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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메아나카스의 환영 (1)

제주한라병원 2011. 11. 9. 11:25

2011년 / 5월

 

피메아나카스의 환영 (1)


  청첩장을 손에 들고 건물로 들어섰다. 식장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다른 결혼식과 마찬가지의 풍경이 펼쳐졌다. 지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신랑 신부와 인사를 하고, 로비에 세워 놓은 웨딩사진을 보고, 혹은 식당에서 먼저 식사를 하는 사람들. 그러나 그에 비해 나는 아는 사람이 적어 어색하게 혼자 어슬렁거리는 수밖에 없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이 결혼식 전에 그를 본 게 딱 두 번밖에 없다. 때문에 이 결혼식에 도 낯설고, 이 자리에 와 있는 나 자신도 낯설었다. 그때, 저 멀리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던 신랑이 나를 보더니 반갑게 손을 들어 인사했다. 그는 아주 밝은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작년 겨울 어느 날, 그는 캄보디아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 우뚝 속은 피메아나카스 신전을 오르는 중이었다. 그는 그 자신조차도 그 날 먼 이국땅에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의 연인에게조차 알리지 않은 여행이었다. 그곳으로 간 이유가 딱히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했다. 원래는 그의 선배가 학회 학술기행의 일환으로 떠나기로 되어 있었는데, 비용을 모두 지불한 상태인데다 환불도 어려워 대신 그에게 연락이 왔던 것이다. 연락을 받은 그는 캄보디아를 떠올려 보았다. 뜨거운 태양과 흙먼지를 날리며 달리는 버스가 떠올랐다. 그 때 한국은 곳곳에서 한파로 인한 피해가 속출할 만큼 추운 겨울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코트 앞섬을 여미며 뒤돌아서서 사람들 사이로 사라진 그의 연인이 떠올렸다. 그녀의 표정은 도시에 닥친 추위보다도 더 차가워보였다. 그러자 불현듯 추위가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게 다가왔다.


  “나는 시골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조용하잖아. 도시의 삶은 어쩐지 갑갑해. 아니,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당연히 그런 게 아니라, 여기 서울은 이상하게 아프게 해. 내가 자주 아픈 것도 서울이어서 그런 지도 몰라"


  평소 그의 연인은 가끔씩 그에게 도시 혹은 시골 중 어디에서 살고 싶은지를 묻곤 했다. 그는 도시에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것도 아파트 단지나 주택이 아닌, 커다란 주상복합아파트처럼 철저히 단절된 그곳에서. 그러면 그녀는 전원생활이 꿈이라고 말했다.


  “거기에서 그냥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어.”


  그녀는 조용한 곳에서 자연과 숨 쉬고 대화하며 살아가기를 바랐다. 그는 미술 전공인 그녀와 썩 잘 어울리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생활을 꿈으로 가져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와 그녀는 동경하는 삶이 서로 달랐던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그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그 ‘다르다는 것’이 실은 굉장히 많은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과 그 사실을 그들이 몰랐다는 것이다.

  그와 그녀는 꽤 오랜 시간을 알고 지냈지만 정작 알고 있는 것은 몇 가지도 되지 않았다. 그것도 아주 피상적인 것들뿐이었다. 농촌을 좋아한다거나, 도시에서 살고 싶다거나, 몇 사람을 사귀어 본 경험이 있다거나, 좋아하는 옷의 스타일은 어떤 것이며, 몇 개의 향수를 갖고 있다거나 하는 것들. 그러나 그들은 서로에 대해 알고 있는 이런 것들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너머의 것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팔딱거렸다.


  예를 들어, 몇몇의 가수를 공통적으로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음악적 취향이 같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경우다. 몇몇이 공통적일지언정 좋아하는 이유가 다를 수가 있고, 또한 그것마저 같다고 하더라도 그 이외에 좋아하는 가수들이 다르다면 그들의 취향이 꼭 같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니까 그들이 궁금했던 것은 바로 그 부분이었다. 서로가 공통적으로 좋아한다고 말했던 바로 그 가수가 아닌, 그 외의 가수들. 그들이 알고 있는 서로에 대한 사실들 이외의 것들, 그리고 그것들이 내포하고 있는 무한한 변칙적인 가능성들. 마음 깊은 곳에 내재한 욕망의 덩어리. 그게 늘 그와 그녀를 숨 막히게 했다.


