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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人權) 이야기 II-'개미지옥의 굴레'와 적색인권

제주한라병원 2012. 2. 1. 11:14

2011년/4월

인권(人權) 이야기 II
- ‘개미지옥의 굴레’와 적색인권

 

지난 호에서 요한 갈퉁이라는 노르웨이의 평화학자는 <인권>을 그 성격에 따라 [청색인권-적색인권-녹색인권-갈색인권], 그리하여 모두 합하면 ‘무지갯빛 인권’이라고 표현했다는 이야기를 살펴본 바 있다.

 

그런데 필자부터도 권위주의 정부 시절 민주화 투쟁과정을 거쳐 확보해낸 청색인권(자유권), 즉 신체의 자유, 양심과 사상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에는 대단히 민감한 반면 교육, 의료, 주거, 복지 등 다양한 사회 경제적 권리를 뜻하는 적색인권(사회권)에 대해서는 상당히 둔감하게 대해왔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무슨…’ 이라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있었으리라.

 

우리나라의 경우 80년대 이후 민주화 과정을 거쳐 청색인권은 상당히 신장되어왔다. 그러나 적색인권에 대한 준비와 인식은 아직도 많이 부족함을 우리 스스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사회적 권리인 ‘적색 인권’은 교육, 의료, 주거, 복지 등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보장받아야 할 권리를 의미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인생살이를 비유하여 모 국회의원이 쓴 표현 중에 인정하기는 싫지만 많은 사람의 마음속을 후벼 파는 표현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개미지옥의 굴레’ 속에 살아간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가 말하는 ‘개미지옥의 굴레’는 네 가지로 이뤄진다. 먼저 성장기의 교육과정에서 우리 학생들은 무한경쟁의 입시지옥 환경 속에서 <사교육>이라고 하는 레드오션(red ocean)에 던져지고, 또 부모들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생활비의 절반이 넘는 비용을 사교육비로 지출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대학 공부하는 동안 부담해야 하는 높은 등록금 문제는 이제는 누구나 공감하는 사회적 부담이 된지 오래다.

 

둘째, 이렇게 어렵게 공부하여 대학을 마치고 나서는 다시 하늘의 별따기와 같다는 취업전쟁에 내몰린다. 취업을 위해 대학 재학기간 내내 온갖 스펙 쌓기와 해외연수 등의 사전투자에 매달려야 하고, 졸업자가 되고 나면 취업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행해지는 졸업 연기성(?) 휴학이 비일비재하다. 게다가 비정규직의 비중은 점차 커져가고 있고, 대학졸업자는 넘쳐나는 과잉공급의 현장에서 우리 청년들은 또 다른 개미지옥의 체험을 해야 하는 것이다.

 

셋째, 어렵사리 취업을 하고 나서 결혼해 가정을 꾸리려면 삶의 터전으로 삼을 주택문제가 떡하니 버티고 나선다. 한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버린 집값은 월급쟁이 월급으로는 도저히 따라잡기 어렵고, 전세보증금조차도 만만치 않다. 서울에 아파트 한 채 마련하려면 보통 월급쟁이 월급으로는 몇십년을 모아야 '될똥말똥'하다는 언론보도도 있었다. 대출을 받아 집을 구매한 경우라면 벌어서 은행이자 갚기에 허덕거리고, 전세라면 2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보증금 인상바람이 두렵기만 하다.

 

이렇게 시작된 교육과정, 취업과정을 거쳐 결혼 이후 육아를 해나가노라면 본인들이 거쳤던 과정을 반복해야하는 자녀들의 사교육이 다시 기다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본인들의 노후를 위한 준비에는 자원과 준비를 기울일 여력이 없게 되는 것이 불 보듯 뻔하고, 따라서 불안한 노후를 어찌 감당할지 막연하기만 하다.

 

이것이 모 국회의원이 ‘개미지옥의 굴레’라고 표현한, 오늘날 한국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적색 인권’ 부문에서의 어려움인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개인별 삶의 역량이나 상황으로 돌리거나 ‘더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벌어서 해결하라’는 식의 차원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이는 국가와 사회가 구성원들의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하려는 노력의 대상인 ‘적색 인권’ 즉 사회권의 영역인 것이다.

 

사교육비 해소를 위한 장기적 교육정책, 장기임대주택 확대, 의료보험보장 개선 등으로 개인별 가용소득이 높아진다면 그 사회 구성원들의 인권과 삶의 질은 크게 높아질 것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대 조국 교수는 “우리나라는 현재 사회권 신장을 위한 다양한 조치를 하기 어려울 정도로 못 사는 나라가 아니다. 스웨덴이나 영국과 같은 복지 선진국들은 전쟁 직후 폐허의 터전위에서 사회복지정책의 확충을 통해 오히려 선순환 구조를 이끌어낸 모범적인 사례다. 스웨덴이나 영국이 적색인권 신장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낸 시점에 비하면 현재의 한국의 경제력 수준은 매우 높은 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엄청난 사교육비 부담, 높기만 한 취업의 관문, 부담스러운 주거비, 고령화에 수반되어야 할 노후대책 부재 등에 시달리고 있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라는 생각에서 이제는 벗어나, 이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 전반으로부터의 적색인권 개선노력이 매우 시급하고도 절실하다.

 

<UN 사회권 규약>은 다음과 같은 권리들을 적시하고 있다.

- 여성에 대한 차별금지 및 평등 대우(2조, 3조)
- 근로할 자유와 근로에 대한 기회(4조)
- 긍정한 임금 및 적정 수준의 근로조건(7존)
- 사회보장(8조)
- 모성 및 연소자에 대한 특별보호(10조)
- 적절한 식량, 의복 및 주거에 대한 권리(11조)
- 기본적 의료․보건 서비스를 받을 권리(12조)
- 교육을 받을 권리(13조)
- 문화생활과 과학발전에 참여할 권리(15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