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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가리는 해안 양식장의 최대 수혜자

제주한라병원 2023. 9. 1. 14:02

 

왜가리

Grey Heron : Ardea cinerea

 

왜가리는 해안 양식장의 최대 수혜자

왜가리는 백로과에 속한 여름철새로 알려지지만 제주에서는 일 년 내내 관찰 할 수 있어 텃새라고 하여도 될 듯 싶다. 육지부에서는 예전부터 백로류들과 같은 곳에서 번식 하는 개체가 있어 여름철새이면서 텃새로 알려졌다. 한국, 일본, 중국, 몽골 등 동아시아 일대와 미얀마 등의 하천이나 습지 등 물가에 분포한다. 제주에서는 저수지나 해안가, 중산간의 습지 등에서 먹이 활동을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으며 봄과 가을에 대규모로 무리지어 이동하는 모습도 관찰된다.

 

제주에서는 특별히 서식처가 어디라고 특정하기 보다는 제주 전 해안에 걸쳐 관찰 할 수 있고 최근 들어 개체수가 더욱 늘어나고 있다. 원래 제주는 왜가리가 번식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는데 2013년 4월 서귀포시 중문동에 있는 한 골프장 연못에서 번식에 성공하였다는 사례가 처음으로 알려졌다. 대부분의 왜가리를 비롯한 백로류들은 숲속 나무 위에 둥지를 트는 습성이 있는데 어찌된 일인지 이곳에서는 연못 가운데 돌섬을 만들어 놓은 곳에 둥지를 틀어 2마리의 새끼를 무사히 키워낸 특이한 경우였다.

 

조류(鳥類) 번식의 최우선 조건은 먹이를 충분히 확보 할 수 있는 곳이라야 하고 천적으로부터 보호 받을 수 있는 안전한 곳이어야 한다. 골프장 특성상 다른 곳에 비해 사람들의 출입이 많지 않은 곳이라 가능 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골퍼들이 연못에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아 둥지를 튼 연못을 그냥 지나 쳤을 것이라고 유추해 본다. 백로류들의 번식기 먹이 활동 거리는 5~10km정도 되는데 중문동 골프장 주변에 위치한 창고천이나 바닷가는 새끼를 키워낼 먹이의 훌륭한 공급처가 되었을 것이다.

 

이후 한동안 번식 기록이 없다가 2021년에 다시 번식을 하고 있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것도 한 쌍이 아니라 둥지가 무려 50여개, 즉 50여 쌍이 조천읍 북촌리에 있는 다려도에서 집단으로 번식하고 있는 것을 제주자연사박물관 김완병 박사의 조류(鳥類) 조사과정에서 확인된 것이다. 최초 왜가리 번식이 알려진 이후 8년 만이다.

 

다려도는 그동안 겨울철새인 원앙의 주 서식지로 알려져 있었다. 겨울에 제주를 방문한 원앙 무리가 낮에는 다려도에서 휴식을 취하고 저녁이 되면 인근 곶자왈로 날아가 먹이 활동을 하는 곳이었다. 간혹 여름에 주변에서 먹이를 찾는 왜가리가 있기는 했지만 번식은 하지 않았던 곳이다. 다려도 여러 곳의 섬들 중에 북촌포구에서 제일 가까운 섬에 보리장 넝쿨이 우거져 있으며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서있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 둥지를 틀어 3년째 번식하고 있으며 다른 백로류들도 같이 번식에 성공 하고 있다. 이곳 여건이 사람들의 출입이 많지 않고 천적이 드물어 왜가리의 번식이 가능했으리라 생각된다. 다려도에서 멀지 않은 곳에 광어를 비롯한 물고기 양식장들이 많이 있어 아마 이 양식장 근처에서 먹이를 확보하여 새끼들을 키운 것이 아닐까 한다.

 

20여 년 전부터 제주의 해안 곳곳에 양식장들이 생겨나기 시작 했다. 해안도로를 지나다보면 양식장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다. 대부분 바닷물을 끌어올려 양식장에 사용하고 다시 바다로 흘려보내는 형태의 양식장이다. 이때 양식 중이던 물고기 일부가 바다로 같이 흘러 내려가게 되는데 이 물고기들이 왜가리를 비롯한 새들의 훌륭한 먹이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왜가리만이 아니라 가마우지도 제주에서 번식하며 개체수가 많이 증가 하였는데 같은 이유라고 짐작해 본다. 제주해안의 양식장 덕택에 왜가리를 비롯한 새들이 번식하며 개체수를 늘려가고 있는 셈인데, 해안가 양식장이 자연 경관을 훼손하고 청정해역을 오염시킨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는 와중에 아이러니하게도 일부 새들 입장에서는 먹이를 쉽게 확보하게 되는 혜택 아닌 혜택을 누리고 있는 형국인 셈이다. 조류를 좋아하는 필자로서는 왜가리의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과 번식을 마냥 기뻐해야만 할 일인지 아니면 제주의 해안 생태 변화를 걱정해야 할지를 두고 어려운 고민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