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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은 다수가 아닌, 인간에게 주어진 권리"

제주한라병원 2012. 2. 3. 13:23

2011년/6월

인권(人權) 이야기 Ⅳ

 소수자들의 인권, ‘마이너리티 리포트 中’
"인권은 다수가 아닌, 인간에게 주어진 권리"


 

지난 호에서는 한국사회의 소수자 중 외국인 노동자와 한국으로 시집온 신부들이 처해있는 비인간적이고 당혹스런 현실을 살펴보았다. 이들 외에도 우리사회의 일원이면서도 인권의 사각지대에 노출된 소수자로는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혼혈인, 동성애자, 장애인, 양심적 병역거부자, 형사 피의자 또는 피고인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번 호에서는 혼혈인과 동성애자의 경우를 들여다보자.

 

매년 2월 첫째 일요일은 미국에서는 수퍼 선데이(Super Sunday)라고 해서, 일년 중 추수감사절을 제외하고는 두 번째로 음식 소비량이 많은 날이다. 그날 전국의 도로는 그지없이 한산해지고,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파티 분위기에서 음식을 먹으며 연중 최대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빅 이벤트, 수퍼볼(Super Bowl) 경기를 관람한다. 시청률이 70%까지 오를 때에는 약 1억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시에 같은 경기를 보는 것이다. 30초짜리 광고가 30억 원에 판매된다니 미식축구를 특별히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조차 이날의 경기에 얼마나 열광하고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만하다. 

 

그런데 몇 년 전, 이 큰 경기에서 한국계 미국인이 MVP로 뽑혔다. 바로 하인즈 워드. 경기를 승리로 이끄는데 결정적 공헌을 했다는 뜻이다. 이후 그의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올라갔고, 한국계 인사가 이런 영예를 누린 것에 대해 우리 국민들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던 흥겨운 기억이 난다.

 

하지만 만약, 하인즈가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 성장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가 지금의 뛰어난 미식축구 선수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 이런저런 가능성을 요모조모 생각해봐도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일단 ‘혼혈’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부터 상황은 꼬이기 시작한다. 순혈 또는 단일혈통에 위배되는 ‘탁혈’이란 의미로 ‘혼혈’이라는 용어가 쓰이는 것 아닌가? 국내에서 혼혈인의 40%는 무직자라는 통계도 있다. 이들은 교육에서부터 수많은 따돌림과 멸시를 감수하며 성장해야 하는 환경에 놓여 있다. 이러할진대 하인즈 워드가 만약 한국에서 자랐다면 과연 지금 같은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버락 오바마의 사례를 떠올려 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미국이란 나라의 좋은 점과 그렇지 않은 점이 보는 사람마다 갈리겠지만, 이 대목에서만큼은 우리가 선진국으로서 미국의 장점을 참고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른다.

 

다음으로 동성애자에 대한 시선을 살펴보자. 동성애자들에 대한 사회적 관념이 근래 들어 비교적 부드러워 진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여기에는 영화라는 매체도 기여한 바가 크다. 외국영화로는 ‘필라델피아’나 ‘브로크백 마운틴’, ‘메종드히미코’ ‘셀터’, 우리 영화로는 ‘로드무비’ ‘헬로우 마이러브’ 등이 볼 만하다. (이런 영화를 ‘퀴어영화’라고 부른다)

 

또 우리는 몇몇 용감한 연예인들의 커밍아웃 소식을 전해 듣고서야 동성애에 대한 ‘편향된 시각’을 스스로 돌아보기도 한다. 이같은 대중문화 또는 문화인들을 통한 간접체험이 같은 성끼리의 사랑이 다른 성끼리의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심정적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상당히 기여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도 현실 속으로 접어들면 단단한 벽에 부딪치고 만다. 동성애 커플은 민법상 배우자가 아니므로, 재산이나 연금, 사회보험 등에서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한다. 또 학교나 직장, 군대에서 커밍아웃을 하면 공공연하거나 적어도 은밀한 비난과 차별에 접하게 되는 것이다.

 

단적인 예가 있다. 군인들을 다루는 규율을 군법이라고 한다. 군영 밖의 군인이 이성간에 사랑을 나누는 거야 프라이버시일 뿐 위법할 것이 없다. 그러나 군영 내에서 이성간에 사랑을 나누는 경우는 규율에 위배되므로 처벌을 받기는 한다. 그렇더라도 감옥에 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군인이 동성애를 하는 경우에 처벌하는 근거가 되는 군법 조항을 살펴보면 놀랍다. 군형법 제 92조에 ‘계간(鷄姦)’ 처벌이라는 항목이 있다. 이에 대한 해석은 민망해서 독자 여러분께 맡긴다. 이 조항을 위반하는 군인은 감옥에 가게 되므로, 아주 무거운 죄를 짓는 셈인 것이다.

 

단지 인간이기 때문에, 비록 다수(多數, Majority)에 속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지켜져야 하고 존중받아야 할 소중한 권리. 그것이 바로 인권임을 다시 한번 새겨보자. 오늘 살펴본 혼혈인 또는 동성애자들의 경우처럼 우리 사회의 소수(少數, Minority), 마이너리티들의 하루하루는 지금 이 순간에도 팍팍하고 힘겹게만 흘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