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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매거진/제주의이야기

“집이 들어설 곳과 그 주변을 생각해야 한다.

제주한라병원 2023. 5. 8. 09:26

신양해수욕장

 

[ 건축가 강봉조 ]
 
제주의 예쁜 해변은 그의 놀이터였다. 고향 성산읍 신양리 바닷가는 뭔가에 둘러싸여 있다. 아늑하다. 그에겐 바다가 아늑했고, 마을도 아늑했다. 그가 살았던 감귤밭도 그러했다. 어릴 때부터 무엇인가에 둘러싸인 ‘위요(圍繞)’ 느낌을 받았고, 지금도 그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쑥대낭으로 둘러싸인 감귤밭은 바깥세상이 보이지 않고, 소리만 들리는 혼자만의 공간이었다. 그 공간, 그에겐 어머니와 같은 품이다.
 
언제부터인가 고향이 바뀌기 시작했다. 신양리에 거대자본이 들어오면서 마을이 바뀌는 순간을 지켜보는 입장이 되었다. 주인이 아닌 이들이 들어와서 땅을 점유하고, 땅에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고 있다. 건축계의 거장 안도 다다오의 작품도 거기에 들어갔다. 땅을 거부하지 않은 ‘지니어스 로사이’도 있지만, 땅을 배격한 ‘글라스하우스’도 있다. 안도 다다오에게 “왜 그랬는지” 정말 묻고 싶다.

 

 

■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애착을 지닌 땅에 대한 이야기가 있을 텐데, 그 땅을 이야기한다면.

살아온 얘기부터 해야 할 것 같다. 나고 자란 신양리는 동쪽과 남쪽으로 바다를 향해 있다. 태풍을 마주하는 바다 쪽으로 순비기나무가 많은 모살(모래) 언덕이 성처럼 마을을 감싸고 있다. 모살 언덕이 감싼 곳 안에 돌담으로 다시 구획을 하고 그 안에 집을 짓고 살았다. 모살덕이 담이 되며 다시 한 번 집 주위에 더 쌓은 돌담은 바람 많은 환경에 대응하는 옛 어른들의 지혜였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 6학년 때였던가. 그때쯤 누나들과 형이 도시로 나갔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살게 되었을 때 마을에서 감귤 밭이 있는 과수원으로 이사했는데, 감귤 밭이 마당이 되었다. 대개 감귤밭은 바람을 막기 위해 돌담 주위로 쑥대낭(삼나무)을 심었다. 쑥대낭으로 두른 그 마당은 신작로가 바로 옆에 있어도 안의 소리만 들리는 혼자만의 공간이었다. 마을에 있을 때 놀던 순비기 모살 언덕처럼 감싸인 놀이터라는 점은 비슷하지만, 5월에는 감귤꽃 향기에 취하고 11월이 되는 가을엔 주황색 열매가 맺히는 풍성함이 다른 마당이었다. 나무로 둘러싸인 하늘만 보이는 마당은 소리를 크게 질러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 나만의 공간이었다.

이런 공간적 경험 때문인지 대학을 다닐 때 첫 과제인 집을 설계하면서 루이스 바라간, 안도 다다오, 캄포 바에자가 설계한 하늘로만 트인 마당을 갖는 주택이 좋았다. 물론 지극히 절제되고 단순한 조형의 힘이 남달라서도 그랬던 것 같다.

 

 

■ 어릴 때의 감성과 경험, 그 경험을 가지고 대학교 때 설계에 반영한 그런 느낌들이 현재 주택 설계에도 반영이 되나?

주택에서 경제적 이유로 중정을 담지 못하면 최소한 마루를 사이에 두고 앞마당과 뒷마당이 연결되어 시각적으로 확장되는 풍성한 외부공간을 갖는 옛집의 구성을 갖도록 건축주들과 생각을 공유하려 노력한다. 근래에 건축 설계 공모에 제출한 공모안 대부분이 중정을 갖는 구성을 취한 것도 과거 경험에서 좋았던 기억들을 담으려 한 것이다.

 

 

■ 땅은 무척 중요한데, 신양리는 마을 자체가, 아니 세상이 바뀔 정도로 개 발된 곳이다. 제주도는 그래도 자연 그대로인 곳이 있다. 제주도가 가진 땅의 의미를 설명해준다면.

시대적 요구에 따라갈 수밖에 없어 집이 카페로 호텔로 바뀔 수 있지만 관광지인 제주라는 특성으로 상업적 목적을 채우기 위한 재산적 가치로만 이 땅을 바라보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관광객을 위한 땅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땅이고 앞으로 살아갈 땅으로서의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너무 보편적인 건축행위가 제주에서 이뤄진다. 건축의 지역성을 말한다면.

지역성은 늘 고민된다. 결론을 내지 못한 채 계속해서 고민하는 부분이다. 옛날 공간 구성요소인 채 나눔과 올레, 현무암과 같은 건축재료, 바람에 대응했던 낮은 경사지붕 등 겉의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지역성을 말할 수 없다. 지금은 과거에 이루어진 방식들이 변했음을 인정하고 시대가 다름에도 간직해야 하는 것과 지금 시대에 맞지 않는 또는 잊어야 하는 것들에 대한 건축가의 깊이 있는 사유가 바탕이 될 때 올바른 지역성을 드러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지역성 이전에 우선 고민하는 것은 집이 서는 곳과 그 주변에 대한 생각이다. 제주 땅은 평지도 더러 있지만 오르락내리락 굴곡이 많다. 땅은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땅 위에 서는 건축물은 주변과 밀접한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과거의 사람들도 거창한 지역성 이전에 그 주변관계부터 파악하려 했을 것이다. 이런 시행착오를 겪고 먼 훗날엔 나만의 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