 살리는 길이라고 요청합니다.
그러나 김진현 서울대 간호학과 교수는 얼마 전 한국일보 기고에서 약값은 반드시 내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김 교수는 고지혈증 치료제인 심바스타틴의 국내 가격은 830원대인데 비해서 우리보다 소득수준이 높은 스웨덴에서는 80원대로 우리보다 10배 이상 싸다고 사례를 들었습니다. 약값을 인하해야 하는 이유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고 김 교수는 말합니다.
건강보험 재정 지출에서 약제비는 30% 정도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1.7배 높고 높은 약가는 고스란히 소비자 부담으로 전가돼왔다고 지적합니다. 약가의 20% 정도가 제약사들이 의사와 약사에게 주는 리베이트(뇌물)라고 하는데 연간 4조원 즉, 건보료의 8%에 해당하는 리베이트를 국민들이 건보료로서 부담하고 있는 셈이라고 합니다.
높은 약가는 건보재정을 압박하는 요인이 됐고, 국내 제약산업의 경쟁력을 취약하게 만들었다고 밝힙니다. 그리고 지난 30년간 고가격 하에서도 연구개발을 외면했던 제약사들이 이제 와서 약가를 인하하면 연구개발을 못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고 반박했습니다. 이렇게 약값 인하를 놓고 정부와 제약사가 맞서는 상황에서 또 다른 커다란 문제가 곧 불 어닥쳐 양쪽에 비상등이 켜졌습니다.
바로 3월 15일부터 시행되는 한미 FTA 제도입니다. 이 제도로 인해 앞으로 국내 약값 결정과정에 대한 분쟁절차 돌입을 예고하면서 '만성적인 통상마찰 시대'를 불러올 가능성이 큽니다. 한미 FTA 협정 규약에 따라 의약품 및 의료기기 위원회 참가는 피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국내 업체의 약값 결정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하고 있고 일반 소비자나 난치병 환자들에게는 고가의 약값을 부담해야 할 사태가 올 수 있습니다. 정부와 제약업계, 국민들이 한마음으로 대처하고 준비해야 할 과제가 도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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