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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는 사람들 속에 활짝 핀 마을, 성산읍 시흥리

제주한라병원 2012. 2. 15. 14:18

2010년 / 3월

오가는 사람들 속에 활짝 핀 마을, 성산읍 시흥리

 

#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제주올레’의 첫 관문

 

 

청초한 자연을 보면서 비로소 허울을 벗고 깊은 내면의 진정한 나를 만나는 길.

쉼 없이 달려온 나를 위로하면서 자연에게 위로받는 여행.

겨우내 잠지 주춤했던 제주올레 걷기여행, 제주도보여행은 봄이 오면서 또다시 기지개를 켜게 될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제주올레가 전국적인 열풍을 일으키면서 가장 많이 알려진 마을은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다.

제주올레의 첫 관문, 1코스가 시작되는 이 작은 마을에서 등에 배낭을 메고 생수병을 하나씩 들고 지나는 올레꾼들의 모습은 자연스러운 마을풍경이 됐다.

학교나 직장을 찾아 하나 둘 떠가가는 모습만 보던 이곳 주민들은 끊임없이 마을을 찾아주는 이들이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손님을 맞고 보내는 분위기가 익숙해져서 일까. 작은 마을의 분위기는 무척이나 밝고 경쾌하다.

‘고사리 장마’를 떠올리게 하듯 비 날씨가 계속되던 3월 초 어느 날,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 마을회관 옆에 자리 잡은 노인회관 안 노래방기기 앞에 할아버지 5분이 옹기종기 앉아 주거니 받거니 노래 한 소절씩을 나눠 부르고 있었다.

 

 

# 흥겨운 노래에 젖어있는 ‘힘 센 마을’

 

 

 

 

구성진 노랫가락이 조용한 시골마을에 울려 퍼진다.

자신있는 음정과 정확한 박자맞춤이 한 두 번 부른 노래솜씨가 아니다. 예로부터 힘이 세고 건강한 사람이 많다는 소문대로 노랫소리까지 우렁차다.

“춘삼월이라고 봄이 오긴 했는데 며칠 째 비만 오고 밭일이고, 바다의 일이고 할 수가 없어서 모두 여기 나와서 시간 보내고 있어요.”

시흥리서 나고 자랐다는 강원휴 할아버지(78)가 반기며 말을 건넨다.

성산일출봉과 우도가 시원스레 내다보이고 두산봉(말미오름)이 마을을 감싸 안은 아늑한 마을.

할아버지들이 마을역사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한다. 

시흥리는 지금으로부터 약 350여 년 전 갈가라는 성씨를 가진 사람이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됐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예로부터 힘센 장수가 많아 ‘심돌마을’이라고 했다는 것이 이곳 마을 어르신들의 설명이다.

그러다가 서기 1904년 정의군과 제주목 경계에 있어서 정의군의 시작이 되는 마을이라고 해서 ‘시흥리(始興里)’로 이름을 바꿨는데 지금은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동쪽 경계가 되고 있다.

460여 세대, 1160여명이 살고 있는 이곳 마을사람들은 대체로 감귤을 비롯해 당근, 감자, 콩 등 밭작물을 재배한다.


# 희망이 있어 오늘이 건강한 마을

 

 

 

시흥리는 또 바닷가 가까이 자리잡고 있는 지리적 여건상 간간이 어업도 행해진다.

지금은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사실 시흥리는 해방 전 까지만 해도 소금을 생산하는 마을로 유명했었다.

강원휴 할아버지는 “우리 마을을 지나다보면 갈대습지를 흔히 볼 수 있지 않았느냐”고 물으면서 “해방 전 그 갈대습지가 바닷가 모래밭이었다”고 설명했다.

강 할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이 그곳 염전을 소금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다가 바다를 막아 양어장을 만드는 바람에 소금밭이 사라졌고, 그 바람에 주민들이 생업을 잃고 큰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 이야기도 덧붙였다.

“사람은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면 다 살아갈 수 있는 거예요. 삶의 터전이던 염전을 잃고도 사람들은 다시 밭으로 바다로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가면서 살았던 것이 지금 이렇게 됐잖수.”

강 할아버지는 지금 시흥리는 밭농사며 양식업 등을 기반으로 모자람 없이 살아가고 있다고 귀띔했다.

또 그렇게 희망을 가지고 살아온 덕분에 사람들이 겉모습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을지 몰라도 마음만은 항상 청춘이라고 한바탕 웃음을 웃으신다.

“최근 몇 년 마을을 찾는 올레꾼들에게 길도 안내해주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듣다보면 세상에 재밌는 일도 많구나를 느끼고 요즘은 참 살아가는 게 재밌어요.”

장기를 두던 한 할아버지는 올레꾼들로 받는 시흥리 마을의 관심이 즐겁다는 얘기는 덧붙였다.

시흥리를 찾는 사람과 그들을 반갑게 맞는 마을 사람들이 있어 시흥리는 더 활기있고, 더 건강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