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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보고, 사람과의 관계를 본다.

제주한라병원 2023. 8. 1. 10:59

[나는 제주건축가다] <18> 지맥건축 김정일

 

땅을 보고, 사람과의 관계를 본다.

 

 

 

 

[건축가 김정일]

 

제주 시내에서 태어나고 아버지의 고향을 거쳐 어머니의 고향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때의 기억은 늘 품에 있다. 그 기억은 알게 모르게 자신 스스로를 지탱해주고 있고 그가 펼치려는 이상적인 건축관과도 닮았다. 아직은 그 기억을 구현하지 못했다지만 언젠가는 그가 늘 떠올려보는 기억의 건축을 통해 사람이 살아가는 행복의 건축완성을 꿈꾼다.

그의 마음에 있는 기억의 건축은 우리 집, 즉 제주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쓰던 옛집이다. 그 공간은 일본 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음예공간예찬>에서 만나는 공간과 다르지 않다. 다니자키가 말하는 공간은 우리의 옛집인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아주 깊숙한 어둠, 그 어둠은 풍미를 지닌다. 거기에 빛이 더할 때 그야말로 풍미는 더해진다.

그는 아무렇게나 집을 지으려 들지 않는다. 곰곰이 생각한다. 재촉을 한다고 될 일도 아니다. 건축가는 생각을 파는 사람이기에 그 생각이 마음에 차야 한다. 생각을 오래하면 더 깊이가 있다고 그는 말한다.

 

■ 제주의 풍토성이 살아 있는 공간을 꼽으라면 뭐가 있을까?

   제주에서 자신에게 끌리는 공간은 어디에 있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풍토성이 살아 있는 공간이라기보다는 제주 사람의 좋은 기억이 깃든 공간이 더욱 어울릴 것 같다. 공간은 추억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을 것이며 감수성이 풍부한 어릴 적 공간이 대부분일 것이다. 아버지는 목수였다. 동문통에서 내가 태어난 후 6개월 만에 돌아가셨다. 살기가 힘들어지자 어머니는 아버지 고향 성산읍 난산리로 갔다가 어머니 고향인 표선면 하천리로 가서 살았다. 하천리에서 살던 초가는 기억에 있다. 올레에서 구슬치기를 하며 놀던 기억과 초가와 올레. 그때는 그것의 가치를 몰랐다. 하천리는 천미천 하류에 있는 마을이다. 천미천에서 물놀이, 개구리 잡이를 하면서 놀던 좋은 기억이 있다. 나의 근간이 되는 공간들이다.

 

 

■ 지역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지역성이란 무엇이며 제주에 어울리는 지역성을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지역성, 더 큰 범위로 하면 한국성이다. 지역성이 제주에서 논의된 지도 오래되었다. 지금은 그걸 바탕으로 제주성(濟州性)의 다른 면을 봐야 한다. 그 당시엔 전통 초가나 재료들을 봤다면 앞으로는 사람을 담고 제주 역사가 담긴 것들을 이야기해야 한다. 제주 돌을 썼다고 제주는 아니다. 제주성엔 사람이 있다. 경관기본계획을 보면 서사적 풍경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 말이 와 닿는다. 결국은 사람과 사람이 만드는 역사이다. 제주에서 활동하는 건축가라면 제주성을 무의식적으로 갖는다. 제주 건축가들의 의식에 뭔가가 있기 때문이다.

제주돌을 적당히 쓰면 좋겠는데 참으로 안타깝다. 놔둬야 될 것 같다. 제주돌을 너무 많이 캔다. 요즈음은 경계를 모두 겹담으로 튼튼하게 쌓는다. ‘자기과시가 들어간다. 겹담은 마치 성을 바라보는 느낌이고 풍치도 덜하다. 하지만 홑담은 소통의 시작이다. 바람도 잘 통한다. 혼자서 개보수도 할 수 있다. 제주 밭담과 닮아 훨씬 더 풍치가 있다.

전통건축의 정의는 구조가 살아 있는 집이다. 제주에도 그런 집이 많다. 그 가치를 다른 지역 사람들이 먼저 봤다. 돌창고도 그렇게 됐다. 어떤 사람들은 그걸 개조하면서 층고를 올리곤 하는데 개인적으로 그건 아니라고 본다. 층고를 높이려면 옆에 새로 지으면 된다. 지맥건축 첫 사무실도 그런 공간이었다.

 

 

■ 제주도라는 땅은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보나?

 

자연과 문화이다. 다른 데서 볼 수 없는 제주 특유의 고유성이랄까! 제주 자연에는 접점이 있다. 땅과 바다가 만나는 접점이나 하천과 땅이 만나는 경계. 그 경계에 해안도로와 제방을 쌓으면 경계가 무너지고 생태계도 무너진다. 해안도로를 왜 바다에 바짝 붙여서 낼까! 좀 떨어지면 안 되나?

 

■ 개발에 대한 생각이 어떤지 궁금하다.

   개발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제주 개발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듣고 싶다.

 

제주도는 몇 년 사이에 실수요 부동산 개념이 바뀌었다. 투기와 투자요소가 되어버렸다.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자연은 훼손되었다. 경제적 개발이 아닌 자연을 위한 개발은 안 되는 걸까? 특히 공동주택 개발이 많이 이루어졌다. 아파트의 삶도 있지만 개인주택의 삶이 가치가 있다는 걸 알려주면 좋을 텐데. 원래 공동주택은 커뮤니티 공간을 활성화시켜야 하는데 우리는 아파트를 가지는 목적이 자기만의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