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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연주와 글쓰기 수업 (2)

제주한라병원 2011. 11. 9. 11:21

2011년 / 3월

 

피아노 연주와 글쓰기 수업(2)

 
나는 많은 학생들이 수업시간이 빨리 흐르길 원하고, 숙제 또한 대충 해치워버린다는 것을 알아채곤 한다. 마치 어렸을 때의 내가 피아노를 배우며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그보다 더할지도 모르겠다. 피아노를 배울 때에는 음표며 코드처럼 일상에서 잘 쓰지 않는 기호들을 알아간다는 즐거움이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에서는 그런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음악 언어’처럼 일상적으로 접하기 힘든 것을 새롭고 특별하게 여기는 경향과, ‘일상 언어’와 ‘글쓰기 언어’를 구분하지 못하는 경향이 작용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평소 생소하게 여겨지던 것을 학습할 때에는 그 법칙에 충실히 따르려 하고, 그렇게 배우면서 몰랐던 사실을 배웠다는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글쓰기는 어떤가?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글쓰기를 반복한다. 일기쓰기(물론 지금은 사라진 것으로 알고 있지만)부터 대입 논술까지. 이런 과정에서 글쓰기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글을 쓰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글쓰기의 필요성을 머리로는 알지만 실감하지 못한다. 다만 해야만 하는 일일 뿐이다.


이렇게 교과과정의 일환으로 글을 쓰는 것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고 있다. 인터넷 블로그에 글을 남기고,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고, 장문의 문자를 주고받는다. 글을 쓴다는 인식 없이 글을 쓰고, 글쓰기가 무엇인지 고민하지 못한 채로 글을 쓴다. 


이런 습성은 사람들이 ‘피아노 연주’와 ‘글쓰기’를 대하는 자세가 다른 큰 이유가 되기도 한다.


글을 쓸 때 중요한 것은 ‘글’의 감동을 직접 느끼고, 글쓰기 체험을 통해 드러난 자신만의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다.


어떤 음악에 감동을 받아 그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기초부터라도 배우겠다는 마음, 영화를 보고 자신도 그처럼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시나리오 작법부터 차근차근 공부하거나, 한 편의 소설을 읽고 나서 영향을 받아 자신의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무작정 소설의 형태로 적어가보는 시도, 이러한 마음과 시도를 기반으로 내 마음속에 그려놓은 하나의 완성된 목표를 향해 다가가겠다는 각오야말로 무엇인가를 학습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과 시도, 각오 아래에 ‘감동’이 있다. 감동이 곧 내가 배워야 하고 배우고 싶은 필요성이 되며, 이 필요성이 마음과 시도, 각오를 만들어 낸다.


또한 이러한 감동을 토대로 직접 글을 써봐야 한다. 직접 써본 뒤에야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이 수업을 통해 내가 극복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한 편의 글을 읽고 감동을 받고, 감동을 받은 뒤 필요성을 느껴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의 목표가 생긴다.


그 목표에 다다르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글을 쓸 때 알아야 할 모든 요소들을 익힌 뒤 글을 쓰는 것, 또다른 하나는 무작정 목표에 맞게 글을 쓴 뒤 실제 목표지점과 내가 쓴 글의 차이를 조금씩 채워나가는 방법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두 번째 방법을 지향한다. 이는 글을 쓸 때 필요한 것들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지쳐 포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글을 써보지도 못한 채로 말이다. 또한 글을 쓰기 위한 이론적 토대를 갖춘 뒤에도 전혀 글을 쓰지 못할 수도 있다. 한 예로, 고등학교 학생들과 소설쓰기 수업을 한 적이 있는데, 수업 시간에 작법 교재를 통해 인물, 주제, 문체, 구성 등등을 모두 공부한 뒤에 소설을 써보라고 했더니, 학생들이 눈을 말똥말똥 뜬 채로 내게 말했다. 이제 소설 쓰는 법을 알려주세요, 라고. 역시 직접 써보는 게 제일 좋은 글쓰기 연습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

이제 수업이 익숙해질 만도 한데, 여전히 학생들이 무엇을 원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것은 내 경험이 부족한 탓도 있고, 학생들의 생각을 짐작한다는 게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학생들의 얼굴은 제각각 알 수 없는 기호의 암호 같고, 강의실은 여러 암호들로 이루어진 암호문 같다. 


그래서 두렵고, 혼란스럽고, 당황하기도하지만, 그래도……


학생들에게 글쓰기의 감동을 체험할 수 있게 노력하고, 그들이 원하는 글쓰기가 어떤 것인지 알기 위해 시도하고, 그 목표에 다가가도록 이끌거나 이끌리다보면, 그 동안에 그들이 암호를 해독할 힌트 하나씩을 툭툭 던져주지는 않을까? 이런 마음이 그나마 나를 진정시킨다.


어쨌거나 다행스러운 것은, 수업을 하는 일이 예전에 피아노를 배웠던 때와 같거나 혹은 다르다는 점이다. 암호 같은 아이들의 표정을 하나씩 풀어나가며 언젠가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처음 보는 음표와 코드를 알게 되었을 때와 같은 희열을 느끼고, 또한 목표 없이 피아노를 치던 때와는 달리 이런 기쁨과 즐거움을 목표로 수업할 수 있다는 것. 요즈음은 이런 마음들이야말로 학생들과 만나는 내내 내게 가장 큰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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