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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의 세계

제주한라병원 2011. 11. 9. 10:51

2010년 / 4월

휴대폰의 세계

 

현대인에게 휴대폰만큼 필수적인 아이템이 또 있을까? 이제 휴대폰은 선택이라기보다는 당연히 갖추고 있어야 하는 일종의 생존 도구가 되었다. 
당신이 이력서를 쓰거나 어딘가에 응모를 한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휴대폰 번호와 집 전화번호를 함께 기입할 것이다. 서류심사에 통과하거나 응모에 당첨되었을 때에 일차로 연락을 받게 되는 것도 휴대폰을 통해서다. 집 전화번호를 기입하는 것은 휴대폰으로 연락이 되지 않을 경우 연락할 수 있는 차선책 마련을 위해서다. 


또 다른 경우를 보자. 
예전에는 누군가를 만날 때에도 약속 시간과 장소를 미리 정해놓은 뒤 그 시간을 지키려 부단히도 애를 썼다. 휴대폰이 없는 경우에는 상대가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사정이 생겨 늦는 경우 이동 중에도 얼마든지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통화를 해 사정을 이야기하고 시간을 미루거나 장소를 변경할 수 있다. 사람에 따라 어느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휴대폰을 아예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생활의 불편을 감수해야 하며, 그러한 사람을 아는 지인들은 더욱 불편함을 느낄 정도가 되었다.


이 휴대폰은 통화 외에 다른 용도로 사용되기도 한다. 요즈음 웬만해서는 발신자 정보가 표시되기 때문에 혹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은 경우에도 발뺌할 수가 없다. 게다가 이러한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그로인한 오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친구나 연인사이에는 이러한 휴대폰으로 인해 발생한 오해의 정도가 더 심할 때도 있다. 가령 상대가 걸어온 전화를 받지 못했는데, 액정이 고장 났거나 아니면 기술적인 문제로 정말 전화가 걸려오지 않은 경우에도 전화를 건 사람의 오해는 일파만파로 커진다.


  “왜 전화를 안 받아. 전화 걸려온 것을 봤으면 다시 전화를 해야지!”
  “전화 안 왔는데?”
  “내 발신기록에 분명히 남아 있거든?”
  “……”


  혹은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을 경우,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내 전화를 왜 받지 않는 걸까? 내가 기분 상하게 한 걸까?’

  사람을 이토록 소심하게 만드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 터라, 나는 되도록 휴대폰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들을 염두에 두는 편이다. 그리고 휴대폰에 집착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가령 문자메시지를 받아도 대체로 답장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혹은 한참 지난 뒤에야 답장을 한다. 그것은 어떤 일의 도중이어서 여유가 없기 때문에,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될 내용이기에, 또 그밖에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는 이유들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가 보낸 문자메시지에 답장이 없어도 딱히 연연해하지 않는 습성 때문일 것이다. 내가 보낸 문자의 답장을 기다리는 데에 집착하다보면, 다른 이들이 보낸 문자에 답장을 하는 데에 얽매이게 될 테니까. 혹은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니까. 그리하여 나 스스로 문자메시지로부터 꽤 자유로워지려 노력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발생했다. 어느 날 조교를 하고 있는 후배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다. 후배는 전화를 걸자마자 다짜고짜 내게 화부터 냈다.
  “나한테 뭐 화난 일 있어요?”
  영문을 알 수 없는 나는 왜 그러냐고 되물었다.
  “왜 내 문자에 답장을 안 해요?”
 

 전후사정을 알 수 없던 나는 그녀에게 차근차근 이야기 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녀의 이야기는 이랬다.
  어제 학과에서 외부 인사를 모시고 강연회를 진행했는데, 강연회를 끝내고 뒤풀이를 진행했다고 한다. 강연회 내용도 훌륭했고, 또한 강사분이나 청중들의 반응이 좋아 뒤풀이 분위기도 화기애애했다. 그러다보니 술자리가 하염없이 길어지게 되었다. 문제는 강사분이 차를 가지고 왔던 것이다. 강연회를 기획하고 준비했던 후배는 강사분에 대한 대접을 완벽하게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에 대리운전기사를 부르기로 했다. 주변 사람들이나 가게 주인에게 물어봐도 되었을 텐데, 그때에는 그 생각이 나지 않더란다. 게다가 학부 학생들에게 물어볼 수는 없었다. 그때 떠오른 게 나였다.
 

그녀는 내게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답은 오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문자를 보냈다. 그러나 역시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녀가 고민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그녀를 지켜보던 그녀의 동료가 잠시 기다리라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한 번에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그런데 번호를 알려준 그 사람이 바로 나였던 것이다.

  나는 전화를 받아 번호를 알려준 기억은 있지만, 문자메시지를 받은 기억은 없다고 말했다. 또 실제로 그러했다. 새벽 즈음 전화가 걸려와 내가 아는 번호를 알려주기는 했지만, 그 전에 문자를 받은 일은 없었다. 후배는 됐어요, 라며 전화를 끊어버렸고, 나는 영문도 모른 채 휴대폰만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일이 있은 며칠 뒤에야 나는 내막을 알게 되었다.

  일을 하다 잠시 쉴 겸, 커피를 마시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나는 경악하고 말았다. 난생 처음 살펴본 스팸 메시지함에서 후배의 문자를 발견한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대리운전 광고 문자들이 수신되어 스팸 차단을 위해 몇 개 문자들을 지정해 놨던 건데, 이런! 후배가 보낸 문자 안에 그 문자열이 포함되어 있던 거다.

  ‘대리운전 번호 좀 알려줘요.’
  ‘강연회 이제 끝났는데, 강사 분 대리운전 기사를 불러야 할 거 같아요. 번호 하나만 알려줘요. 여기 사람들은 다 학생이라서 대리 운전을 불러본 경험이 없대.’

  내가 지정해 놓은 ‘대리’라는 문자열을 포함하는 문자는 모조리 스팸 메시지함으로 강제 이동되었던 것이 분명했다.
 

 원래 문자에 집착하지는 않는 나였음에도 경악한 이유는, 바로 문자가 왔다는 사실을 나 자신이 몰랐다는 이유 때문이다. 내가 비록 답장을 잘 하지 않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지인들은 자신이 보낸 문자에 답장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이것은 나 자신과 관련하여 일어나는 일들을 얼마나 장악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인 것이다. 똑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내가 그것을 인지하고 있는가, 아닌가의 문제는 크다.

 

이런 이유로 나는 등록해 놓은 스팸 문자열을 모두 삭제, 하려다가 그냥 놔두고, 때때로 스팸문자보관함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광고성 문자는 사람을 너무 허탈하게 만드니까.

 

그나저나 나답지 않게 후배에게 전후사정을 적은 문자메시지를 보냈는데, 답이 없다. 아직 메시지를 보지 못했거나, 혹은 보고도 다른 사정 때문에 답장을 하지 못하고 있거나, 아니면 여전히 화가 났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하나는 분명하다. 이 휴대폰의 세계는 너무나 오묘하고 복잡하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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