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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산신제와 한라산의 유래 (上)

제주한라병원 2023. 9. 1. 14:47

 

한라산 산신제와 한라산의 유래 ()

 

문 영 택 ()질토래비 이사장

 

길 안내자의 뜻인 제주어(濟州語) ‘질토래비는 제주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는 사단법인의 이름이다. 5년 전 돌하르방에게 길을 묻다!”라는 제목으로 세미나를 열면서 창립을 알린 질토래비에서는 동성·돌하르방 길을 도민과 함께 걸으며 첫 역사문화 깃든 길을 개장하였다. 지난 7월에는 창립 5주년을 맞아 질토래비 총서 창간호를 펴내기도 했다. 그동안 질토래비에서는 제주 도처의 역사문화가 깃든 길들을 개장하면서 관련된 소책자들을 펴내기도 했다. 또한 도내 일간지에 질토래비 제주 역사 문화의 길을 열다.’라는 제목으로 187회를 연재해오고 있기도 하다. 이에 감사한 마음을 담아 한라산 정상에 올라 산신제를 올리기도 했다. 다음은 산신제 축문의 일부이다.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인 한라산이여, 영험한 한라산신이여, 세계의 중심에 자리하신 하늘산이시여. 정성을 모아 준비한 제물을 진설하오니 부디 친림하시어 흠향하옵소서. 늘 제주의 중심에 계시면서 제주를 제주답게 세계를 세계답게 이어가도록 유무언의 계시를 주시고 있음에 감사드리옵나이다. 그 고마움에 보답하려 또한 님의 소리를 우주에서 듣고자 길일을 맞아 한라산 정상에 올랐나이다. 앞으로도 매년 질토래비 총서가 발간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또한 온 누리 백성들이 님의 품안에서 님의 유무언의 소리를 듣고 그 의미를 깨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옵소서. 이제 님의 따스한 음성을 가슴에 새기며 감사함만을 남기고 하산하겠나이다.

 

등정은 한라산을 천여 회 오르며 새로운 식물 333종을 밝혀낸 부종휴 선생의 흉상이 세워진 관음사 등반로로 새벽 5시에 시작되었다. 1000고지에 이르러서는 1982년 대통령 경호를 위해 53명의 군인들이 제주에 오다 악천후로 산화한 계곡에 세운 원점비를 찾아 참배하기도 했다. 가파른 왕관능 등정로를 따라 정상에 다가갈수록 많아 보이는 구상나무 고사목들은 온난화 기후의 참상을 실감케 했다. 드디어 정상에 오른 필자는 수백의 내외국인이 어울리는 정상의 쉼터 구석진 곳에서 백록담을 내려다보며 산신제를 지냈다. 그러고는 빗물이 연출한 산정호수를 품은 사라오름의 절경을 감상하고 성판악으로 하산하였다.

 

예부터 명산대천에는 신들이 깃들어 있다 하여 나라에서는 제사를 지냈다. 한라산 역시 탐라국시대부터 산신제를 지내왔다. 정상에서 산신제를 지내려 오가는 과정에서 사람이 동사하는 등 불편한 점이 많아지자, 1470(성종 원년) 이약동 목사는 제주읍성 남문 밖 15리에 산천단을 마련하여 산신제를 지내게 했다. 하지만 국가적인 대사가 있을 경우에는 한라산 정상에서 산신제를 지내곤 했다. 일례로 1601년 어사 김상헌과 1680년 어서 이증은 제주판관과 정의현감, 대정현감, 향교의 교수 등 수많은 수행원과 함께 한라산에 올라 백록담에서 산신제를 지냈다.

 

제주의 역사와 얽힌 산신제를 좀 더 엿보기로 하자. 1601년 제주에서 일어난 소덕유·길운절 역모사건으로 어수선해진 백성들의 마음을 달래고자 선조 임금이 보낸 안무어사 김상헌은 백록담 북쪽에 제단을 설치하고 제사를 지냈다. 임금은 한라산은 해외의 명산인데 사전(祀典)에 실려 있지 않아 평상시에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마침 어사가 내려가니 향축을 마련하여 제를 올리고, 제문은 지제(地祭)(제사를 담당하는 벼슬 이름)가 지어 바쳐라.”라고 명했다. 제문에는 못된 무리들이 반역을 꾀했으나 한라산 신령님의 도움으로 음모가 일찍 드러나 평안을 되찾으니 이에 제사를 올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못된 무리의 반역이란 소덕유와 길운절이 제주에 들어와 역적모의를 하다가 사전에 누설되어 관련자들이 한양으로 압송되어 처형된 사건을 이른다. 김상헌이 쓴 남사록(南槎錄)’에 따르면, 일행은 제주목 남문을 출발하여 병문천과 무수천을 지나 존자암에 도착한다. 날씨가 나빠지자 존자암 뒤에 제단을 만들어 제사를 지내자고 제안하지만 김상헌은 이를 거절하고 정상에 올라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후 여러 사료에 한라산 산신제 기록이 남아 있으며, 2009년부터는 제주시 아라동과 한라산신제봉행위원회 주최로 산천단에서 한라산 산신제가 해마다 열리고 있다.

 

질토래비 총서 창간호 표지와 동성 돌하르방
온난화 기후의 영향으로 고사되는 구상나무 숲
원점비 전경
만수의 사라오름 절경
산천단 이약동 목사의 공덕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