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2
불편한 사람 받아들인다고 손해 보는 일 없어
15년 전 선친께서 여든 셋에 돌아가셨습니다. 평소 화장을 해달라는 말씀을 하셔서 성남 영생원에 모셨는데 계속 모시고 싶어 유골 일부를 작은 단지에 담아 머리맡에 두든 지 집안에 보관하고 싶었습니다. 아내는 펄쩍 뛰더군요. 무섭다고. 좋게 설명하고 달래 보다가 포기했습니다. 제 아내와 같은 정서를 가진 사람들이 우리 국민입니다.
그러나 일본은 자기 집 정원에, 텃밭에, 집안에, 아니면 동네 납골당에 유골을 모시는 풍습이 흔합니다. 일본의 장례 문화는 고인의 목뼈를 예쁜 연꽃 모양으로 수습해 먹기까지 합니다. 유골의 일부를 자기 집으로 모시고 가서 각 가정마다 설치된 불단 앞에 하얀 유골상자를 올려놓습니다. 가족들 중에서는 가끔 유골을 꺼내어 손으로 어루만지며 고인을 기립니다.
몇 년 전 미국 LA에 사는 친구가 급서해 직접 찾아간 적 있습니다. 5일장을 치르는데 김일성-김정일 식으로 사체에 방부 처리를 해서 생전 그대로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얼굴을 한참 어루만질 수 있었습니다. 발인날 장지로 향하면서 경찰에 연락했더니 50여대나 되는 자동차 행렬 앞과 뒤, 옆에서 호위를 해주고 시내 교통 정리와 온갖 편의를 제공하더군요. 자동차 행렬이 거리를 통과할 때 보통 다른 차 운전자들은 10분 정도 기다려 주면서 하나도 불평을 하지 않는 장면을 보고 놀랐습니다.
친구가 묻힌 장례 묘원은 LA 인근 작은 동네, 대학교가 옆에 있는 곳인데 장례공원 안과 밖 뿐아니라 온 동네가 4월이어서 그런지 꽃동네였습니다. 공원 묘원 바로 옆에는 집들이 많았는데 상당히 좋은 집들이었습니다. LA에 사는 동창들이 이야기해 주더군요. “이곳에서는 묘지 근처 땅이나 집이 더 비싸.’ 우리 사고방식으로는 상상이 가지 않더군요. 묘원 안에는 어린이 놀이터도 준비돼 있어 깔깔 웃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젊은 연인들이 데이트를 하는 모습도 보여 마치 드라마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세상 떠난 사람을 옆에 두면 유령이 나올 것 같아 두렵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바로 옆이나 근처에 유골이나 망자의 초상화가 있으면 싫다는 사람들의 심정은 십분 이해가 갑니다.
그러면 정상인과 달리 제대로 걷지 못하거나 몸이 비틀렸거나, 앞을 보지 못하거나,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싫거나 혐오감이 생깁니까? 내 생활에 지장을 주거나 불편합니까? 아니면 동정심이 자꾸 생겨 쓸데없는 신경이 쓰입니까?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 것은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장애인은 우리 국민의 열 사람 중 한 사람 꼴이고 그 장애인의 가족까지 합치면 네 사람의 한 사람 꼴로 장애인이나 장애인 가족들이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얼마 전 서울시와 강원 양양군이 해변 장애인 휴양소 설치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서울시는 양양군이 현북면 하광정리 596-1 일대 '서울시 하조대 희망들'에 대한 건축협의 취소 처분에 대해 지난해 10월 천천지방법원 강릉지원에 행정 취소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서울시는 2009년 이 곳에 지상2층(지하1층) 규모의 장애인 휴양소(연면적 1,923㎡) 건립계획을 세우고 부지(6,879㎡)를 매입하고 2010년 양양군과 건축협의를 마쳤습니다.
하지만 서울시 주관 주민설명회에서 이 곳에 장애인 시설을 짓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현지 주민들이 반대하자 양양군은 지난해 8월 협의를 취소한 것입니다. 주민 중 다수는 해수욕장 상인들입니다. 법원은 이에 대해 지난해 10월 서울시가 행정 취소소송과 함께 제기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에서 시의 주장을 인용, 시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군은 즉시 항고했지만 법원은 이마저 각하했습니다.
서울시는 장애인 시설을 꺼리는 님비(NIMBY) 현상 때문에 첫 삽도 뜨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국민권익위원회도 지난해 1월 전국 각 지자체에 내려 보낸 '장애인 휴양시설 도입과 의무고용 촉진을 위한 제도개선 방안'에서 시도별로 1개 이상의 장애인 휴양시설을 마련할 것을 권고한 바 있습니다. 서울시는 "시설을 매개로 군과 관광ㆍ복지 협정서 체결, 지역 농수산품 판로 확대 등도 할 계획"이라고 합니다만 양양군은 "패소하더라도 항고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서울 강남구 일원동에서 90년대부터 17년간 살았습니다. 대치동 인근 샘터마을 아파트에 거주할 때 아파트 바로 옆에 교회가 있는데 이 교회에서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자페아를 위한 학교를 짓겠다고 허가를 받아 건설에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저희 아파트 900여 가구 중 상당수가 들고 일어났습니다. 장애인 시설이 들어오면 집값이 떨어지니까 용인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당시 주민들은 이 사태 직전 저보고 주민대표를 맡아달라고 했는데 기가막히던군요. “아니! 휠체어를 타는 나보고 대표를 하라고 하면서 장애인 학교가 들어오는 것도 막아달라는 게 말이 됩니까?”
아파트 주민 중 한 사람인 KBS 어느 부장은 자신이 진행하는 50분짜리 프로에 이 문제를 보도하면서 허가를 내준 서울시와 강남구청을 비난하고 시위하는 아줌마와 주민 모습 위주로 장면을 찍어 방송하기도 하더군요. 속으로 “어떻게 저런 편파 방송을 하는 방송인이 언론인이라고 할 수 있나?” 하면서 반대하지 않는 주민들도 많다는 사실을 방송국에 알린 적이 있습니다.
사진-천지연폭포
일부 주민들이 건설 현장에 드러눕는 사태가 계속되자 교회에서는 손해배상 소송까지 신청해 결국 교회가 이겼고 저희 아파트는 한 가구당 4백만원 가까운 돈을 물어내야 했습니다.
그러자 반대하던 주민들이 슬그머니 들어가기 시작했고 교회에서는 배상금을 받지 않아 학교 공사는 근 1년 늦게 완공이 됐습니다. 그 자폐아학교는 국제건축학회에서 선정한 한국의 100대 명건축물로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제주는 세계가 인정하는 아름다운 명소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휠체어를 타고 유명 관광지를 다녀보니 제대로 구경할 수 없는 곳이 아직도 많습니다. 천지연 폭포 등은 길이 울퉁불퉁해 휠체어가 접근하기 어렵고 대부분의 오름은 멀찌감치에서나 감상할 수 있습니다. 만장굴은 들어갈 수가 없는데 미국 펜실바니아 공원에 있는 만장굴만큼 큰 용암동굴은 입구의 몇 계단만 안내인이 휠체어를 들어주면 그 다음은 아주 편하게 다닐 수 있더군요. 아시아 최고 수준을 지향하는 국제자유도시 제주도민이 장애인에 대해서 조금만 열린 마음을 갖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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