  “사람의 욕망이란 거 이해하잖아? 네 안에도 분명히 있어. 새로운 것에 대한 욕망, 사귀어보지 않은 새로운 사람에 대한 욕망. 그런 가능성 자체를 만들고 싶지 않아. 그런데 그게 가능하겠어?"


  “나는 사람 따위 믿지 않아. 너도 네 안을 들여다 봐. 말로는 믿는다, 이해한다, 고 내뱉지. 그런데 정말 그래? 어떻게 나 자신이 아닌 사람을 믿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어? 그러니까 너를 믿으라고, 나를 이해할 수 있다고, 그런 말 해 봐야 소용없어"


  늘 반복되는 대화였다. 그는 그녀를 이해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녀와 같은 생각을 하곤 하니까. 그런 그녀의 믿음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문제를 먼저 제기한 것이 그녀였기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늘 약속하는 것은 그였다. 이러면 되겠어? 저러면 되겠어? 그녀가 신경 쓰일 모임자리는 애초에 거절했고, 혹 그녀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는 지인이 있으면 연락을 끊어버렸다. 그럼에도 그녀는 늘 힘들어했고, 누군가와의 관계를 지속시키는 일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너 자신을 속이지 마. 나에 대한 마음이 한결같을 거라고? 참지 마. 마음 속으로는 그렇지 않으면서 참아내는 모습이 더 역겹게 보여"


  그녀는 그를 조소하듯 그의 눈을 피해 다른 누군가를 만나거나, 그가 보는 앞에서 그녀가 처음 그를 만나 그의 마음을 끌기 위해 했던 행동들을 다른 이에게 서슴없이 했다. 그러면 그는 질끈 눈 감아버렸다. 그 스스로도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태어나서 만난 그 누구보다도 그녀를 사랑해서? 아니, 그렇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그의 머릿속에는 딱 한 단어만 남아있었던 것 같다. 약속. 그녀에게 했던 약속과 그것을 지켜야만 한다는 무의식.


  그러는 동안 그녀는 그를 떠나고 또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녀는 그를 조소하거나 믿지 않으면서도 정작 완벽히 떠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가 완전히 지쳐 마음을 접고 체념할 즈음이면 다시 돌아와 말했다. 나를 떠나지 마. 그런 과정이 반복될수록 그와 그녀의 삶은 비정상적으로 뒤틀려버렸다. 서로에 대한 욕망과 그 욕망의 좌절에 대한 불안감만 더욱 팽팽해졌다.


  하지만 그렇게 평생을 살 수는 없었다. 이번에는 그가 그녀를 떠났다. 그 결심의 시작이 바로 캄보디아 행이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결심한 여행이 부담이 되었는지, 아니면 캄보디아의 여러 환경이 맞지 않았는지 그는 몸살로 침대에서 일어나기는커녕,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결국 사람들과 함께 움직이는 것은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고 다른 사람들은 먼저 이동하고, 그는 몸이 나아지는 대로 출발해 합류하기로 했다.


  그는 열 때문에 깨어 있긴 해도 깨어 있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눈은 부은 것처럼 잘 떠지지 않았고, 몸의 부피를 느낄 수가 없었다. 

  잠을 자는 동안에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전혀 가본 적도 없는 사막 한 가운데에 있기도 했고, 어느 가을날의 바람처럼 고궁 담벼락 옆을 스쳐지나가기도 했다. 그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에 이 세상에 존재했던 자들의 목소리를 듣거나 혹은 휑한 도시를 홀로 거닐기도 했다. 그녀가 있기도 했고, 아니,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도 늘 그녀에 대한 생각이 따라다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