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한라병원

이명아명,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자신의 몸처럼 돌본다

연재종료코너/이준희사람세상

마지막 편지

제주한라병원 2012. 1. 11. 13:39

2011/12

 

마지막 편지

 

그러니까 2008년 6월 어느 날부터 내 제주생활은 시작되었다. 나는 공항에 내리자마자 서울에서 미리 잡아놓은 거처로 발걸음을 옮겼다. 짐은 많지 않았다. 약 삼 개월 동안 머물 예정이었다. 워낙 선천적으로 공간에 민감한 성격인데다, 한 곳에 머무르면 쉬이 뜨지 않는 습성을 지녔음을 스스로 알고 있었기에 그 정도면 되리라 예상했다. 트렁크에는 여름옷과 가벼운 긴소매 옷, 그리고 노트북이 들어 있었다. 그때는 제주에서의 생활이 그렇게 길어지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제주에서의 시간을 보내게 될 내 거처에서 등록을 하고 방을 안내받았다. 짐을 놓자마자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제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는 그때까지 서울에서의 업무를 마무리하느라 밤을 새운 탓에 졸음이 밀려왔다. 그러나 단지 단 하룻밤의 잠이 부족해서였을까. 그게 아니라는 것은 스스로 더 잘 알고 있었다. 글도 쓰고 잠시 머리도 식힐 겸 제주에 간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을 때, 다들 팔자 좋다는 반응들이었다. 그러나 만류하는 사람은 없었다. 워낙 한번 마음먹으면 꼭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내 성격을 알기 때문이었을 거다. 글을 쓰고 머리를 식힐 겸 제주에 간 것도 맞기는 하지만, 정작 진짜 이유는 다른 데에 있었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 제주에 내려오기 전 이삼 년 동안 내가 마음을 다치고 있었던 탓이리라. 그리고 늘 그렇듯 마음을 다치는 것은 사람의 문제였으며, 또한 나 자신의 문제였다. 

 

어떤 일이었는지를 세세히 밝히는 것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닌 듯하다. 또한 그러한 상황이 발생한 사건의 경중을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 원체 상처라는 게 개인적인 일이다보니, 그 개인이 어떠한 상황인가에 따라 다른 사람에게는 별 게 아닌 일도 그 사람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 개인이 상처를 어떤 식으로 다스릴 수 있는가 하는 것뿐이다. 그 시기 아마도 나는 그 상처를 다스리는 법을 몰랐거나, 감당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해졌던 듯하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나만의 문제로 끝났다면, 그리하여 어떻게든 홀로 버텨나갈 수 있었다면 됐을 텐데, 그렇지 못했다는 데에 있다.

 

견디기 위해 가끔 누군가의 어깨를 짚기도 했고, 마치 상처에 전염성이라도 있는지 어깨를 빌려준 이에게 전이되기도 했다. 상처를 보호하기 위해 웅크린 채 날카롭게 세운 가시에 다른 이들이 찔리기도 했던 거다. 그러한 일이 몇 년째 되풀이되었고, 그러한 시간의 연을 끊고 싶었다. 공간에 민감한 내가 시간의 연을 끊기 위해서는 역시 공간을 통해서 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제주에서의 생활은 매우 평안했다. 처음 얼마간은 낯선 곳에서 깰 때마다 바다 이쪽의 시간과 저쪽의 시간을 가늠하느라 혼란스럽기도 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창밖을 내다보면, 저 멀리 바다가 보이고 낮은 주택 옥상에 널어놓은 빨래들이 바람에 살며시 흔들리는 풍경을 지켜보기도 했다. 바다와 먼 육지에서 산 기억밖에 없는 내게 그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가끔은 한밤중에 눈을 뜨기도 했다. 그러곤 다시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조바심 난 듯 서성이다, 결국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찬장의 그릇들을 모조리 꺼내 싱크대에 올려놓고 세제를 풀어 다시 씻었다. 냉장고를 열어 오래된 음식들을 꺼내 버리고, 하는 김에 아직 유통기한이 지나지 않았지만 뭔가 찝찝한 음료를 꺼내 개수대에 부어버렸다. 그릇들을 씻고 있는데, 흐트러진 호흡 사이로 쑤욱, 들어와 가슴에 박히는 알 수 없는 감정들. 언제쯤에야 익숙해질 수 있을지, 나는 절망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경험은 침묵이었다. 제주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내내 늘 혼자였다. 길을 물어보는 것 외에는 말을 할 필요가 없었고, 내 목소리가 사라진 자리에 많은 생각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 생각들은 뒤엉킨 채 엎치락뒤치락하다 스스로 정화되듯 차분히 자리를 잡고는 했다. 늘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하는 인간에게, 그래서, 혼자 떠나는 여행이 소중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새벽에 문득 눈을 뜨는 것은 여전했다. 역시나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다시 잠들 수도 없었다. 배는 고픈데 그 어떤 것도 먹기 싫을 때처럼 말이다. 그러면 내 안의 무언가가 휙 빠져나간 것처럼 아무 것도 못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서성였다. 그런 때면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곤 했다.

 

원래 계획했던 삼 개월을 훌쩍 넘어 거의 칠 개월 동안이나 제주에 머물렀다. 모든 시간이 차곡차곡 쌓였다. 관광지로 잘 알려진 이곳에서, 관광객도 토박이도 아닌 그 사이의 어디쯤에 머물며, 고요하게 시간을 보냈다. 뿌연 침묵으로 가려졌던 이곳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씩 생기를 더하고 부드러워지는 동안, 나는 무수히 많은 풍경들과 시간들과 얼굴들을 마음에 품고 지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내 마음 속에 안정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이제 사람들과 편히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도 있을 듯했다. 

 

그리고 마침내 제주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제주를 떠나기 얼마 전쯤부터 <한라병원보>에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2009년 1월부터다. 첫 번째 글을 쓰는 동안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떠나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인연이라니. 오래 전에는 시간의 연을 끊기 위해 내가 있던 곳을 떠났지만, 이제는 떠나며 새로운 인연을 맺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연재를 시작한 지 벌써 삼 년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또다른 시작을 준비해야 할 때가 되었다. 그 동안 연재했던 이야기들은 내가 제주에 가기 전에 겪은 일이고, 제주를 떠난 뒤의 일이다. 또한 제주에 머무는 동안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을 때마다 끼적이던 글들이기도 하다. 그러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고, 숱한 상처와 새로운 깨달음들이 반복되었다. 그것은 내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다양한 관점을 가지게 되었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무엇보다 연재하는 동안 내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마음 속에서 형체 없이 떠돌던 것들이 글자로 바뀌면서 나는 스스로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이런 기회를 주신 <한라병원보> 관계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늘 마감일을 어기는 성실하지 못한 필자임에도 항상 잘 챙겨주시고 격려해주셨다. 무엇보다 많은 분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이런 계기, 그리고 소중한 경험 주신 것 잊지 않겠다.

 

연재를 마무리하며 가장 궁금한 것은 이 글을 읽은 많은 분들이 어떻게 생각하셨을까, 하는 점이다. 첫 연재를 시작하며 바랐던 것처럼, 여러분들이 단 한 순간이라도 이 글들을 읽으며 자신 혹은 주변 사람들 생각에 웃음 짓거나 혹은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다면 더없이 행복하겠다. 그리고 한 해를 마감하는 지금, 많은 분들이 지금의 인연을 돌아보고 되새기며, 새로운 시간과 새로운 인연들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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