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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에 둥둥, 민중의 탑이 거기 있네

제주한라병원 2025. 1. 21. 09:18

[제주의 건축자산을 찾아서] <14> 방사탑

 

바다 위에 둥둥, 민중의 탑이 거기 있네

 

 

  조천읍 신흥리에는 가슴 아픈 전설이 흐른다. 이곳 어르신들은 어린 시절부터 들어온 신흥리의 이야기를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들려준다. 현용준이 펴낸 <제주도 전설>에도, 신흥리 에도 없는 옛 이야기다.

 

  볼래낭 할망당  신흥마을이 생긴 뒤다. 이곳은 예전부터 왜구들이 들락날락했던 곳이다. 오죽하면 신흥리의 옛 이름이 왜포(倭浦)일까! 주민들은 풍족하지 못한 삶 때문에 바다에 나가 파래, 톳 등을 채취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어느 날 한 왜인이 멜을 거리러(멸치를 뜨러) 왔다가 박 씨를 겁탈하려 하자 박 씨는 도망치다 볼래낭 밑에서 죽고 만다.

  주민들은 박 씨를 위해 그 자리에 당을 만들어 모시고 있다. 그곳이 볼래낭 할망당이다. 박 씨는 아기를 낳지 못하고 돌아가셨기에 주민들은 박 씨 할아버지를 양자로 들여 신흥동산 밭에 하르방 당도 세운다.

  전설은 진실하다고 믿는 점을 가장 주요한 요소로 삼는다. 볼래낭 할망당에는 신흥리 주민들 즉, 민중이 사실이라고 믿는 전설의 개념이 녹아 있다.

 

  신흥리 오탑  제주는 꿈이 어린 섬이다. 신흥리의 전설도 그 꿈의 일부다. 여행을 즐기는 이들은 길 위에 흩어져 있는 정체성을 찾으려 한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에서 주인공이 무진을 그토록 찾는 이유도 바로 자신에 대한 정체성 때문이었다.

신흥리를 가보자. 방사탑이 바닷물 속에 잠겼다가 얼굴을 내미는 모습이 거기에 있다. 신흥 바닷가는 U자 형태다. U자의 움푹 들어간 곳을 신흥 사람들은 큰개라고 부른다. U자의 시작점과 끝점에 방사탑 각각 1기가 있으며, 움푹 들어간 곳에 방사탑 3기가 있다.

  특히 큰개 안에 있는 방사탑 3기는 바닷물이 들고 나감에 따라 느낌을 달리한다. 바닷물이 빠져나가면 뭍의 여느 방사탑과 다르지 않지만 바닷물이 들어차 방사탑을 반쯤 삼키면 영락없는 섬이 되고 만다. 물때를 잘 골라 찾아간다면 서로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니 2번은 들러야 제 멋을 알 수 있다.

  옛 어른들은 이곳 방사탑이 5기여서 오탑이라고 불렀다. 현재 U자의 시작점에 있는 오다리탑(오래탑)과 큰개 안에 있는 큰개탑(생이탑)은 예전 그대로이며, 나머지 3기는 세워진 지 그리 오래지 않다.

 

  방사탑에 담긴 의미  방사탑을 세운 이유는 이곳 바닷가가 게의 집게 형상이어서 물지 못하도록 탑을 쌓아서 막았다고 한다. 나쁜 기운을 막아준다는 의미이다. 풍수지리로 세워진 탑이 이젠 여행객들의 발을 묶어놓는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신흥리의 방사탑에서 보듯, 방사탑은 마을을 지켜주는 기능을 한다. ()한 곳에 방사탑을 세우는데, 공동체의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행위이다. 방사탑을 만들 때는 큰 돌로 밑단을 둥글게 만들고, 그 위로 돌을 차근차근 채운다.

  특히 돌을 먼저 누가 놓느냐를 결정해야 한다. 방사탑을 세울 때 나쁜 기운은 돌을 먼저 놓는 사람에게 간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가장 웃어른이 나선다. 마을의 연장자가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공동체를 지키겠다는 의지의 발로가 방사탑에 스며있다.

  방사탑은 돌로만 채우지 않는다. 방사탑 내부엔 솥을 묻기도, 밥주걱을 묻기도 한다. 솥을 묻는 이유는 뜨거운 고온의 열기를 거뜬히 감내하는 솥처럼 액운도 막아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밥주걱은 바깥의 재물을 공동체 안으로 들어와 주게 해달라는 욕망의 표현이다. 그런 점에서 방사탑은 나쁜 기운을 물리고, 좋은 기운을 들여오게 하는 이중적인 표현물임을 엿보게 된다.

 

  방사탑은 마을 입구에 쌍으로 존재하기도 하지만, 하나만 보이는 경우도 있다. 방사탑 형태가 아닌 벽으로 존재하는 경우도 있다. 제주시 봉개동은 벽으로 방사탑을 만들었다. 방사탑의 정상부에는 선돌을 세우는데 새의 형상을 하기도 또는 석인상의 모습을 하기도 한다. 현대건축으로 탈바꿈하는 경우도 있다. 제주시 해변 공연장은 방사탑의 모습을 건축으로 승화시켜 보여준다.

 

방사탑 모양을 딴 탑동 해변공연장

 

 

봉개동에 있는 방사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